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 다른 그림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보겠습니다. 위의 그림은 카미유 피사로의 작품인데요. 조금은 낯선 화가의 이름이죠. 인상주의 운동을 시작한 핵심 멤버인데, 모네나 르누아르처럼 이름이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림 수준이 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그 이유에 대해 피사로의 성격이 정말 좋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비평가, 언론인과 매번 논쟁하고 싸웠던 후배 화가들과 달리 훌륭한 인품의 피사로는 모든 사람과 잘 지냈고, 이 때문에 비평가들이 인상주의 비판 기사나 글을 쓸 때, 카미유 피사로 이름을 뺐다는 거죠. 이것이 결과적으로 이름을 덜 알려지게 했다는, 나름 합리적인 설명이었습니다. 카미유 피사로의 이야기를 들으며 비슷한 맥락의, 상대적으로 덜 유명한 화가를 떠올렸습니다. 라파엘로죠. 르네상스 삼대장 중 막내로 위대한 걸작을 많이 남겼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보다 덜 알려진 화가. 라파엘로 역시 독특하고 괴팍했던 선배들과 달리 누구와도 잘 지내던, 온화한 예술가였기 때문인 것 같은데요.
<세례 요한과 함께 있는 성모와 아기 예수>
그의 온화한 인품은 그림에 그대로 묻어납니다. 라파엘로는 성모자 그림을 많이 남겼습니다. 아기 예수와 성모 마리아가 함께 있는, 여기에 세례자 요한이나 성모 마리아의 어머니인 성 안나가 등장하는, 나름의 패턴 있는 그림이었습니다. 당시 이탈리아의 부자들은 저마다 기도할 때 볼 수 있는 성모자 그림을 하나씩 갖고 싶어 했습니다. 그중에서도 성모자 그림을 가장 잘 그리는 라파엘로의 그림을 갖고 싶어 했죠. 저는 라파엘로가 남긴 여러 개의 성모자 그림 중 최고는 루브르에 있는 ‘아름다운 정원사’란 별칭을 가진 <세례 요한과 함께 있는 성모와 아기 예수>라고 생각합니다.
마리아는 파란 하늘과 초록 초원을 배경으로 바위 위에 앉아, 아기 예수의 손을 잡고 있습니다. 아기 예수 맞은편엔 목동 옷을 입고 있는 세례자 요한이 있고요.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그 자체로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그림입니다.
라파엘로의 그림을 보면 어려운 노래도 쉽게 부르는 가수가 떠오릅니다. 하지만 쉽게 부른다고 그 노래가 쉽다는 의미는 아니죠. 라파엘로의 그림은 엄청난 기교나 화려함이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편안하게 볼 수 있지만, 동시에 위대한 그림처럼 여겨지지 않죠. 하지만 그림을 뜯어보면, 레오나르도 다빈치나 미켈란젤로에게 절대 뒤처지지 않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마리아의 얼굴을 보죠. 라파엘로는 있는 그대로의 사실적인 얼굴을 그리는 대신, 본인이 생각한 가장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표현했습니다. 그런데도 어색하거나 과장되지 않습니다. 사실적이지만 동시에 이상적인 미를 그려낸 거죠.
윤곽선을 흐리는 스푸마토 기법을 도입해 사실성을 확보했지만, 흐린 정도를 적절히 조절해,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성 안나와 마리아 그리고 아기 예수> 보다는 형체가 뚜렷하고 선명합니다.
여기에 색채도 다빈치의 작품보다 훨씬 강렬하죠. 마리아의 붉은 드레스와 푸른 외투의 색채 대비가 시선을 사로잡습니다.
모순적인 표현이지만 라파엘로는 ‘이상화된 사실주의’를 추구한 화가였습니다. 바로 우아한 아름다움이죠. 르네상스의 문필가 발디사레 카스틸리오네는 <궁정인>이란 책에서 ‘그라지아’ 즉 우아함에 관해 설명하는데, 그 핵심이 바로 자연스러움입니다. 인위적이고 거짓이 느껴지지 않으면서, 동시에 세련됨을 유지해야 한다는 건데, 라파엘로의 그림이 카스틸리오네가 말하던 우아한 아름다움의 적확한 예시였죠. 라파엘로가 이상화된 사실주의, 즉 우아함을 가장 잘 표현해내는지 보니, 자연스럽게 초상화 의뢰가 많이 들어왔습니다. 라파엘로의 초상화는 인위적이지 않고 거짓이 느껴지지 않으며, 솔직하지만 동시에 세련된 방식으로 겉으로 보이는 모습의 포착을 넘어, 내면의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건 우아한 아름다움을 설명한 카스틸리오네의 초상화를 라파엘로가 가장 우아한 방식으로 그려냈다는 겁니다.
