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약이다'라는 말을 눈으로 확인하니 뭔가 또 낯설게 느껴진다. 두 달여 전, 양파를 썰다 손가락을 썰 번했던 나는 얇게 포가 떠진 가운데 손가락의 손톱 왼쪽 부근을 4 바늘 정도 꿰맸다. 2주 정도를 고무장갑을 끼고서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하다가 드디어 실밥을 풀었다. 실밥 푸는 것이 이렇게 아플 일이었던가. 꿰맬 땐 마취로 인해 느낄 수 없었던 고통―살을 통과하는 이물질로 인한―을 체험하는 건 썩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칼에 베인 살을 꿰맨 건 두 살이 붙기 위함이 아니었다는 걸 실밥을 풀고 알게 되었다. 포가 떠진 살은 실밥으로 인해 붙은 게 아니라 이미 죽은 세포가 되어 나가떨어질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소독과 드레싱을 받는 2주 동안 새 살은 이미 돋아났고, 얇게 잘려나가 겨우 매달려있던 죽은 살은 새 살에 의해 밀려나 어느 순간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걸 보고 있노라니 그렇다면 꿰매지 않고 그냥 두었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그다지 상상하고 싶지는 않은 가설도 떠올랐다.
그리고 실밥을 푼지도 벌써 한 달 정도가 지난 지금 손가락을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언제 그리 큰 상처가 있었는지 조차 모를 정도로 회복했다. 물론 자세히 들여다보면 잘려나갔던 모양, 꿰맸던 자국이 희미하게나마 보인다. 하지만 더 이상의 아픔도, 불편함도 없다. 굳이 기억을 들춰내지만 않는다면, 내 손가락 위로 지나갔던 큰 칼의 흔적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지난 일이 되어버린 것이다.
시간이 약임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참으로 신기하다. 베이고 꿰매고 드레싱을 갈아주는 시간 동안 이래 저래 불편함을 느끼면서, 이 시간이 언제 다 지나가 다시 원래의 상태로 돌아오는 걸까 싶었는데 시간은 흘렀고, 다시 또 이렇게 회복했다. 시간이 가장 강하다는 말이 이런 뜻이구나, 그래서 시간이 약이라고 하는구나...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처를 통해 시간이 약이라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니 뭔가 대단한 발견을 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그렇다면 내가 걱정하고 있는 모든 것들도 이렇게 시간이 다 해결해 주는 걸까. 물론 과거의 일일들을 돌이켜보면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너무도 예스가 된다. 지난날 나를 위로했던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는 문장은 ‘시간이 약이다’라는 문장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하지만 몇 날 며칠째 정리되지 않는 이 글을 보면서 걱정만 하고 있는다고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지난날의 걱정들을 돌아보면 쓸데없는 생각들로 괴로워만 하는 것은 상황을 나아지게 하는데 사실 조금의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건 비관론자가 되어서가 아니라 점점 이성적 사고가 가능해진 훈련 덕분일지 모르겠다. 시간이 흐르면 어떻게든 해결이 되겠지 라는 막연한 생각으론 이 글을 발행할 수 없을 것이다. 대면하기는 싫지만 노트북을 켜고 다시 읽고 수정하는 수고를 들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시간이 나의 상처를 아물게 한 것은 틀림없지만 나는 그 상처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았고, 낫기 위해 병원을 다녔던 수고로움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한다. 시간은 그냥 흐른 것이 아니라 그 시간 동안 애를 썼던 노력이 있었음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그러니 시간이 흘러가기만을 목놓아 기다릴 수는 없다. 모든 것은 지나가기 마련이지만 그 지나가는 시간을 그저 흘려보내서는 내가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는 없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하루를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 자꾸 머리를 맴돈다. 