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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진 Nov 10. 2021

달인이 되기 위해서

첫눈을 맞이하며 

달인이 된다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비발디의 사계를 연주하는 바이올리니스트의 유려한 손놀림을 보면서 감탄을 금치 못하는 가운데, 나의 글쓰기 역시 누름판 위에서 활개를 치는 그녀의 손가락처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을 시기가 올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했다.


어설픈 비브라토를 통해 손가락을 열심히 움직여 보지만 그녀가 내는 아름다운 소리를 흉내조차 낼 수 없는 수준의 초보 연주자라고도 말하기 뭣한, 그저 바이올린을 아주 조금 켤 수 있는 사람으로서 연습하면 언젠가는 약간은 그럴듯한 소리를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지금으로서는 바이올린 연주보다 내 머릿속에 엉켜있는 생각들을 자유자재로 풀어내는 달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크다.


드라마를 보면서 드라마 작가들은 어떻게 저렇게 재미와 감동을 함께 주는 글을 쓰는 것인지, 소설을 읽으면서 어쩌면 캐릭터 모두가 직접 그 인물의 삶을 진짜 살아본 마냥 생생하게 살아있는 것인지 감탄한다. 자꾸 쓰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는 것인지. 아니면 타고난 재주라는 것이 있는 것인지... 괜한 자격지심과 부러움이 고개를 들지만 그들이 온 힘을 기울여 그 작업에만 충실히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아주 오랜 시간을 거북이처럼 꾸준하게 해왔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현장조사를 위해 직접 발 벗고 뛴 결과물이라는 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보다 좀 더 귀 기울여 타인의 말을 듣고, 좀 더 귀 기울여 타인의 삶을 관찰하고 기록해 둔 것의 결과라는 것을... 어렴풋이 알고 있다. 나처럼 발 하나만 담그고 있는 사람은 이뤄내기 힘든 일이라는 것도 말이다.


그러기 위해선 더 열심히 읽어야 하고, 더 열심히 써야 하는데 내가 하는 일이라곤 고작 하루에 한 시간 정도를 할애해서 글을 쓰는 것뿐이다. 읽을 책은 산더미인데, 책 읽기보다는 드라마가 더 보고 싶고, 누군가의 이야기에 관심을 기울이고 좀 들여다봐야 하는데, 퇴근하면 그저 눕고만 싶어 진다. 아이들이 하원 하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그 짧은 시간이나마 그저 마음대로 하고 싶어지는 것이다. 대부분의 직장인이 그렇듯 주말을 활용해서 뭘 좀 해볼까 싶지만서도 그것이야 말로 큰 무리수 이리라. 아이들과 놀아주다 보면 주말은 그야말로 순삭이다.


알록달록한 단풍이 달려있던 나무들은 어느새 앙상한 가지를 드러내고, 차창 밖으로 떨어지는 눈발에 겨울이 왔음을 실감한다. 털조끼를 입고서 아직은 너무 과한가 싶었던 이른 아침 출근길의 짧은 고민이 무색해지는 쌀쌀한 겨울 아침. 눈이 비처럼 흩어지는 도로를 달리면서 와이퍼를 껐다 켰다, 지금 내리는 것이 눈인가, 비인가, 해가 언제 뜰지 모르는 깜깜한 밤과도 같은 새벽,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로를 이미 꽉 채운 차들을 보면서 오늘 해야 할 일들, 미뤄두고 마무리하지 못한 일들을 떠올린다.


새벽에 달리기를 하고 기록을 인스타에 올리면서 대학 동기의 새소식을 마주했다. 누구보다 열정적이었던 그 친구를 떠올리며 지금도 자녀교육에 남다른 열정을 불태우고 있는 모습에 대단하다 느꼈다. 문득 그녀와 함께 했던 나의 대학시절이 떠올랐다. 지금 생각하니 그때의 나는 참으로 맹탕이었구나 싶다. 언제나 열정에 넘쳐 매사에 열심히이던 그녀와 달리 그 시절의 나는 그 무엇 하나 열정적이지 못했다. 패션 디자이너 노라노 씨를 인터뷰한 글(자기 인생의 철학자들, 김지수 저)을 읽으면서 인생의 어떤 순간에 한 번 열심히 매달려 보지 않는 삶이 얼마나 후회가 될 수 있는지를 새삼 깨달았다. 더 열심히 공부했더라면의 후회는 고등학교 때가 아니라 오히려 대학교 때이다. 가장 반짝이던 시절일 수 있던 그 시절에 나는 왜 그렇게 시간을 낭비했을까. 나보다 잘난 친구들 틈바구니 속에서 해도 안될 거라는 자괴감이 나를 너무 짓눌렀던 것일까. 공부도 연애도 모든 것이 다  지지부진했던 그 시절의 나를 돌이켜보며 후회가 소용없다는 걸 알면서도 참으로 후회가 된다. 이런 넋두리가 이제와 무슨 소용인가 싶지만은.


차 안에 크게 틀어놓은 흥겨운 캐럴과 대조되는 차창밖의 깜깜한 하늘과 흩날리는 눈발. 창문을 열어보지 않아도 느껴지는 차가운 공기와 핸들 열선에서 뿜어내는 따뜻함을 느끼면서 오늘은 꼭 서랍 속의 글 하나를 발행해야겠다고 다짐한다. 여전히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혹은 굉장히 유익한, 혹은 엄청 재미난 글을 쓰는 것은 아니지만 추운 겨울을 맞이하며 나처럼 마음이 싱숭생숭할 그 누군가의 공감하나를 기대하면서 말이다. 달인이 될 수 있을지 없을지, 언제쯤 달인이 될 것인지 아무것도 장담된 약속은 없다. 그저 달인이 되고 싶다는 분야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기로 한다. 하고 싶은 일이 있다는 것이야 말로 축복이라는 것을 알게 됐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멜랑꼴리란 접어두고 부지런히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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