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선택과목으로 세계지리를 선택한, 나름 지도 마니아로서 우크라이나 전쟁이 발발하기 전까지 폴란드 위쪽의 작은 러시아 영토, 칼리닌그라드를 몰랐다는 게 부끄러웠다. 한편으로 러시아 본토와 떨어진, 칼리닌그라드의 생뚱맞은 위치를 생각하면, 이곳을 누가 알겠냐고 항변할 수도 있겠다. 발트 3국이 소비에트 연방이던 시절, 칼리닌그라드는 소련의 서쪽 끝이었으나, 발트 3국이 독립해 버리면서 러시아의 섬이 돼버렸다. 흐루쇼프 소련 서기장이 관리하기 귀찮다며 칼리닌그라드주를 리투아니아에 합병시키려 했으나 리투아니아는 이 제안을 거절했는데, 지금 이 작은 땅덩어리가 유럽 안보를 얼마나 뒤흔드는지 고려하면, 이 거절은 꽤나 큰 역사적 실수가 아닐까 싶다. 지금도 리투아니아에서 칼리닌그라드로 갈 수 있지만, 난 비자가 없어서 두 국가의 국경을 나눠주는 네만강 앞에서 러시아 영토를 바라만 보았다. 9월 1일 새 학기 시작을 맞아 칼리닌그라드에선 프로파간다 방송을 연상시키는 큰 음악을 학교에서 틀어댔다. 러시아 군대의 표식인 Z가 건물 외벽에 크게 붙어 있는 걸 빼면, 국경은 지금 전쟁인 걸 잊은 것처럼 평화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