이 초상화는 라파엘로의 그림이 차분하지만, 사람의 시선을 잡아 놓는다는 걸 정확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라파엘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미켈란젤로보다 후배였습니다. 하지만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 선배들이 개척한 회화의 위대한 기술을 본인의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겐 천재적인 창의성, 미켈란젤로에겐 정력적인 에너지가 있었다면, 라파엘로에겐 그 어떤 기술도 쉽게 습득해 본인의 방식대로 활용하는 흡수력이 있었습니다. 마리아가 아래를 내려다보는 새초롬한 표정은 라파엘로가 처음 들어갔던 공방의 스승 페루지노의 영향인데, 라파엘로는 그 스타일을 아예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버렸죠. 여기에 라파엘로를 위대하게 만든 점이 ‘구도’입니다. 루시퍼를 무찌르고 있는 <위대한 대천사 미카엘>을 보면 역시나 라파엘로 그림 특유의 차분함과 편안함이 느껴지지만, 동시에 미카엘 천사의 움직임이 가장 역동적인 순간을 포착했습니다.
긴 세로 화폭으로 집중도를 높이고, 루시퍼의 등을 밟고 있는 천사의 다리, 여기에 펴진 날개가 안정적인 T자 구도를 형성하고 있습니다. 지금이야 간단해 보이는 구도지만, 당시 화가들은 이런 안정적 구도를 잘 못 찾아냈었죠. (그가 남긴 다른 그림을 보면 이런 안정적인 구도가 저절로 나온 게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세례 요한과 함께 있는 성모와 아기 예수> 구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선 인물의 시선을 통해 삼각형 구도를 만듭니다. 지팡이를 든 세례자 요한이 살짝 무릎을 굽히면서 시선에 따른 지그재그 구도가 완성됩니다.
많은 후대 화가가 라파엘로의 구도를 일종의 교본으로 삼고 따라 했을 정도로, 라파엘로의 구도 잡기는 가장 안정적이고 완벽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루브르에는 없지만, 라파엘로는 <요정 갈라테아>나 <아테네 학당>처럼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 큰 크기의 그림도 많이 그렸는데요. 라파엘로의 구도를 잡는 실력 덕분에 그런 그림들 역시 많은 인물이 등장함에도 어지럽지 않고, 안정적인 인상을 줄 수 있죠. 결국 라파엘로는 다빈치와 미켈란젤로가 남긴 사실적인 표현 방식에 우아함을 더하고, 안정적인 구도로 그림을 완성했기 때문에 우리는 라파엘로의 그림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는 것이고, 당시 이탈리아의 귀족들이 너도나도 라파엘로의 성모자 그림을 원했던 겁니다.
라파엘로의 위대함은 당대에 이미 인정받았습니다. 미켈란젤로와 함께 로마 교황청의 핵심 작가리스트에 올랐고, 교황 율리우스 2세가 요구하는 다양한 의뢰를 완벽하게 소화해 냈습니다. 레오 10세가 교황이 되었을 때, 성 베드로 성당을 신축하려는 교황청의 무리한 시도는 결국 교회의 분열을 가져왔습니다. 루터가 교황청의 면죄부를 강력하게 비난하고 있었지만, 교황은 이미 벌여놓은 사업을 중단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라파엘로를 성 베드로 성당 건축의 책임자로 임명했죠. 아무리 성격이 온화했던 라파엘로라고 해도, 성 베드로 성당을 짓는 일을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왔을 겁니다. 아무리 봐도 과로였던 거 같은데요. 결국 37세의 이른 나이에 사망하게 되죠. 만약 그가 좀 더 오래 살았다면, 인류에게 얼마나 더 많은 위대함을 남겨줬을까 싶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누군가 제게 루브르 박물관에서 단 하나의 그림을 집에 가져가 걸어놓을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면 (재판매 금지) 전 망설임 없이 라파엘로의 <아기 예수, 세례자 요한과 함께 있는 마리아>를 선택할 것 같습니다. 하루를 ‘아름다운 정원사’와 마무리할 수 있다면, 나름 큰 힐링이 될 것 같기 때문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