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
지금 루브르에선 나폴리 박물관 소장품이 특별 전시되고 있는데요. 당시 이탈리아는 말 그대로 유럽 회화의 메이저리그였습니다. 르네상스 3대장이 활동하던 피렌체는 물론, 북쪽의 베네치아나 베로나도 색채를 강조한 자신만의 화풍을 발전시켰고요. 나폴리나 파르마 등에서도 훌륭한 화가들이 등장했습니다.
파르미지아노의 초상화를 보면, 당시 르네상스 회화의 섬세한 사실주의가 어느 수준에 도달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마사치오의 원근법을 시작으로,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완성한 르네상스의 화풍은 이제 이탈리아 예술가들에겐 기초가 됐습니다.
하지만 같은 스타일이 반복되면 그리는 사람, 보는 사람 모두 슬슬 지겨워지기 마련이죠. 특히 당시 화가들에겐 라파엘로가 일종의 교본이었는데요.
나폴리 미술관에서 온 귀도 레니의 작품을 보면 사실적이면서도 매끈한 표현에 감탄을 하면서도, 동시에 딱딱하고 차갑다는 인상을 받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작가들은 관습적으로 라파엘로를 비롯한 선배 화가들의 문법을 고스란히 따랐고, 르네상스의 화풍이 일종의 교과서가 되면서, 자연스레 이에 대해 반감을 가진 반항아들이 하나 둘 나타나게 됩니다. 미술사학자들은 이런 반항아들이 만든 새로운 화풍에 ‘바로크’라는 이름을 붙여줬습니다.
오늘의 주인공, 바로크 회화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입니다. 성경에 짧게 소개된 이야기를 그린 작품인데요. 유디트는 우리로 치면 논개랑 비슷한 인물입니다. 전쟁 중에 술을 가득 준비하여 적장을 술 취하게 만든 다음, 잠들어있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었다는 이야기죠. 젠틸레스키의 작품과 위에서 언급한 귀도 레니의 그림을 비교해 보면 무엇이 ‘바로크’적인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우선 그림이 훨씬 더 연극적입니다. 드라마적인 구성이 강조됐죠. 자연히 보는 사람의 감정을 더 강하게 뒤흔듭니다. 이런 연극적인 연출을 위해 조명 효과를 적절하게 잘 사용했죠.
동시에 바로크 화가들은 이상적인 모습을 그리는 대신, 현실과 가까운 사실적인 모습을 포착합니다. 리얼리즘에 가깝다고나 할까요.
젠틸레스키의 그림을 보면, 화가는 감정적 충격 효과를 줄 수 있는 소재를 선택한 것도 모자라, 가장 극적인 순간, 즉, 주인공이 적장의 목을 베는 그 순간을 사실적으로 표현해 냈습니다. 르네상스 그림이 부유층이 향유하던 우아한 오페라 같았다면, 젠틸레스키와 같은 바로크 그림은 장터 한가운데의 거칠지만 에너지 넘치는 서민 분위기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죠.
잠시 여기서 한 명을 언급하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바로크를 이야기하려면 빼놓을 수 없는 사람, 바로 카라바조죠. 그는 문제아나 악동이란 표현으론 부족한, 정말 나쁜 사람이었습니다. 살인자였거든요. 그것도 여러 번 살인을 저질렀던 범죄자였는데, 그림 재능 덕분에 간신히 처벌을 모면하고, 그 이후로 평생 도망 다녔던 인물입니다. 하지만 악한 본성과는 별개로 그림 실력만큼은 당대 최고였는데요. 규칙을 따르지 않는 타고난 거친 본성이 영향을 미쳤을까요? 그는 르네상스 화가들이 정해놓은 규칙대로 그림을 그리지 않았습니다.
루브르에 있는 카라바조의 대표작 <마리아의 죽음>을 한번 보시죠. 카라바조는 빛의 화가라고 불릴 정도로 조명 효과를 잘 사용했으며, 명암의 대비를 통해 그림의 연극적 요소를 강조했던 화가였습니다. 이 작품 역시 마리아의 얼굴로 강한 조명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리아의 죽음>은 완성된 이후 많은 비난을 받았는데요.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의 죽음을 마치 평범한 여성의 죽음처럼 사실적으로 묘사해 놨기 때문입니다. 마리아 주변엔 어떠한 성스럽고 우아한 장식은 없습니다. 이불이나 옷도 전혀 화려하지 않죠.
심지어 마리아의 발바닥을 보시면, 검게 표현된 게 더러워 보입니다. 이처럼 마리아를 필부처럼 묘사했다는 이유로, 훗날 고전주의 화가였던 푸생은 이 그림을 없애버려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카라바조의 작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위대한 성인들을 그저 평범한 노파처럼 그려놓는 식이었죠. 물론 카라바조 혼자 르네상스가 이룩해 놓은 트렌드를 바꿀 순 없었습니다. 하지만 대신 카라바조의 추종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죠. 젠틸레스키는 그중 한 명이었습니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여성 화가입니다. 17세기에 여자가 그림을, 그것도 직업 화가로 살아간다니, 이게 어떻게 가능했을까요? 일단 아버지의 영향이 컸습니다. 아버지 오라치오 젠틸레스키도 바로크 작가로 분류되던 유명한 화가였습니다. 물론 아버지는 딸이 화가가 되는 걸 반대했죠. ‘여자가 감히 그림을’이었던 거죠. 하지만 자신의 가업을 이어주길 바랐던 아들들이 그림에 관심을 보이지 않자, 어쩔 수 없이 화가가 되겠다는 딸의 고집을 받아들인 거죠.
