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꾼 꿈은 설렘 한 방울일까?
아주 오래전, 여느 때처럼 명절 연휴를 보내고 서인지, 아니면 주말여행을 다녀오는 길이었는지 모를 차가 막히던 어느 밤, 우리 가족은 차 안에서 열띤 토론을 벌였다. 한창 조성모라는 가수가 당시 최고 아이돌 가수였던 HOT에 견줄 만큼 인기를 구가하던 그 시절, 아빠와 나는 때 아닌 논쟁을 벌였던 것으로 기억이 난다.
요지는 당시 Club HOT(HOT 팬클럽)의 일원이었던 나는 '조성모'라는 가수의 인기를 납득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고, 아빠는 그런 내 생각이 틀렸다고 반박하는 상황이었다. 나의 발언은 조성모라는 가수는 단지 노래가 좋아서 인기를 얻었을 뿐이지만, HOT는 사회문제를 고발하는 노래를 멤버들이 직접 만들고, 춤과 안무를 모두 소화해내는 그야말로 전천후의 가수이기 때문에 둘을 비교하는 것 자체가 말이 안 된다는 것으로 팬으로서 사심 가득한 편파적이고 무논리적인 주장이었다. (이불킥을 열 번도 넘게 할 억지 주장이지만 당시에는 진지했다.)
그런 나를 설득시키려 아빠가 제기한 것은 '대중성'이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것을 인정하려 들지 않느냐는 것이다. 내가 HOT를 좋아하듯 다른 사람들이 조성모의 노래를 좋아할 수 있는 것이고, 많은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것은 큰 힘이 있다는 것이 아빠의 주장이었다. 물론 당시의 나는 끝끝내 아빠의 말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고, 도로의 정체구간이 풀림과 동시에 우리의 논쟁은 허무하게 끝나버렸다.
청소년기의 나는 그 시기의 자기 중심화 경향에 빠져서 무엇인가 특별하고 오리지널의 것을 추구했다. 무난하고 평범한 것보다는 '나'만 아는 것, '우리'끼리만 아는 것과 같은 그런 느낌 말이다. 그래서 또래의 친구들이 좋아할 법한 영화를 보기보다는 이해하기 힘든 예술 영화들을 보는 것을 좋아했고, 그것들을 보면서 나의 고고한 취향에 대해 스스로 우쭐하기도 하고 그랬던 것 같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대중성'이란 '특별하진 않지만 인기가 많은' 정도로 해석하며 그것이 가진 힘을 간과해버렸다.
그런 내가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읽으면서 당시에 아빠가 말씀하셨던 ‘대중성이 가진 힘'이라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비로소 수긍했다. 아이돌을 좋아하지 않은 대중이 보기에 그들의 아이콘적인 외모와 콘셉트를 이해하기가 쉽지 않지만 그들의 타깃은 특정 세대(청소년)에 국한되기 때문에 오히려 전략이 먹혀들기 쉽다. 그에 반해 특정 세대만 공감할 수 있는 것을 넘어 여러 세대가 함께 공감하고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대중성을 확보하는 일은 실로 어려운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책을 읽으면서 마니아층을 확보하는 것만큼이나 대중의 취향을 고루 잡아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를 새삼 실감했다. ‘대중성’은 ‘독특함' 혹은 '특별함' 만큼이나 큰 의미가 있는 것이었다.
솔직히 처음에 책을 읽으면서 느꼈던 것은 (모든 것들이 그렇겠지만) 기대만큼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냥 술술 읽히는 재미있는 책으로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과 배경 설정이 돋보였지만 그것이 전부라고 여겼다. 왜냐하면 에피소드 형식으로 구성되어 진행되는 스토리에 각각의 에피소드에서 전하는 메시지가 상당히 상투적이라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해리포터의 분위기는 갖고 있지만 그것처럼 대서사를 이어갈 굵은 스토리가 부재하다는 것이 나의 실망 포인트였다. 그런데 책은 불티나게 팔려 스페셜 에디션판이 출간되었고, 1편의 인기에 힘입어 현재는 2편이 출간된 상태이다.
내가 간과했던 대중성이라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이 책은 청소년 친구들부터 어른까지 모두가 쉽게 접할 수 있는 '꿈'을 소재로 삼아서 독자를 사로잡는다. 책에서 그려지는 배경 세팅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해리포터의 서사는 없지만 나도 어쩌면 이 세상에 갈 수도 있겠다 싶은 친숙함이 있다. 애초에 머글로 태어난 나의 현재를 어찌할 수 없는 해리포터와는 달리,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서 그려지는 세상은 누구나 꿈을 꾸면 찾아갈 수 있는 세상이라는 것이다. 어쩌면 진짜 다녀왔지만 기억하지 못할 뿐, 실제로 존재하는 곳일지도 모른다는 가능성이 열려있는 곳이라는 그 실정이 기발했다. 그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나는 어쩌면 어젯밤 꿈속에서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 다녀왔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곳에서 꿈을 산 대금은 오늘 출근길에 느꼈던 '신남' 한 방울로 입금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좋은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난 뒤 여운이 오래 남는 것처럼, 달러구트의 여운은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어쩌면 지금 내가 그 세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착각, 드라마 속 주인공은 아니지만 나 역시도 어떤 장면의 주인공처럼 살아가고 있을 것이라는 착각, 지루한 현실이지만 알고 보면 너무도 감사한 삶을 살아가고 있을 수 있다는 그런 착각의 여운을 말이다.
꿈을 꿀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멋진 일이다. 수면욕은 인간의 기본 욕구 중 하나이고 잠을 자면서 인생의 1/3을 보내는 만큼 꿈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어쩌면 우리의 인생에 있어 꽤나 큰 영향을 차지하고 있을지도 모를 노릇이다. 평생 꿈을 연구한 프로이트는 세상 누구보다도 일찍 그 가치를 깨우친 것일지도 모른다. 기억하든 그렇지 않든 우리는 매일 꿈을 꾼다. 인간이 매일 밤 잠이 들면서 꿈을 꾸는 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항상 꿈꾸는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내가 꾸는 꿈이 대중의 호감을 사게 될 때 내 꿈이 이뤄지리라는 것을 <달러구트 꿈 백화점>을 읽으며 알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