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에서 해방되는 순간의 편안함을 꿈꿨던 열정가

반항하는 노예 죽어가는 노예, 미켈란젤로

by 알스카토


루브르 박물관엔 미켈란젤로의 그림이 아쉽게도 없습니다. 그의 조각 작품만 볼 수 있죠. 사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나 최후의 심판이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우린 미켈란젤로를 위대한 화가라 생각하지만, 정작 본인은 자신을 화가라고 인식한 적이 없습니다. 그는 오히려 화가를 2차원적 평면만 완성하면 되는 편하고 한가한 장인 정도로 무시했었죠. 대신 미켈란젤로는 자신을 위대한 ‘조각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조각가는 신이 인간을 창조한 것처럼 대리석 돌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끄집어내는 사람이며, 눈앞에 보이는 것만 다루는 화가와 달리 옆면, 뒷면도 조화롭게 완성해야 하는 진정한 예술가라고 그는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운 좋게도 우린, 루브르 박물관에서 그의 조각을 볼 수 있습니다.



여기 미켈란젤로의 작품 2개가 있습니다. 하나는 <반항하는 노예>, 다른 하나는 <죽어가는 노예>입니다. 인체의 정확한 묘사를 위해 시체를 해부했던 레오나르도 다빈치와 마찬가지로 미켈란젤로 역시 시체 해부를 통해 사실적인 조각품을 만들기 위해 애썼죠. <반항하는 노예>와 <죽어가는 노예>의 신체도 마치 살아서 움직일 것처럼 진짜 사람 같아 보입니다. 왼쪽에 있는 반항하는 노예는 온몸을 뒤틀며 어색한 동작을 취하고 있는데, 그 과정에서 몸의 모든 근육이 부자연스러운 자세에 저항하는 듯 불끈 솟아있습니다. 반면 오른쪽의 죽어가는 노예는 요가나 명상을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편안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데, 미켈란젤로의 위대한 작품 <다비드>상처럼 몸이 전체적으로 매끈하고 부드럽습니다.



미켈란젤로가 이 작품들을 만들던 시기와 상황을 고려해 보면, <피에타>나 <다비드> 못지않게 두 노예 조각상이 위대할 수밖에 없음을 알 수 있는데요. 미켈란젤로는 24살에 <피에타>를, 30세에 <다비드>를 완성하며, 이미 조각가로 당대 최고의 반열에 올랐습니다. 그리고 약 10년이 더 지난 시기, 두 작품을 만들었는데요. <반항하는 노예>를 완성한 시기가 1513년경, <죽어가는 노예>를 완성한 건 1516년경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두 작품을 만든 시기가 40대 초반, 아마 미켈란젤로의 예술적 숙련도가 최고 수준에 도달했을 때였을 겁니다. 여기에 그가 두 작품을 만들었던 시기는 오랜 기간 자신에게 큰 스트레스를 줬던, 결국 4년이나 걸리고만,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를 막 끝낸 즈음이었죠. 잠시 화가로 외도를 마치고 본업인 조각으로 돌아왔을 때 그는 조각에 대한 예술가적 열정을 얼마나 뜨겁게 불태웠겠습니까.



물론 미켈란젤로에게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를 그리게 한 사람도, 두 노예 작품을 의뢰한 것도 한 사람이었습니다. 교황 율리우스 2세죠. 그는 당시 2개의 대형 프로젝트를 동시에 기획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본인의 무덤, 즉 교황 영묘를 초대형으로 꾸미는 기획이었습니다. 역시나 미켈란젤로가 불려 오게 되죠. 조각할 때 가장 행복했던 예술가 미켈란젤로는 죽을 때까지 교황의 지원 속에 평생 조각상을 만들며 살 수 있단 생각에 기뻤습니다. 좋은 대리석을 고르는데 6개월의 시간을 썼을 정도죠. 하지만 교황에겐 두 번째 프로젝트도 있었습니다. 바로 성 베드로 성당을 신축할 계획이었죠. 만약 성 베드로 성당을 짓기 위해 기존의 성당을 허물게 되면, 자신의 영묘를 놓을 곳이 없어지니, 교황은 골치가 아팠습니다.



결국 영묘 프로젝트는 잠시 연기되며 흐지부지될 조짐을 보였습니다. 들뜬 마음에 대리석을 고르던 미켈란젤로는 실망해서 로마를 떠나버리죠. 하지만 포기를 모르는 남자 율리우스 2세는 미켈란젤로를 설득, 비어있던 시스티나 예배당의 중앙 천장에 그림을 그려달라는 새로운 의뢰를 던지죠. 미켈란젤로는 화가를 무시하던 사람이었으니, 당연히 그 의뢰를 강력하게 거부합니다. 하지만 의뢰인이 교황이었습니다. 천하의 미켈란젤로라도 자기 고집대로 할 수 없었겠죠. <천지창조>가 포함된 시스티나 예배당의 위대한 천장화는 이렇게 탄생하게 됩니다.


