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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진 Aug 27. 2021

우리는 모두 늙는다

친구가 ‘나빌레라’라는 드라마를 추천해주어 한 번 찾아보게 되었다. 극 중 발레리노를 꿈꾸었던 할아버지 '덕출'(박인환)은 우연히 젊은 발레리노 '채록'(송강)의 연습장면을 보게 되고, 큰 용기를 내어 연습실을 찾는다. 이전에 자기 연습 장면을 봤다는 것을 알아챈 채록은 그가 다시 찾아온 것이 불쾌했던 것인지 무표정하고 차가운 말투로 덕출을 대한다. 왜 자기를 쳐다보냐며 쏘아붙이는 것이다. 보는 사람이 무안해질 정도의 쌀쌀함.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렇게 까지 말해야 하나 싶은 태도에 나는 짐짓 화가 났다. 그리고 다시 마주친 할아버지가가 꾸벅 인사를 하는데 대꾸도 않고 그 인사를 무시한 채 지나가는 채록을 보면서 나도 모르게 ‘너는 안 늙는 줄 아니’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나의 마음은 늘 20살 그 시절과 달라진 것이 없다 하지만 나는 이미 나이가 들어가고 있음을 느낀다. 청춘이라 불리던 시절을 차치하고도 우리 아이들이 갓난쟁이에서 곧 학교 갈 나이가 되어갈 시간만큼 시간은 흘렀고 나는 나이가 들었다. 아닌 것 같지만 나의 생각은 이제 기성세대로 접어 들어가고 있음을 자각한다. 요즘 10대 20대들의 문화를 잘 알지도 못하고, 안다 해도 잘 이해가 안 되며, 공감도 재미도 느끼지 못하는 그런 어른이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이가 들어간다는 것이 조금은 서글퍼진다. 내 생각엔 지금이 전성기인 것 같은데 나의 좋은 시절이 다 지나가고 있는 느낌이랄까. 아이들이 빨리 커서 자기 할 일을 알아서 하는 시기가 찾아오면 싶으면서도 그때쯤이면 내가 많이 늙어있겠지 라는 생각에 짐짓 우울해지기도 한다. 


엄마를 볼 때면 더욱 그렇다. 엄마가 처음 주식을 시작했을 때에는 증권사에 직접 가서 직원을 통해서 주문하곤 했다. 그러다가 시대에 발맞춰 스마트폰으로 주문하게 됐는데, 그때에는 내가 옆에 있을 때였기에 문제 될 일이 없었다. 하지만 나는 멀어졌고, 이제는 엄마가 혼자서 주문을 하다가 잘 되지 않으면 전화가 걸려오곤 하는데, 몇 번을 알려주었지만 자꾸 까먹곤 하는 엄마를 대할 때마다 여간 답답함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한 번은 엄마가 주문이 체결된 지를 모르고 버튼을 여러 번 누르는 바람에 미수금으로 주식을 사는 사태가 일어났다. 외상으로 주식을 산 것이다! 전화로 통화를 하지만 엄마 폰을 들여다볼 수는 없는 노릇이니 어찌나 답답하던지, 처음에는 그것도 모르고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를 알아보는데 정말 속에 천불이 날 것 같았다. 그러다가 아는 분께 여쭤보고 사건을 해결했는데, 그야말로 나도 모르게 엄마한테 소리를 치면서 짜증을 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해결은 간단했다. 외상으로 산 만큼의 돈을 계좌에 입금하고, 앞으로는 미수금으로 살 수 없도록 증권사에 전화를 해서 제한 설정을 하라는 것이다.) 


이것은 한 일화일 뿐 나이가 들어가면서 내가 엄마한테 짜증을 낼 수밖에 없는 그런 상황은 왕왕 발생한다. 그 타이밍은 어째서 늘 내가 바쁘거나 일이 있는 상황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당연히 그렇게 전화를 끊고 나면 후회가 물밀듯이 밀려온다. 왜 그랬을까. 나중에 내 자식이 나한테 이러면 어떡하지? 내가 나이가 들어서 잘 모르는 것들을 자꾸 물어봐야 하는 그런 때가 왔을 때, 자꾸 반복되는 질문에 우리 아이들도 짜증을 내거나 버럭 화를 낸다면 얼마나 서글프고 슬플까를 생각하니 엄마에게 버럭 소리친 내가 너무 나쁜 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후회를 할 걸 알면서도 왜 그러는 걸까... 내가 나이가 들어가는 만큼 엄마도 나이가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일지도 모르겠다. 늘 내가 도움이 필요할 때 SOS를 하면 언제든 달려오던 엄마가 조금 더 시간이 흐르면, 어쩌면 자꾸 기억을 잃어가 이제는 손녀의 얼굴도 기억하지 못하는 우리 할머니처럼 그렇게 되는 것이 무서워인지도 모르겠다. 


