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A 호프만 『모래 사나이』독후감
트레바리 '이참에 읽자' 북클럽, E.T.A 호프만 『모래 사나이』
[개요]
독일 낭만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E.T.A 호프만의 세 단편 「모래 사나이」, 「적막한 집」, 「장자 상속」이 담긴 책. 독일 낭만주의 문학은 계몽주의의 이성으로 설명되지 않는 인간의 다양한 측면에 관심을 갖는다. 독일 낭만주의의 중요한 개념인 unheimlich(기이한 낯섦)은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가 정의한 개념어로, 인간 내면에 억압되어 있던 죽음에 대한 공포가 발현되어 익숙한 것으로부터 낯선 감정을 느끼는 것을 말한다. 「모래 사나이」와 「적막한 집」은 기이하고 아름다운 여성에게 반한 소년의 이야기, 「장자 상속」은 한 남작 가문이 사는 성에서 일어나는 기이한 일을 다룬 단편이다.
낭만주의의 중요한 개념인 unheimlich는 heimlich의 반대말이다. 그런데 이 개념을 정의한 프로이트의 해석에 따르면 heimlich에는 '친숙한'이라는 뜻도 있지만 '은밀한'이라는 뜻도 있다. unheimlich는 heimlich에 포함되면서도 반대되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이 관계에 대해 heimlich는 내면의 근원적 공포가 억압된 상태이고 unheimlich는 그 공포가 회귀한 상태로, 따라서 두 상태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고 해석했다.
프로이트의 해석이 현실과 일치한다고 느꼈던 점은, 집이 실제로 상반된 두 감정을 모두 불러일으키는 공간이라는 것이다. 많은 매체에서 집은 친숙한 곳으로 묘사되지만, 그렇기에 자신의 비이성을 마음껏 발산할 수 있어 이것이 누군가에게는 친숙함과는 정반대의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호프만의 세 단편만 보아도 「모래 사나이」는 나타나엘의 집, 「적막한 집」은 정체불명의 여인이 사는 집, 「장자 상속」은 로시텐 가문 사람들이 사는 성(집)에서 heim하지 않고 unheim한 일들이 일어난다. heim이 unheim할 수 있다면, 반대로 unheim이 heim한 상황도 있게 된다. heim의 해석에 따라 unheim의 의미도 바뀐다. 다양한 해석의 여지를 가진 unheimlich를 보며, 낭만주의는 대상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지에 대한 관점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다고 보였다. 그리고 소설 속 눈과 관련된 여러 모티프는 관점의 의미를 증폭시킨다.
「모래 사나이」의 나타나엘은 잘못된 관점에 사로잡혀 죽음에 이른 인물이다. 그가 코펠리우스에 대한 공포에 사로잡혔을 때 '현명한 자'인 클라라는 믿음은 내면으로부터 오는 것이라며 나타나엘의 관점을 바꾸려 하지만, 나타나엘은 깨달음을 주는 클라라의 '말' 대신 자신과 동일한 존재인 올림피아의 '눈'에 사로잡힌다. 코폴라의 망원경은 나타나엘이 인식할 수 있는 대상을 올림피아 하나로 축소해 버린다. 올림피아가 망가지며 그녀의 눈이 나타나엘의 가슴에 명중하면서 나타나엘은 근원적 공포를 느끼는 것이 아닌 그 자체가 된다. 망원경은 그의 내면에 자리 잡은 근원적 공포를 언제든 깨우며, 결국 나타나엘은 죽음에 이른다.
「적막한 집」의 테오도어는 균형 잡힌 관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unheim에 빠진 인물이다. 적막한 집 안에 있는 정체 모를 여인에게 반한 그는 주변 가게와 인물들로부터 집에 대한 정보를 캐내다가 결국 무단으로 집에 들어가기까지 시도한다. 이름 모를 이탈리아 행상인에게 산 손거울은 환상의 여인을 선명하게 반사하며, 입김을 불어도 여인의 모습이 나타난다. 대상을 등지고 반사된 모습이 선명하게 보이는 것, 시선을 가리는 입김으로부터 명확한 대상이 보이는 것 모두 테오도어가 잘못된 관점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특히 테오도어가 유모로부터 들은, 거울 속의 눈을 보면 눈이 굳어버린다는 괴담은 잘못된 관점에 대해 분명하게 경고하고 있다. 테오도어는 그런 자신에게 말을 건네는 노인으로부터 자신이 농락당하고 있음을 깨닫고 이성적 인물인 의사를 찾아가지만, 의사조차 손거울에 대한 두려움을 느낀다. 이렇듯 「적막한 집」은 인간은 스스로의 비이성적인 측면을 알면서도 그것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장자 상속」의 테오도어 역시 로시텐 가문 사람들과 지내며 unheim한 일들을 겪는다. 그는 이성적 인간인 변호사 덕분에 별 탈 없이 로시텐 가문으로부터 벗어나지만, 변호사가 없었다면 테오도어는 밤마다 다니엘에 대한 공포에 떨고, 세라피네를 향한 잘못된 사랑이 계속되었다면 로데리히 남작으로부터 어떤 봉변을 당했을지 모를 일이다. 심지어 그는 세라피네를 멀리하려다 참지 못하고 밤에 숲으로 뛰쳐나가 미친 사람처럼 빙글빙글 뛰어다니는 등 이상 현상도 여럿 겪었다. unheim한 일들을 비일비재하게 겪는 로시텐 사람들은 변호사를 가문의 수호천사라 부르며 어둠으로부터 그들을 지켜주는 이성을 찬양한다. 스스로 변호사였던 호프만은 결코 떨쳐낼 수 없는 인간의 비이성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면서, 사람들이 그것을 잘 보듬을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자신의 사회적 역할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아무리 이성으로 자신을 다듬으려 해도 결코 제어할 수 없는 비이성의 영역이 있다. 호프만은 이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면서도 자신이 비이성에 지배당해 미치지는 않을까 두려워하기도 했다. 그래서 호프만은 클라라, 노인과 의사, 변호사 같은 이성적 인물들을 설정해 위태로운 주인공들이 비이성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마련했다. 그러나 길이 있다 한들 그 길을 선택하는 것은 스스로에게 달렸다. 나타나엘은 죽고 두 테오도어는 살아남은 것처럼. 우리는 각자의 heim 안에 un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이 un을 잘 보듬을 수 있는 heim을 지어나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