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나를 찾아온 두 개의 행운
남편이 집을 비운 주말. 약속이 있는데 아이들을 봐줄 사람이 없어서 시댁에 가서 하루 머물렀다. 그리고 다음 날, 오랜만에 예매한 아동뮤지컬을 보러 가기 위해 아이들과 서둘러 길을 나섰다. 다음 날 비예보 때문이었을까. 우중충한 하늘은 남편 없이 아이들만 데리고 서울 시냇길을 운전해야 하는 나의 부담을 가중시켰고, 나는 무사히 오늘 나들이를 잘할 수 있기를 기도했다.
그래도 대략은 아는 길이었기에 무사히 잘 도착을 하나 싶을 무렵 이게 무슨 일. 도로의 한 차선을 가득 채운 줄지어진 차들의 행렬에 그만 기함을 하고야 말았다. 아니라고 부정해 보아도 그 차들은 주차장으로 진입하기 위한 차들이었고, 신호가 바뀌어서 움직여야만 하는 차 안에서 여유롭게 생각할 시간 따위는 없었기에 짱구를 열심히 굴리기 시작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재빠른 선택과 판단이지 넋 놓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현재 11시 50분경, 뮤지컬 시작은 2시이니 아직 여유가 있지만 차선에 합류하는 것은 무리라는 판단이 들었다. 어떻게 끼어들기를 할 것이며, 만약 운 좋게 합류를 한다 하더라도 얼마를 기다려야 주차를 할 수 있을 것인지 장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차선책은 공용 주차장을 빨리 찾는 것. 내비게이션으로 재빠르게 공용 주차장을 검색하면서 또 다른 플랜 b를 떠올렸다. 그것은 다시 시댁으로 돌아가서 차를 두고 택시를 타거나 지하철을 타고 오는 것이 었지만 그저 상상만으로도 최악의 시나리오였다.
다행히 멀지 않은 곳에 공용 주차장이 있어 침착하게 다시 운전대를 부여잡았다. 그런데 주차장으로 진입하는 도로가 여유로웠던 반면 어째서인지 내 앞에 서있는 두 어대의 차량이 도무지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았더랬다. 게다가 브레이크를 밟고 있다면 후방 라이트에 빨간불이 들어와 있어야 하는데, 두 차 모두 라이트가 꺼져있는 상태라 나는 순간 '지금 주차되어있는 것인가?' 하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했다. 답답한 마음에 내려서 확인을 하고 싶었지만 그렇게 하기엔 주차장 입구이긴 했지만 도로 위였고, 아이들만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라 또 열심히 짱구를 돌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일단 이 줄을 빠져나와 다른 주차할 곳을 찾을 것인가. 왠지 이대로 마냥 기다릴 수는 없겠다는 생각에 일단 차를 빼서 골목 안으로 진입을 했다. 여기 어디 뒷 구석에 주차할 곳이 있을까 싶은 생각으로 빠지긴 했지만 이전에 불법 주차로 딱지를 뗀 경험이 있던 지라 차를 빼자마자 잘한 선택인가를 후회했다. 그런데 이게 웬 럭키! 얼마 가지 않아 동네 주차장으로 보이는 갓길 주차 라인이 보였다. 게다가 줄지어 주차된 차들 사이로 빈자리 하나가 딱 보이는 게 아닌가! 나는 속으로 쾌재를 불러대며 바로 비상 깜빡이를 누르고 룰루랄라 주차를 했다. 일렬 주차가 이리도 반가울 날이 있다니! 그 어려운 일렬 주차를 단번에 해내고 언제 내리냐며 아우성치는 아이들에게 드디어 내린다는 반가운 대답을 해주며 차에서 내렸다. 청소기간 어쩌고 하면서 주차하지 말라는 현수막이 붙어 있었지만, 이미 만차인 상태와 휴일이라는 점을 감안해 (뭐 다른 선택지가 없기도 했지만) 일단 주차하기로 했다. 혹시나 딱지가 떼는 건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엄습했지만 그렇다고 이제와 시댁으로 다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었다.
