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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유진 Apr 18. 2022

순례 주택

진짜 어른이 뭐지?

인생의 순례자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한글 표기 순례의 한자어를 순례(禮)로 바꾸기 위해 이름을 개명한 순례 씨는 거북마을에 있는 다세대 주택의 건물주이다. 무려 건물주임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통장 잔고는 999,999원을 넘지 않으며 자신을 아버지의 재산을 노리고 접근한 나쁜 여자라고 매도하던 그 딸이 망하자 아무 조건 없이 자신의 세입자로 꽂아 넣어주는 그런 사람이다. (순례 주택은 시세보다 저렴한 임대료 때문에 그 일대에서 세입자를 희망하는 사람이 줄을 섰다) 그리고 아이러니 하게도 그런 순례 씨의 최측근은 바로 자신의 죽은 애인의 딸의 딸인 '수림'이다. 


다시 풀어서 설명하면 순례 씨와 수림이의 외할아버지는 서로 좋아하는 연인 관계였다. 수림이의 엄마는 첫째 미림이를 낳고 몸이 안 좋은 상태에서 수림이를 가지게 되면서 수림이를 출산하고서는 아이를 전혀 돌볼 수 없는 상태가 되고 만다. 이런 상황에서 수림이는 외할아버지 손에 맡겨지게 되고 자연스레 순례 씨의 손에서 길러지게 된 것이다. 


그런 수림이는 순례 씨를 보고 자란 덕분인지 자신의 본가족 보다 순례 씨와 함께 있는 것을 더욱 편하게 여긴다. 열다섯 수림이의 눈에는 자신의 본가족인 엄마와 아빠 그리고 언니 미림이는 아직 철부지 어린애다. 왜냐하면 그들은 순례 씨와 다르게 전혀 독립적이지 못한 생활을 하면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랜디움'이라는 아파트에 사는 것을 무슨 벼슬인 것마냥 콧대를 세우며 순례 주택을 비롯한 다세대 빌라들이 밀집한 거북마을을 업신여기는 수림이 엄마가 그 첫 번째 철부지다. 그리고 한평생 대학 교수가 되겠다는 꿈을 갖고서 시간강사로 활동하고 있는 수림이네 아빠는 누나들이 자신의 꿈을 포기하면서 까지 뒷바라지를 한 전형적인 옛 시대의 막내 남.자. 동생이다. 하지만 그런 막둥이는 다 큰 성인이 돼서도 돈이 필요할 때 여전히 누나들에게 손을 벌리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어른으로 자라게 되고, 그가 바로 두 번째 철부지다. 마지막으로 그런 부모 밑에서 자란 첫째 미림이는 자기 손으로 양말조차 세탁기에 넣지 않는 세 번째 철부지로 수림이는 어쩔 수 없는 혈연관계로 묶여있는 이들과 철저하게 멀어지고 싶은 것이 소원인, 이 가족 중 그나마 가장 멀쩡한(?) 철든 아이로 그려진다. 


수림이는 자신의 본가족을 '1군'이라 부르면서 미운 오리 새끼를 자청한다. 1군 집에서는 왠지 마음이 편치 않기 때문이다. 수림이는 자신의 외할아버지만큼 불쌍한 사람이 있을까를 생각을 종종 한다. 엄마가 외할아버지께 그간 저지른 불효를 생각하면 할수록 엄마와 있는 것이 불편하다. 아마 가장 큰 이유는 1군들이 뻔뻔하게 살고 있는 그 아파트가 할아버지를 내쫓고 차지하게 된 사연 때문일지 모른다. 외할아버지가 생전 살아계실 때 살았던 작은 집이 재개발이 되면서 아파트로 바뀌었는데, 본디 할아버지 명의로 된 집이었지만 수림이네 엄마는 자신들이 집이 없다는 이유로 할아버지네에 눌러 붙는다. 절이 싫어 중이 떠난다는 말처럼 아무리 딸이지만 수림이네와 사는 것을 더이상 참을 수 없게 된 할아버지가 그 집을 결국 떠나는 것으로 그 집은 수림이네 집이 되어버린다. (이후 할아버지는 순례 주택에서 살다가 세상을 떠나시게 된다) 수림이가 화가 나는 것은 단지 이것 때문만은 아니다. 할아버지는 그런 딸이 뭐가 불쌍하다고 매번 본인이 힘들게 일하여 버신 돈을 꼬박꼬박 생활비로 보태주었다. 수림이는 할아버지가 엄마 통장으로 생활비를 이체한 내역을 다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볼 때마다 마흔이 넘도록 자기 힘으로 돈을 벌어본 적이 없는 엄마를 부끄럽고 한심하게 여긴다. 돈이 필요할 때 부모에게 손을 벌리기보다 알바를 선택하는 수림이의 눈에 그건 어쩌면 당연한 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이 시대의 '캥거루족'에게 날리는 유쾌한 경고장이다. 작가는 20-30대에 부모에게 의지하고 완전히 독립하지 못한 채로 살던 이들이 40-50대가 되어서도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한다. 실제로 내 주변만 둘러봐도 적잖은 사례를 볼 수 있다. 직장이 있는 30대가 되었지만 월세가 부담이 돼서 독립하지 못하고 아직 부모와 함께 살려고 한다는 친척 동생. 또 어떤 이는 결혼을 해서도 양가 부모님께 도움을 받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한다고 한다. 그들의 부모가 대단한 재력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부모로부터 전적인 독립을 못하고 있는 모습의 젊은이들이 많다. 우리 아들 의전(의학전문대학) 보내야 해서 명퇴하지 못한다고 했다던 어떤 선생님의 말은 이 시대의 캥거루족을 부양하기 위해 일손을 놓지 못하는 부모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런 그들이 40-50대가 되어서도 부모로부터 완벽하게 독립을 할 수 있을까? 시나브로 나이는 들어가고, 가랑비에 옷 젖듯이 그러한 삶의 방식이 삶의 일부로 젖어들어갔기에 무 자르듯 단칼에 잘라내는 것은 아마 세월이 지날수록 어려워질 것임이 분명하다. 