대단찮은 인생일지라도 아무도 나의 행보에 관심이 없을지라도 오로지 나를 위해서 열심히 살고 싶다. 한 번씩 무엇을 위해 이렇게 아등바등하나 하는 고민으로 허무함이 밀려올 때가 있었다. 의욕이 꺾인다는 건 생각보다 큰 허탈감을 가져온다. 허탈감을 느끼는 건 참 별로인 경험이고, 의욕이 없어지는 건 생각보다 무서운 일이다. 그건 눈에 보이지 않는 성과 때문이었다. 열심히 공부하지만 성적은 오르지 않고, 열심히 다이어트를 하지만 쉽사리 살은 빠지지 않는 것처럼 마음을 단단히 먹고 변화를 꿈꾸며 무엇인가를 시도하지만 괄목상대한 결과를 얻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대단한 목표를 바라는 것을 버리기로 했다. 지금 당장 행복해질 수 있는 순간들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하루를 단순화시켜 내가 해야겠다고 정한 일들만 하기로 결심한 것, 그리고 그 일들을 정할 수 있게 된 것은 포기하지 않고 자꾸 하다 보니 알게 된 깨달음이다. 그리고 이 깨달음 덕분에 도서관에서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 나는 행복함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시간이 해결해 주리라는 것을 알지만 그것에만 기대할 수는 없다는 걸 안다. 그래서 그냥 내게 주어진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고 싶다. 최선을 다하는 것은 힘들다. 그건 어떤 일을 하기에 앞서 이것이 최선을 다할 정도로 가치가 있는 일인지를 본능적으로 판단하기 때문일지 모른다. 지금 이 일이 최선을 다 해야 할 일인가를 판단하는 데 시간을 쏟는 것 자체가 많은 에너지를 소모시키는 일이기에 ‘현재를 즐겨라’ 혹은 ‘지금 이 순간을 치열하게 살아라’라는 말들을 실천하기는 참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어떤 의미를 찾지도 말고, 그 어떤 대단한 결과를 바라지도 말고 그냥 기계처럼 아무 생각 없이 그 일을 하겠다고 착수하는 것. 나는 지금껏 그것들이 내 몸에 베이게 하는데에 지난날들을 할애했다는 생각이 든다. 오랜 시간을 들여서 내가 기계처럼 해야 할 일들을 찾아냈고, 그것을 익숙하게 만들었다. 그게 아마 ‘습관’이라는 것이며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시간이 약이라는 말을 할 수 있게 하는 핵심일지도 모르겠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
인생의 괴로운 순간들에 놓일 때마다 나를 위로했던 이 문장 속에 담긴 것도 역시 시간이었다. 밀려왔다 다시 밀려나가는 파도처럼 힘든 일도 왔다 가고 좋은 일도 왔다 간다. 그렇게 모두가 다 지나간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결국 지나간다. 아마 그것은 이 세계를 살아가는 누구도 거스를 수 없는 삶의 법칙일 것이다. 그리고 지나간 것들은 흐려지기에 조금씩 미화되기도 하고, 완전히 잊히기도 한다. 좋은 것도 안 좋은 것도 모두 다 그렇게 사라져야만 하는 건 조물주가 인간을 위해 만들어둔 큰 축복일 것이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기 때문에 살 수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모든 것들을 기억한다면 그 자체로 삶이 괴로워진단다. 왜냐하면 우리 삶엔 모든 것이 좋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괴로운 것들을 잊을 수 있기에 인간은 살아갈 수 있다. 이상적으로 생각한다면 모든 것이 다 그렇게 다 지나가기에 법정 스님이 말씀하신 무소유는 참으로 맞는 말이다. 물론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른 차원이라 나는 아직도 속세에서 괴로워하면서 살아가고 있을 뿐이지만 말이다. 그럼에도 단지 괴로워만 하는 것은 아니라 다행이다. 행복한 순간들을 인지하고 좀 더 느낄 수 있게 된 지금에 감사한다. 다 지나가버리는 걸 알기 때문에 힘든 시간은 버틸 수가 있고, 행복한 시간들은 좀 더 느끼려고 노력한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주어진 시간이지만 아주 조금이나마 가치 있는 시간으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시간이 약인 건 맞지만 그 시간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잘 버틴 것도 나의 노력이고, 치열하게 했던 것도 다 나의 노력이었다. 그 시간 동안 어떻게 해서든 열심히 발버둥 쳤던 내가 있었음을 나는 알고 있다. 그러기에 지금도 발버둥 치는 내가 있다. 먼 훗날 내 인생을 돌아봤을 때, 시간이 약이라는 걸 다시 눈으로 확인하고 싶다. 그것 때문에 나는 오늘도 노트북 앞에 앉아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