그림을 그리면서도 미켈란젤로의 머릿속에는 조각 밖에 없었을 겁니다. 힘들게 작업을 마치고, 율리우스 2세의 영묘에 둘 조각 작품 만드는 일을 재개했을 때, 그는 억눌린 조각 창작열을 두 작품에 쏟아냈습니다. (물론 이때 2개의 조각을 율리우스 영묘용 조각으로 더 만들었는데, 그중 하나가 역시나 유명한 <모세>입니다) 원래 율리우스 2세는 영묘용으로 40개의 조각을 주문했지만, 결국 5개만 만들고 영묘 조각 프로젝트는 끝을 맺죠. 하지만 기술과 경험이 가장 원숙하게 조화를 이루던 시기에, 억눌린 조각 창작열을 무한대로 쏟아 넣어 만들었으니 두 노예 시리즈가 얼마나 대단하겠습니까. 특히 두 작품은 <피에타>처럼 화려하거나 <다비드>처럼 거대하진 않지만, 보는 사람의 마음을 더 강하게 뒤흔드는 매력이 있습니다.



<죽어가는 노예>를 보면 ‘몸은 영혼의 감옥’이라는 기독교적 인식을 떠올리게 됩니다. 노예는 자신에게 내려진 운명의 굴레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격하게 저항하고 있습니다. 전문 보디빌더를 연상시킬 정도의 아름답고 큰 삼두박근과 광배근이 눈에 들어오죠. 미켈란젤로는 사실 괴팍한 성격으로 유명했고, 사람들과 자주 다퉜으며, 때론 사람들이 자기를 의도적으로 괴롭힌다는 망상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술 먹고 싸우다 코뼈도 부러지고, 심지어 교황에게도 무례하게 굴던 사람이 미켈란젤로였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모든 도전에 응전했고, 자신의 방식대로 싸워나가며 위대한 조각가로서 명성을 쌓았습니다. 그럼에도 시스티나 천장화를 그리기 위해 움직이지도 못하고 누워서 그림만 그리던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며, 그는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아무리 발버둥 쳐도 벗어나지 못하는 강력한 운명의 힘을 느끼지 않았을까요?



두 작품 중 <죽어가는 노예>가 보는 사람의 마음을 더 격하게 흔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죽어가는 노예>는 죽음을 앞두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평화롭고 안정된 모습입니다. 옆에 있는 <반항하는 노예>와 대비되어 그 편안함이 더 강조되어 있죠. 자신의 운명에 저항하지 않고, 그 운명에 자신의 몸을 내맡기는, 마치 도교의 신선 같은 느낌마저 듭니다. 보통 죽음하면 소멸의 공포를 떠올리지만, 미켈란젤로의 <죽어가는 노예>가 맞이하는 죽음은 피곤했던 여행을 마치고 맞이하는, 꿀잠처럼 묘사돼 있습니다. 죽음을 휴식으로 받아들이는, 그런 작품을 만드는 작가의 삶은 얼마나 치열하면서 동시에 피곤했을까요? 물론 매 순간 투쟁하듯 살아온 미켈란젤로의 완벽주의 덕에, 우린 위대한 조각 작품과 천장화를 볼 수 있게 됐지만, 막상 그 투쟁을 살아가는 당사자는 죽음을 통한 휴식을 꿈꿀 정도로 힘들지 않았을까요?



물론 미켈란젤로에겐 긴 휴식마저 허락되지 않았고, 여러 차례 전쟁을 경험하고, 사회의 혼란을 목도하며 거의 90세까지 살게 됩니다.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를 그릴 때, 조각을 만들어 위에 달아놓고, 아래서 보며 그림을 그렸다고 하죠. 평면적인 일반 그림과 달리 궁륭형으로 된 천장화는 보는 각도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으니, 완벽주의자였던 미켈란젤로는 아예 조각을 만들어 그 정확도를 높여간 거죠. 이게 미켈란젤로입니다. 단 한순간도 자신에게 여유를 허락하지 않은 사람, 심지어 다른 사람에게도 자신에게 부과하던 기준을 들이밀어, 괴팍하고 오만한 예술가란 평가를 받았지만, 그의 마음 깊은 곳에는 <죽어가는 노예>의 표정에 담긴, 편안함을 넘어 조용한 쾌락을 음미하는 듯 휴식을 갈구했던 사람이었던 거죠. 그 잠재적 욕망이 <죽어가는 노예>의 편안한 표정으로 나타난 게 아닐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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