책을 읽으면서 누군가는 수림이 부모의 기가 막힌 행태에 혀를 찰지 모르지만 그 혀를 차는 대상에 어쩌면 우리 자신이 포함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시어머니는 항상 참기름을 주시고, 우리 엄마는 김장을 담글 때 우리 집 몫까지 생각하신다) 그렇게 생각하니 참으로 오랜 기간을 부모에게 의지하고 살아가는구나 싶어 왠지 심란해졌다. 우리네 부모가 대단한 부를 갖고 있는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그들로부터 작지만 어떤 무엇인가를 시나브로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는 현재의 자식들. 그리고 앞으로의 자식들. 


오래 전 모방송을 통해 개그맨 이성미 씨의 자녀 교육 방식을 시청한 적이 있다. 그녀는 자녀들에게 20살 이후로는 금전적인 지원을 끊는다는 이야기를 어려서부터 하였고, 실제로 그를 실행하였는데, 대학생인 아들이 돈이 급하게 필요한 상황에서 엄마에게 연락하려다가 마는 장면은 참으로 충격이었다. 이유인 즉, 엄마가 절대 도와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부모가 된 지금의 시점에서 다시 생각해보아도 과연 나는 그녀처럼 칼같이 지원을 끊을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더욱 든다. 새삼 그녀의 교육방식과 자신의 가치관을 흔들림 없이 실행한 그녀가 대단하게만 느껴진다. 그리고 순례 주택을 읽으면서 그녀의 교육방식에 또 한 표를 얹게 된다.   


'자녀에게 유산을 남기는 일은 그를 망치는 지름길'이라고 거상 임상옥은 말한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자신이 이룬 막대한 부를 사회에 환원한다. 이성미 씨도, 순례 주택의 저자 유은실 작가도 모두 그에 동의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남편에게 우스갯소리로 아이들이 대학을 졸업하면 모든 지원을 끊을 거라는 말을 한다. 그 말에 담긴 진심은 나의 실행력을 감안하여 7:3 정도였다. 하지만 순례 주택을 읽으면서 나는 9:1까지 비율을 조절하였다. 10퍼센트의 여지를 남겨둔 것은 아직은 100프로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늙어서 까지 아이들의 인생에 목메어 살고 싶지 않은 것도 분명한 사실이기에 남은 10년 동안 매년 1퍼센트씩 내 마음을 다잡아 나가려고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부터 아주 사소한 일이라도 혼자서 할 수 있는 일들은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자꾸 가르칠 수밖에 없다. 한 번에 되지 않을 것을 알기에 자꾸자꾸 지겹도록 반복하는 지난한 실랑이만이 남았다는 것이다. 그 실랑이 속에서 내가 과연 이길 수 있을까? 의문이 들지만 만약 내가 진다면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내가 뒤집에 써야 하는 것이기에 그 경기에서만은 내가 꼭 이길 것이라고 다짐해 본다. 나를 위해 그리고 우리 아이들을 위해서 말이다. 



순례자는 감탄하고 관광객은 요구한다. (순례 주택 P.99)


수림이네 부모는 체면 유지를 위해 가족들에게 손을 벌리는 것은 부끄러워하지 않고, 때로는 당연하다는 듯이 요구하기도 한다. 그런 부부와 순례 씨의 대비되는 모습을 순례자와 관광객에 비유한 문장은 참으로 절묘하다. 우리는 어떤 삶을 살아가고 있는가? 우리를 부양한 누군가에게 되돌려주려하고 하기 보다는 무엇인가를 더 받기 위해 요구하고 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돌어보게 된다. 순례 주택이 유쾌하고 명쾌하게 알려주는 뼈가 있는 이 경고장을 그냥 넘기지 않기 위해 이 글을 쓴다. 호호 할머니가 됐을 때, 순례 씨와 같은 모습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너무 큰 이상은 접어두고, 적어도 수림이네 부모 같은 사람은 되지 말자고 다짐하며 오늘 하루 감탄하고 감사할 수 있는 순례자의 마음을 느껴보고 싶다.   


https://youtu.be/ThEP997bjR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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