예전에는 아무 생각 없이 받아먹던 엄마가 직접 만든 된장, 고추장을 더 이상 받아먹을 수 없을 때가 온다면 그때의 나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를 한 번씩 생각한다. 지금 당장은 너무 먼 미래로 그리고 있는 그날이 영원히 오지 않으리라 믿고 있지만 지극히 현실적으로 볼 때 나의 바람은 헛된 망상일 뿐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래서 엄마가 외할머니로부터 된장 만드는 법을 배웠듯 나도 엄마한테 배워야 하는 걸까? 하는... 이제껏 단 한 번도 해 본 적 없는 생각들을 하게 된 요즘, 나는 나이가 들었음을 실감한다. 물론 지금 당장은 메주 뜨는 법을 배우기보다는 어떡하면 글을 더 잘 쓸 수 있을까가 관심대상이긴 하지만 말이다. 


나이가 든다는 건 빛이 나는 순간이 사그라져 간다는 것이다. 아무리 시대를 풍미했던 스타들도 세월 앞에 장사 없음을 브라운관을 통해 실감한다. 드라마 속 '덕출'은 왜 발레를 배우고 싶냐는 선생님의 질문에 본인은 지금껏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아본 적이 없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한다. 그 시절에는 모두가 그랬기에 꿈을 접어둔 채 남들처럼 살았지만 이제는 자기가 한 번 해보고 싶은 걸 해보고 싶다고 말한다. 그렇게 말하는 할아버지 '덕출'의 나이는 70이다. 


내 나이 70이 됐을 때, 나는 어떤 모습일까. 분명히 바라는 것은 지나간 인생을 돌아보며 후회하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다. 나이가 들었음을 서글퍼하면서 누구도 찾아주지 않는 신세를 한탄하면서 하루를 멍하니 보내고 싶지는 않다. 일하는 것이 즐거운 것은 아니지만 막상 내가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때가 왔을 때를 생각하면 과연 그것이 그리 좋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타의에 의한 것이든 자의에 의한 것이든 사람이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그 자체로 죽음을 기다리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모두 늙는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한 혹은 늙음을 향한 레이스를 시작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 길고 긴 인생의 여정에서 나는 죽을 때까지 일하고 싶다. 그리고 그 일은 내가 하고 싶은 일이기를 소망한다. 비자발성에 의해 억지로, 어쩔 수 없이 하는 것이 아니라 비록 힘은 들지만, 어렵기는 하지만 내가 보람을 느낄 수 있고,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그래서 누군가에게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그런 일을 하면서 나는 죽음을 맞이하고 싶다. 


늙어 간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청춘을 향해 달려가는 시기에는 하루빨리 나이가 들기를 바라지만, 우유에 달콤한 시럽이 그득한 커피가 점점 더 소화하기 힘들어지는 때에 접어들면 나이를 먹어가는 것이 서글프다. 나이를 먹어감을 기대하는 시기는 이미 훌쩍 넘어가버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서글픔에만 매몰되어 있고 싶지는 않다. 사실 누군가가 봤을 때엔 청춘의 시기일지도 모를 때가 아닌가. (그렇다. 나는 우리 학년에서 막내다!) 매번 하는 결심이지만 오늘도 한 번 더 결심해 본다. 그냥 지금 이 순간을 열심히 살아가자. 게으름과 나태는 늘 내 옆에서 나를 유혹하지만 매번 그 유혹에 넘어가지는 않겠다는 마음으로, 오늘 하루도 부지런히 살아가는 내가 되기를. 


표지 사진 : TVN 공식 홈페이지 

http://program.tving.com/tvn/navillera/7/Board/View?b_seq=1&page=1&p_size=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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