루브르에 있는 아버지, 오라치오 젠틸레스키의 그림, <이집트로 피신 중의 휴식>입니다. 헤롯왕의 폭정을 피해 아기 예수를 데리고 이집트로 피신하는 요셉과 마리아를 그린 그림인데요. 한눈에 봐도 카라바조에 일정 부분 영향을 받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좀 더 색채가 부드럽고 옷감의 표현이 디테일하죠. 미술계에서 영향력이 있던 아버지는 딸의 미술 수업을 위해 로마에서 과외 선생님을 모셔옵니다. 딸이 어려워했던 원근법 수업을 위해서였죠. 하지만 이것이 비극의 시작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친구였던 과외 교사가 젠틸레스키를 겁탈했던 겁니다. 젠틸레스키는 칼로 남자를 찌르면서까지 저항했고, 그 뒤에도 지난한 법정 싸움을 이어갔습니다. 지금도 쉽지 않은 싸움이, 그 당시 얼마나 더 어려웠겠습니까. 세상 사람들은 오히려 젠틸레스키를 비난했습니다. 독한 여자라고 수근거렸죠. 그럼에도 젠틸레스키는 재판을 이어갔고, 자신의 피해를 입증해 냈습니다. 물론 범죄 혐의가 입증됐음에도 가해자는 큰 처벌을 받지 않고 풀려났습니다. 17세기 이탈리아의 현실이 그랬던 겁니다.
아버지의 친구에게 강간을 당했고, 그 사람을 처벌하기 위해 사회의 비난을 무릅쓰고 재판을 했지만, 결국 젠틸레스키에게 돌아온 건 주변 사람들의 냉대였습니다. 평생 남을 트라우마가 생겼겠지만, 당시에 심리 치료 같은 게 있었겠습니까. 젠틸레스키가 할 수 있는 건 그림을 그리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잊히지 않는 악몽을 지워내기 위해, 가슴속에 맺힌 한을 풀어내기 위해, 젠틸레스키는 그림을 그렸고, 그 결과물이 바로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였습니다. 이제 왜 그녀가 이 소재를, 이 순간을 그렸는지 이해가 갑니다.
여성들의 표정을 보면, 한없이 차갑고 냉정합니다. 마치 사형을 집행하는 사람 같죠. 분노의 감정이 담겨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목이 잘리는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표정은 참혹합니다. 무력하게 목이 잘리는 남자의 얼굴을 그리며, 젠틸레스키는 사회가 하지 못한 처벌을 그림으로 한 게 아닐까요? 실제로 파란 옷을 입은 여성은 젠틸레스키가 그린 자화상과 상당히 닮아있습니다.
카라바조 역시 같은 주제의 그림을 그렸지만, 이 소재만큼은 젠틸레스키의 것이 훨씬 더 강렬하고 극적입니다. 한번 비교해 보시죠.
젠틸레스키는 이후에도 유디트의 이야기를 다른 장면으로 변주하여 여러 번 더 그립니다. 동시에 여성이 남성을 응징하는 또 다른 그림도 그렸고요. 그녀는 그림을 그리는 행위를 통해 그 어디에서도 받지 못한 트라우마 치료를 진행했던 게 아녔을까 싶습니다. 가슴에 쌓인 분노를 그림으로 표현하며 화를 달랬던 거겠죠.
그림을 자세히 보는 이유는, 그림 속에 화가의 인생이 담겨있기 때문입니다. 물론 어떤 그림은 당대의 유행을 좇아 주문자의 의뢰대로 그려졌지만, 어떤 그림은 화가가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자신의 삶을 진정성 있게 담아낸 결과물입니다. 화가가 정직하게 그린 작품을 볼 때, 우리는 그림이란 매개체를 통해 시간을 넘나들며 다른 사람의 인생에 들어가 볼 수 있습니다. 젠틸레스키의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는 미술사적으로 최고의 걸작이라 평가받진 않지만, 작가가 느꼈던 감정을 솔직하고 강렬하게 전달한다는 측면에서 또 다른 의미의 걸작이라고 생각합니다. 굳이 페미니즘 운동과 연결하지 않더라도,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는 치열하게 자신의 삶을 지켜낸 거의 최초의 여성 화가이며, 살인의 순간을 가장 바로크적으로 표현하여 내면의 고통을 치유했던 선구적인 예술가였습니다. 400년 전에 그려진 그림이지만, 젠틸레스키가 극복하려 했던 고통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단 점에서, 누구나 어렵지 않게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 속 이야기를 들을 수 있을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