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대전 당시, 히틀러는 말 그대로 파리에 무혈입성한다. 파리를 지키던 장군이 도시를 그냥 내주다시피 했다. 앙리 덴츠 장군은 파리의 예술적 건축물을 폭격으로부터 막기 위한 의도였다는데, 당시 독일의 기세를 생각하면 이해가 가면서도 정말 프랑스스러운 변명이란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선전 영화 촬영차 파리에 잠시 머물렀던 히틀러는 오페라극장, 트로카데로 에펠탑, 샤크레쾨르 대성당 등을 주마간산으로 구경한 뒤 대략 이런 말을 남겼다. '베를린이 훨씬 아름답네. 굳이 파괴할 필요는 없겠어. 파리는 베를린의 그림자가 될 테니.' 그의 말을 읽고 난 히틀러가 왜 그렇게 미대 입시에서 낙방했는지 알 것 같았다. 미적 기준이 엉망이거나 남다르거나. 베를린도 아름답지만 파리의 디테일에는 못 미친다. 대표적인 게 브란덴부르크 문. 파리의 카루젤 개선문과 굳이 비교를 할 수 있을 텐데(에투알 개선문이 출격할 필요도 없다) 문 위의 조형물을 비교해 보면, 균형미나 화려함이 차이가 난다. 베를린 텔레비전 탑이 도시의 랜드마크라지만 에펠탑의 독창성에 못 미치고, 베를린 전승기념탑도 파리의 방돔광장 타워나 바스티유 기념탑의 아류 느낌이다. 무엇보다 에너지 절약 때문인지 야경이 초라하다. 물론 베를린 사람들이 파리지엥 보다 더 친절하고, 이곳이 살기에 더 좋은 도시란 건 부정할 수 없다. 실용적이고 검소한 곳.(집 값도 훨씬 싼) 베를린이 훨씬 트렌디하고 젊은 도시지만, 아름다움에 목숨 거는 도시보다 더 예쁘긴 쉽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