시계를 보니 12시가 조금 지난 시각, 약 10여분 정도 지났을 뿐인데, 이전과 상황이 달라졌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나의 이런 어마어마한 선택과 집중을 당연히 모를 두 아이는 차에서 내렸다는 해방감에 신이 나서 목적지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하나가 해결되자 또 하나가 걱정이었다. 사실 아이들이 신이 난 이유는 뮤지컬 때문이라기보다는 키즈 카페와 같이 꾸며진 실내 시설 때문인데, 사전 예약을 하지 않으면 입장이 불가한 그곳에 예약을 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또다시 (입장을 못했을 경우의) 플랜 b를 구상하며 혹시라도 남았을 현장 예매를 시도해 보았다. 그런데 오늘 무슨 날이라도 잡은 것인가. 두 번째 럭키가 찾아온 것이다. 마침 취소분이 있어서 입장할 수 있다는 안내에 또다시 쾌재를 불러댔다. 게다가 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무료 초대권으로 입장료를 대신했으니 그야말로 로또라도 맞은 것 마냥 나 혼자서 기분이 찢어졌다.
이거 혹시 <운수 좋은 날>인가? 싶을 만큼 찾아온 두 번의 행운. 그리고 다행히도 소설과 같은 반전은 없었다. 우리는 그날 잘 놀고 공연도 잘 보고 놀이터에서도 잘 놀고 간식도 잘 먹고 별 다른 사고 없이 무사히 귀가했다. 게다가 내가 가장 우려했던 불법 주차 딱지를 떼는 일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그날 내게 찾아왔던 두 개의 럭키가 지금도 생생하고, 생각할수록 참으로 신기하게 여겨진다. 유명한 강연가 브라이언 트레이시의 책 <잠들어있는 성공시스템을 깨워라>에 나오는 일화 하나가 떠오르는데, 그는 성공 시스템을 알게 된 이후로 모든 일이 자기가 바라는 대로 이루어졌다는 이야기를 하며 아무리 차가 많은 주차장에 가도 자기를 위한 자리가 딱 하나 비어있다는 사례를 제시한다. 책을 읽을 당시의 나는 한창 성공에 대한 희망으로 고취되어(?) 있을 무렵이라 그에게 일어났던 일들이 내게도 일어날 것이라는 확신에 차 있었다. 하지만 만차인 주차장에서 내 자리만 딱 비어있는 그런 일들은 번번이 빗나갔고, 어느새 그런 이야기는 책 속에서만 일어나는 일로 치부하며 잊고 지내던 내게 실제로 그런 일이 일어나고 보니 뭔가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기분이 묘해진다.
물론 이 날 있었던 두 개의 행운은 어찌 보면 정말 별 일 아닐지도 모르고, 브라이언 트레이시의 일화와 연결시키는 것도 터무니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게다가 그에게는 매번 그런 일이 일어난다고 했지만 사실 나로서는 그날의 경험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아직도 그날의 행운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따금 떠올려보지만 어쩌면 굳이 의미를 찾을 필요 없는 일일 것이다. 그냥 정말 운이 좋았던 날이었던 것뿐. 그 이상 그 이하의 일도 아닐, 그저 기분 좋은 하루로 끝날 일. 딱 거기까지 말이다.
하지만 이 작은 행운 덕분에 나는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긴다. 행운이 내게 오고 있다는 그런 희망, 혹은 그런 기대감 같은 거 말이다. 그때를 떠올릴 때마다 괜스레 기분이 좋아지고, 어쩌면 나는 굉장히 운이 좋은 사람이 아닐까? 하는 그런 기분 좋은 기대감이 나를 지면 위를 붕붕 떠 있게 만들어 준다. 그게 뭐라고 말이다. 하지만 인생이란 참 별 일 아닌 것 같은 일들 때문에 기분이 좋아지기도 또 나빠지기도 하는 것이기에 나는 내게 찾아온 이 행운을 오래도록 기억하려고 한다.
비록 로또는 비껴갔지만 소소한 행복들은 놓치지 않겠다는 바람으로, 또 언제 다가올지 모를 이런 작은 행운을 기대하며 오늘 하루도 기분 좋은 일들이 더 많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