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파리에 와서 루브르 박물관에 가면 반드시 사람들이 찾는 그림, 미술에 대해 전혀 모르는 사람도 아는 작품, 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모나리자입니다. 이탈리아 걸작을 모아놓은 방 가운데 있는 모나리자는 일단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전 세계에서 이 그림을 보기 위해 몰려든 사람들로 줄이 길게 늘어서 있기 때문이죠. 인파를 뚫고 겨우 원작을 보게 된 많은 사람의 첫 반응은 ‘실망’입니다. 그림의 크기가 작기 때문입니다.
그림이 너무 유명한 것도 실망의 이유입니다. 비데 광고에까지 등장할 정도니, 모나리자 이미지가 지나치게 소비돼 온 거죠. 그러니 유명한 그림을 직접 봤다 정도 외엔 별다른 인상을 받지 못했다는 분들을 많이 봤습니다.
2.
모나리자의 진가를 알기 위해선 잠시 그 시대로 돌아가야 하고, 이를 위해선 루브르 박물관이 그림을 배치한 순서대로 보는 걸 권합니다. 쉴리관(Sully)에서 드농관(Denon)으로 연결되는 2층, 이탈리아 회화가 시작되는 방이 나옵니다. 여기엔 초기 르네상스의 슈퍼스타 조토 Giotto 그림이 있습니다.
루브르에 있는 조토의 작품은 그의 대표작은 아니지만, 명성에 비해선 뭔가 어설프고 부자연스럽습니다.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가 기도 중 성흔을 입는 장면을 그렸는데, 예수님이 마치 B급 SF 영화의 괴물처럼 묘사돼 있습니다. 물론 조토 이전 시대의 성화는 더 조악합니다.
마치 도장을 찍어놓은 것처럼, 모든 천사의 얼굴이 똑같습니다. (물론 르네상스 이전엔 있는 그대로 그림을 그리지 않는 것이 미덕이긴 했습니다) 예술가적 창의성이 들어간 ‘작품’으로 보기엔 무리가 있는 그림들입니다.
3.
이 그림들을 보고 난 다음에 다시 모나리자를 본다면. 일단 사실적인 측면에서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모나리자가 탁월합니다. 지금이야 극사실주의 미술도 있고, 심지어 사진도 있는 마당에, 실제처럼 그린다는 게 대단한 미덕은 아니죠. 하지만 이 시기엔 사실적 그림을 그리는 거 자체가 쉽지 않았습니다. 비슷한 시기의 다른 그림과 비교해 보면 모나리자는 살아있는 실제 인물 그 자체처럼 보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알려진 것처럼 시체들을 해부하면서 인체의 정확한 묘사에 집착했던 화가였습니다. 루브르에 있는 또 다른 다빈치의 작품 <암굴의 성모>를 보면 그림 속, 아기 예수와 세례자 요한의 사실적인 팔 근육이 눈에 들어옵니다.
아기가 무슨 근육이 저렇게 많나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팔의 동작에 따라 변화하는 근육의 움직임을 그는 정확히 포착해 낸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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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이면서도 완벽주의자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확보해 낸 사실성의 두 번째 비결은 흔히 ‘스푸마토’라고 알려진 스케치의 윤곽선을 모호하게 만드는 기법입니다. 사실 조토의 사실적인 구성, 마사초의 원근법이 널리 퍼지면서, 피렌체의 그림 좀 그리는 장인들은 있는 그대로 소묘하는 기술을 어느 정도 익혔습니다. 만테냐의 그림 속 성모 마리아의 치마를 보면 조토의 묘사에서 한층 업그레이드된 디테일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문제는 정확하고 사실적으로 세부 묘사를 하면 할수록 그림 속 인물들이 조각상처럼 부자연스러워진다는 사실이었죠. 사실적인 묘사가 갖는 어색함에 대해선 또 다른 초기 르네상스의 위대한 화가 보티첼리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헤어스타일과 의상 같은 장식으로 어색함을 극복해보려 했으니까요. 하지만 보티첼리의 여신들도 아름답긴 하지만, 만화적인 느낌을 주는 게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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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를 보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즐겨 쓰던 스푸마토 기법 덕에 동시대 화가들이 도달하지 못했던 자연스러운 사실성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천재였지만 동시에 정력가였던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분명 사진이 없던 시대에, 사진과 가장 근접한 회화 기법을 찾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을 것이고, 해부학적 지식을 넘어, 또 다른 뭔가를 찾아 헤맸을 겁니다. 여기서 그가 발명한 스푸마토가 놀라운 것이, 일반적인 사람이라면, 당연히 다른 르네상스 작가들처럼, 사실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선 더 많은 묘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겠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반대로 접근합니다. 오히려 덜 묘사하고, 선과 윤곽을 지우는 역발상으로 동시대 르네상스 작가들과 차원이 다른 경지에 도달한 거죠. 다빈치가 그린 <성안나와 성모자>의 아기 예수와 로렌초의 그림 속 아기를 비교해 보면 스푸마토 기법의 효과를 확실히 느낄 수 있습니다.
