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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진 Oct 15. 2021

내가 좋아했던 만화책 그리고 계속되는 나의 인생

만화책을 참 좋아했던 나는 시험기간이 끝나면 만화방에 가서 그간 보고 싶었던 만화책들을 빌려다가 쌓아두고 보는 것이 낙이었다. 당시에는 비디오와 만화책을 대여해주는 가게들이 유행처럼 번져서 손쉽게 만화책을 빌려볼 수 있었는데 다양한 장르의 만화책을 가리지 않고 빌려다 봤다. 그 와중에 내가 즐겨봤던 것은 아무래도 사춘기 소녀의 마음을 흔들, 당시엔 순정만화라 불리던 로맨스 장르였다. 일본 만화 한국 만화 가리지 않고서 열심히 봤는데, 입문이 일본 만화였다면 종국에는 한국 작가들의 만화에 빠지게 되었다. 그러던 것이 세월이 흐르면서 대여점은 점점 문을 닫고, 웹툰이라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면서 만화책을 접하는 것은 점점 멀어져 갔다. 


그러다가 친구의 소개로 명동에 있는 애니메이션 센터라는 곳을 알게 됐는데, 그야말로 보물 같은 곳이었다. 아이들을 위한 뽀로로 키즈카페도 있고 무엇보다 옛날 대여점에서 볼 수 있었던 만화책들이 즐비하게 진열되어 있었다. 게다가 그 책들을 공짜로 마음껏 볼 수 있다는 것이 너무 매력적인 곳이었다. 이미 학부형이 된 나의 친구는 아이들을 데리고 와서 각자 읽고 싶은 책을 읽는 시간을 가지는 것에 반면, 나는 아직 어린아이들의 줄기찬 요구로 자리 잡은 책상으로 가져온 추억의 옛 만화책 5권 중 단 한 권도 제대로 읽지 못했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친구와 헤어졌지만 나는 잠깐 보다 말았던 그 만화책이 자꾸만 아른거렸다. 


시간은 흐르고 삶이 바쁘게 진행되는 가운데 잠깐 잊고 있었던 그 만화책이 떠올랐다. 이미 절판된 책이라 중고라도 사야 하나 한참을 서칭 하던 중 웹툰처럼 인터넷 상에서 만화책을 볼 수 있는 사이트를 발견했다. 모바일로는 불가하고 PC로만 볼 수 있었는데 아마 원작자와의 계약을 통해 이미 출판된 책을 스캔하여 업로드한 게 아닐까 싶었다. 뭐가 됐든 이렇게나마 볼 수 있다는 기대감과 흥분에 들떠 추억여행의 값으로는 싸다는 생각을 하면서 기꺼이 얼마의 돈을 결제했다. 


결제를 하면서 자연스레 댓글을 읽게 됐는데, 나처럼 옛 시절의 향수로 찾아온 사람들도 있었고, 그림이 예뻐서 결제를 했다가 글이 너무 많아서 별로라는 댓글도 있었다. 아마 그 댓글을 단 사람은 90년대의 만화를 모르는 사람일 것이다. 작은 모바일 화면으로 봐야 하기에 컷 별로 진행되는 지금의 웹툰과는 달리 그 시절의 만화책들은 책으로 엮인 만큼 한 페이지를 가득 채워진 글과 그림이 너무 빽빽해 보일 수도 있겠다 싶어졌다. 그렇게 다시 보게 된 만화책은 그 댓글 말마따나 5권을 보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책으로 봤으면 눈이 덜 아팠겠건만 모니터 화면을 통해 보려니 그것도 여간 골치가 아니었다. 


세월이 지나서 다시 보게 된 만화책은 당시에는 볼 수 없었던 것들이 많이 보였다. 예전에는 인물들과 그들의 대사에만 집중을 하고 봤는데, 다시 보면서 컷마다 빼곡하게 그려진 배경들을 보는 것이 새로운 재미로 느껴졌다. 당시에는 아마 지금 웹툰 작가들처럼 배경 사진을 찍어서 업로드를 하면 그림 같은 느낌이 나도록 만들어주는 프로그램 같은 건 없었을 때라 아마 손수 스케치를 다 했으리라. 인물만큼이나 정성스러운 배경들의 디테일한 묘사에 나는 그만 읽기를 멈추어 버렸다. 그때는 모르고 지금은 안다더니 옛날에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인다는 것이 색다른 기분이 들었다. 작가의 눈에 좀 더 다가가게 된 것일까. 아니면 그냥 서울 생활 짬밥이 늘어서 만화 속 배경이 어디인지를 알게 된 탓일까. 순간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의 여행을 떠난 기분이 들었다. 


지금의 웹툰에서는 느낄 수 없는 것들을 느끼면서 새삼 그 시절의 향수와 함께 18살의 나의 모습들이 짧게나마 그려졌다. 오랜 기간 살았던 동네, 지겨웠던 교복, 베프와 함께 하던 등하굣길 그리고 참새방앗간처럼 들리던 만화책 대여점 등 불현듯 그 시절의 모습들이 떠오르면서 나는 그때와 얼마나 멀어졌을까 싶어졌다. 


나는 그때와 얼마나 멀어졌을까. 지금의 내 모습은 당시의 내가 상상하던 모습일까. 


추억의 흑백 만화책과 컬러 웹툰의 간격만큼이나 18살의 나와 38살의 나는 같은 사람일까 싶을 정도로 많이 달라졌다. 하지만 만화라는 장르의 본질은 여전하듯 나도 그렇다. 그때와 분명히 달라지긴 했지만 나의 본질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을 것이다. 시기마다 달라지는 역할에 따라서 나의 삶도 달라지고 있고 나의 생각도 달라지고 있을 뿐. 나는 여전히 나다. 앞으로의 20년 후는 또 얼마나 많은 것이 변해가고 달라지게 될까? 나도 세상도 말이다. 우리 할머니의 18세의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운 만큼이나 58살의 내 모습을 상상하기가 어렵다. 단지 그랬으면 하는 기대감만 있을 뿐 그 어떤 것도 지금의 내가 결정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그저 하루하루를 열심히 사는 것만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이다. 


즐겨보던 웹툰 중의 하나가 얼마 전에 완결이 났다. 새로운 시작을 위해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된 여자 주인공에게 남자 주인공은 자기가 예전에 그녀로부터 들었던 말을 전하면서 응원한다. 


계속하면 언젠가는 다음이 와.


이 문장은 작가의 말에도 있다. 작가는 그런 마음으로 2018년부터 이 작품의 연재를 계속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 말이 오랜 여운을 준다. 나 역시 계속해서 하면 다음이 온다는 말을 믿고 싶다. 많은 것이 변하는 세상 속에서 그에 발맞춰 나가려면 나 역시 계속해서 해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 흑백 만화책에서 컬러 웹툰으로 세상은 변했지만 그때도 지금도 만화라는 장르는 멈추지 않은 것처럼, 나의 인생도 비록 중간에 잠시 쉬어가더라도 절대 멈추지 않기를,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라본다. 




*표지 사진 : 네이버 웹툰 <유일무이 로맨스>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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