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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진 Jan 11. 2022

서울의 여름

장마가 시작되었구나. 세상이 비가 쏟아지다 말다 쏟아지다 말다 하는 국지성 호우가 시작되는가 싶었는데 이제 본격적으로 세상이 끈적해지고 있다. 버스에 내렸는데 왜 수영장에 들어선 것만 같은 느낌이 드는 건지. 오늘 새벽에 달릴 때도 그랬다. 물기를 한 껏 머금고 있는 공기가 촉촉하다기보다는 끈적했다. 아마 여름의 온도 때문이겠지.


하늘은 당장이라도 비를 쏟아낼 것만 같은데, 일기예보를 들여다보면 딱히 비가 내릴 것 같지는 않다. 이곳은 비가 내리지 않지만 어딘가에서는 비가 쏟아지고 있겠지? 친구가 살고 있는 거제, 우리  친정식구들이 살고 있는 대구에는 비가 많이 내렸다고 하는데 서울은 아직 비가 내리지는 않는다. 사회시간에 배우는 우리나라는 참 작은 나라이기만 한데, 이 작은 나라 속에서도 어찌 이리 온도차가 큰 것일까.


온 세상이 반쯤은 물에 잠긴듯한 이 느낌은 동남아에서만 느끼는 것이라 여겼는데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동남아의 아열대 기후가 나타나고 있다. 지구온난화의 실상을 온몸으로 느낀다. 라떼는 같은 말일지 모르지만 내가 어릴 적 여름은 이렇게 덥고 습하지 않았다. 특히 대구에서 태어나고 자란 내가 기억하는 여름은 그냥 뜨거운 뙤약볕이었다. 습한 것보다는 그냥 쨍하고 더운, 뜨거운 햇빛을 피해 그늘을 찾아들어가면 금방 시원해지는 그런 계절이었는데, 서울은 참 다르다. 서울의 여름은 참으로 끈적했다. 습한 기운이 오래 지속됐고, 덥고 짜증이 났다. 견딜 만 하지만 유쾌하진 않다.


그 언젠가, 여름의 한가운데서 나는 부푼 배를 부여잡고 재봉틀을 돌렸더랬다. 처음으로 아이를 가진 엄마들의 유별날 수 있는 행렬에 나 역시 거스르지 않고 온갖 정성을 기울였다. 배냇저고리를 직접 만들어 보겠다고 땀을 뻘뻘 흘리면서 재봉틀을 돌렸던 당시의 여름. 그 여름의 기억은 당시 내가 어떤 옷을 입고 있었는지 옷 색깔이 무엇이었는지까지 기억할 정도로 정확하게 각인되어 있다. 물론 그때의 그 끈적한 느낌까지도 말이다. 열심히 돌아가는 선풍기, 창밖으로 추척추적 내리는 비, 비가 내리는 것과 상관없이 식혀지지 않는 온도에 후덥지근하고 눅눅한 공기. 새로 주문한 에어컨이 아직 도착하기 전이었던 그날, 부른 배를 부여잡고 난 뭘 그리도 뻘뻘 애를 쓰면서 쿠션 커버까지 만들었던 것일까. 어쩌면 남편도 출근하고 친정도 멀고, 친구들도 만나기가 여의치 않았던 그날들의 하루하루가 너무 지겨워서였을지도 모르겠다. 눅눅한 공기만큼이나 느리게 흘러가던 하루가 너무 길어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그 며칠, 배냇저고리와 속싸개, 겉싸개 그리고 쿠션 커버까지 만들어 낸 나의 재봉틀은 그때 잠깐 활동을 하고 오랜 기간 창고 속에 박힌 채로 다시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날 나의 뱃속에 있던 첫 아이는 남편의 생일과 같은 겨울에 태어났다. 그리고 둘째 역시 두 돌 터울로 나를 제하고 모두 겨울의 사람들이다. 그들은 모두 서울 사람들로 대구의 여름은 잘 모른다. 친정에 한 번씩 가곤 하지만 20년을 대구에서 자란 내가 느꼈던 그 여름은 아마 알 수 없을 것이다. 내가 남편의 어린 시절 서울의 여름을 알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누구보다 가까운 사람이지만 이럴 땐 새삼 먼 사람인 것도 같다. 아이들도 마찬가지다. 우리 아이들이 기억하는 여름은 어떤 것이 될까 궁금해진다. 그들과 앞으로 수많은 계절을 함께 하겠지만 얼마의 기한이 지나고 나면 계절의 교집합은 찾기 힘들어질지도 모르겠다. 그것을 생각하니 조금은 홀가분하면서도 또 조금은 서글퍼진다. 우리 아이들과 나의 간격은 얼마나 차이가 나는 것이며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할까. 직접 경험해보지 못한 것은 아무리 설명을 많이 한들 한계가 있다는 것을 직업적 특수성으로 나는 잘 알고 있다. 겪어 보지 않음의 차이는 남자와 여자의 거리만큼이나 멀다. 이야기가 왜 이렇게 흘러가는 걸까 싶지만 새삼 여름의 눅진한 공기처럼 썩 유쾌하지 많은 않게 느껴진다.


여름을 생각하며 나의 가족을 떠올린다. 친정의 부모님과 남동생과 함께 했던 강렬한 태양 아래의 여름의 기억은 여전히 뚜렷하다. 여름휴가로 떠난 계곡에서 다이빙을 하며 뜨거운 햇빛을 피했던 그 시절의 나는 어느덧 훌쩍 자라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우리 부모가 그랬듯 나와 같은 자식을 낳았다. 매일 보던 부모 형제는 이제 가끔 만나는 사이가 되었고, 새로운 가족과 매일매일 치고받으면서 하루를 일상처럼 살아가고 있다. 서울의 여름이 내게 일상으로 다가왔듯 나의 새로운 가족들 역시도 이제 나의 일상이 되었다는 것에 그리 오래 살아온 인생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오래 살고 볼 일'이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쏜살같이 지나갔다 싶지만 지나간 세월이 그리 짧은 시간은 아니었구나 나의 인생도 참으로 지난하고 길었구나 싶다.




오래전에 써둔 글을 다시 재정비하는 지금은 밤새 내린 눈이 소복이 쌓인 추운 겨울날이다. 여름에 시작한 글을 여태 마무리하지 못하고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이제는 마무리해야겠다. 다시 읽으면서 무슨 말이 하고 싶었던 걸까 반추해본다. 글을 다시 읽으면서 어떤 날이었는지가 생생하게 기억나는 걸 보면 무슨 말이 하고 싶었다기보다는 그냥 그 여름의 뜨겁고 습한 기운을 남기고 싶었던 것 같다.  한껏 물기를 머금고 있던 그날의 출근길이 유독 힘들었구나 떠올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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