6.
모나리자는 다빈치가 죽을 때까지 들고 다니다가 자신에게 호의를 베풀어준 프랑스의 왕 프랑스와 1세에게 선물한 (것으로 알려진) 작품입니다. 이미 사실적인 걸작을 여러 개 완성해 낸 다빈치가 더 사실적인 작품을 만들기 위해 모나리자에 그리 집착했을까요?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천재이면서도 신비로운 인물이었습니다. 잠시 다른 곳으로 대여가 돼, 지금은 볼 수 없는 루브르의 또 다른 다빈치 그림 <성 요한>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의 오랜 동성 연인 살라이를 모델로 그린 것으로 유명한 작품인데요.
20세기에 이 그림과 아주 닮은 <육신의 천사>라는 작품이 뉴욕에서 발견돼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성 요한>과 아주 닮은 이 그림엔 <성 요한>엔 없는, 가슴을 애무하는 손과 발기한 성기가 그려져 있었기 때문이죠.
많은 전문가는 이 그림을 본 뒤에야, <성 요한>에 담긴 모호함, 그로 인한 신비적인 느낌이 드는 이유를 찾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성스러움과 육체적 욕망이 뒤섞여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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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나리자>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해부학적 지식이 풍부했던 다빈치는 표정을 결정하는 주요 부위 2곳, 입술과 눈꼬리 부위를 스푸마토 기법으로 강조했는데요. 이 덕분에 우리는 지금도 이 그림의 불분명한 표정에 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기쁜 것인가 슬픈 것인가. 행복한 사람일까, 불행한 사람일까. 물론 모나리자를 주문한 이탈리아 상인은, 모호한 표정을 짓고 있는 수수께끼 같은 자기 아내 초상화를 보고, 그림을 인수하지도 않았습니다. 하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주문자의 그러한 태도에서 모나리자를 자신의 걸작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굳혔을지 모릅니다.
아마 눈과 입 가장자리를 더 모호하게 그려놓고, 표정의 단서가 될 수 있는 눈썹을 지워버렸을 수도요. 여기서 다빈치는 한 발 더 나갑니다. 바로 배경입니다. 사실적인 그림의 대가가 일부러 상상의 나래를 펼쳐 신화 속 풍경을 그려놓은 겁니다.
8.
화가는 배경의 효과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었을 겁니다. 있는 그대로의 배경이 아닌, 그림의 분위기를 더해줄 그런 배경을 찾은 것이죠.
이미 모호해서 더 신비한 여인의 표정을 완성했으니, 배경은 그런 신비스러움을 극대화해줄 장소가 필요했을 겁니다. 그래서 그는 토스카나의 태곳적 풍경을 그렸습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고 다빈치는 수수께끼 코드를 하나 더 집어넣습니다. 그림의 좌우 배경 높이를 다르게 그려버린 겁니다. 오른쪽 배경은 왼쪽보다 훨씬 높아서 그림을 왼쪽에서 보느냐 오른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인물의 크기가 달라집니다. 이처럼 다양한 트릭을 집어넣은 덕분에 <모나리자>는 오랜 기다림 끝에 직접 보고 나면, 그 느낌이 매번 달라집니다. 그래서 더 오래 쳐다보고 있게 되고요. 기괴하고 무서운 느낌이 들다가도 너무나 따뜻하고 사랑스럽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공포와 멜로를 넘나드는 작품인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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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인간의 생애는 아무리 단순한 삶을 살았다 하더라도, 짧은 인상만으로 포착할 수 없습니다. 희비극이 어지럽게 뒤섞인, 행운과 불행이 교차하는 삶의 오묘한 운행 원리를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초상화라는 평범한 장르 속에 집어넣었습니다. 지금 우리의 삶을 되돌아봐도 마찬가지일 겁니다. 어떻게 보면 처참하게 실패한 것 같다가도, 또 근거 없는 낙관에 휩싸여 만족스럽게 삶을 바라보기도 하는, 그런 오락가락함. 삶의 이면에 있는 미스터리한 작동 원리와 인간의 모순적인 속성을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가장 사실적이고 정확한 회화로 드러낸 것이죠.
그래서 전 꼭 <모나리자>는 루브르 박물관에 직접 가서 보길 강력히 권합니다. 사진을 찍느라 <모나리자>가 선사하는 시시각각 변하는 그 분위기를 놓치지 않길 바랍니다. (작품도 작고 어두워서 사진 잘 나오지도 않아요) 감상 인증숏 대신, 1분만 <모나리자>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가늠할 수 없는 이 천재 작가가 그림 곳곳에 숨겨놓은 트릭에 빠질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