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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진 Aug 09. 2021

반복되는 일상을 지겹게 느끼지 않기를

그레이 아나토미를 보면서

한때 열심히 봤던 미드 <그레이 아나토미> 며칠 전부터 다시 보기 시작했다. 시즌3까지는 확실하게  봤던 기억이 나고, 시즌4 중간까지는   같아서 그냥 시즌5부터 보기로 하고 시청 중인데, 오랜만에 봐서 그런지  재미나다! 누구나  번쯤은 외국 드라마 마니아 시절이 있었던 것처럼  역시 한때 미드와 일드에 빠져서 열심히  적이 있다.   사람은 없을 <프렌즈> 시작으로 이것저것 열심히 보던 가운데 조지 클루니 아저씨를 알게 했던 <E.R> 통해서 의학드라마의 재미를 알게 됐다. 많은 의학드라마들이 있지만 E.R 이후 내가 찾은  그레이 아나토미. 여자 주인공은 사실  스타일이 아니지만 크리스타 양이 좋아서 보게  이유도 있고, 남들은 욕할지 모를 남자 주인공 데릭을 좋아해서 보게  것도 있다.


넷플릭스를 통해 다시 만나게 된 배우들은 왠지 오래된 친구마냥 반갑다. 아마 내가 최근 시즌을 보는 게 아니라서 그런 것도 같다. (현재 17 시즌까지 나와있고 18 시즌도 배우들과 계약이 성사되면서 확정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오래 할 줄이야!) 그러고 보니 영상 매체로 저장되어진다는 것은 시간을 가두는 타임캡슐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내가 자발적으로 찾아보지 않는 이상 최근 모습을 보는 게 쉽지 않은 배우들이어서 일까. 영상 속 그들의 모습은 <그레이 아나토미>라는 드라마 밖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느껴져서 장면 장면이 생생하게 다가왔다. 10여 년 전에 방영했던 것이 아닌 마치 지금 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새삼 드라마에 대해 이렇게 오지랖을 늘여놓는 이유는 오늘 봤던 장면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에피소드 가운데 뇌종양에 걸린 할머니가 나온다. 그녀가 수술 이후 다시 깨어나지 못할 것을 대비하여 기계에 의해 생명연장 장치를 거부하겠다는 것에 사인하는 장면이 있었다. 자신의 의지에 상관없이 살아있기를 바라지 않는다면서 쿨하게 사인하고는 할아버지에게 굿바이 인사를 한다. 그리고 그것을 너무도 편안하게 받아주는 할아버지. 노부부의 마지막 입맞춤이 정말 인상적이었다. 죽음을 앞두고 헤어져야 하는 상황을 가정하며 어찌 저럴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이미 그들은 이런 상황을 여러 번 겪었던 것이다. 할머니는 이전에 수차례 뇌수술을 받았고 그때마다 생명연장 거부에 사인을 했다. 다행스럽게도 수술 후 극적으로 깨어났고, 그때마다 할아버지와 다시 헬로우 인사를 나누었던 것. 그들의 자연스러운 굿바이 인사는 경험으로부터 얻은 하나의 '의식'과도 같은 것이었다.


어쨌든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의사(베일리, 데릭)들 역시도 감동을 받는다. 그들은 입원실을 나오면서 부부의 마지막 모습에 결혼의 '성배'라는 말을 붙여준다. 나 역시 그들의 모습에 감동받았다. 현실 속 부부의 모습이 진정 저리 아름다울 수 있다면…. 그리고 한편으로 궁금해졌다. 서로 사랑하는 마음을 간직한 채 함께 한 시간도 오래되었을 때라면 죽음에 의한 헤어짐을 저렇게 담담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일까. 언젠가 나와 남편도 세월의 흐름을 역행할 수 없는 시점이 왔을 때, 저렇게 담담하게 헤어짐을 받아들일 수 있는 인사를 할 수 있을까 하는 그런 궁금증 말이다.


나는 당연히 그들의 아름다운 재회 장면을 예상했다. 다시 깨어난 할머니와 그런 그녀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며 나누는 '헬로우'인사. 하지만 예상과 달리 이번 굿바이 인사는 마지막 인사가 돼 버렸다. 할아버지는 이전 장면에서 '쿨'했던 모습과 달리 할머니의 죽음을 쉬이 받아들이지 못한다. 그렇다. 그 담담한 인사는 예전에 그랬듯 할머니가 다시 깨어날 것이라 믿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던 것이다.


그들의 처음 수술을 상상해보았다. 아마 그때의 굿바이 인사는 이번 에피소드에서 그려진 것과는 달리 구구절절 눈물이 흘러나올 수밖에 없는 진짜 이별의 인사였을 것이다. 정말로 마지막일지 모를,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아주 슬픈 헤어짐의 인사. 그게 당연한 게 아닐까. 나는 할머니의 죽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얼빠진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아름다운 이별은 없음을 다시 실감했다. 사랑하는 사람이 사라지는데 어찌 그 이별이 담담할 수 있을까. 아름다운 이별은 없는 것이다.



익숙해진다는 건, 상황이 반복된다는 건 그런 것일까. 진짜 죽음의 경계선에 있는 아내의 마지막 인사를 구별할 수 없는 그런 것이 익숙함이라고 생각하니 갑자기 슬퍼졌다.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오늘, 오늘과 다를 것 없을 것 같은 내일이 지겹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너무 무서운 일이라는 것에 순간 소름이 끼쳤다. 일상의 지루함과 익숙함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지 말아야겠다 또다시 다짐했다. 물론 이 깨달음은 처음이 아니지만 이렇게 한 번씩 불쑥 찾아온다. 그것은 아마 잊지 말라는 신의 계시 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는 잠이 오지 않는 어느 밤이다.


요즘 유퀴즈의 짤을 즐겨 보고 있는데, 그중에서 정우성 씨의 인터뷰 한마디가 생각난다. 그는 영화배우라는 직업을 한 마디로 표현하라는 질문에 '꿈'이라는 표현을 썼다. 일반인이 봤을 땐, 영화나 배우가 꿈처럼 느껴지겠지만 결국 영화가 그리고 배우가 그리는 장면은 우리 일상의 한 단편이라고. 그렇다면 우리 일상 자체가 하나의 꿈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한다고 했다. 그런 그의 말은 그가 오랜 시간 영화를 해 온 사람이라 그런지 더 진정성 있게 느껴졌다. 나의 일상이 영화라면 나는 그 영화 속 주인공이다. 비록 관람객은 없지만 나의 일상을 공유할 수 있는 가족과 친구들, 그리고 동료들이 있다. 혼자이면서 혼자가 아닐 수 있는 삶에 감사하며 나의 일상 속 보석처럼 반짝거리는 순간들을 잘 찾아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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