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전국구, 스타 화가의 탄생

마리드메디치의 생애 연작, 페테르 파울 루벤스

by 알스카토

르네상스의 시작은 피렌체였고, 그 뒤로 이탈리아가 유럽 회화의 메이저리그가 됐지만, 진정한 의미의 유럽 대륙 최고 회화 스타는 이탈리아가 아닌 지금의 벨기에, 네덜란드 지역인 플랑드르에서 나왔습니다. 당시 유럽 모든 왕가가 그림 주문을 하고 싶어 했던, 심지어 그림 주문이 밀려 약소국 왕은 주문조차 할 수 없던 유럽 대륙 최고의 인기 화가, 바로 페테르 파울 루벤스입니다. 그는 지금의 벨기에 지역에서 태어났는데, 플랑드르는 르네상스의 중심지는 아녔지만, 나름대로 독자적 회화 스타일을 발전시키던, 나름의 그림 강국이었습니다. (뒤러가 살던 불모지 독일과는 차원이 달랐죠.)


루브르 박물관에 있는 쿠엔틴 마시스의 <동전 교환원과 그의 아내>는 플랑드르 스타일이 어땠는지 잘 보여주는 그림입니다. 이탈리아 작품에 비하면 좀 더 소박하고, 일상의 세밀한 모습이 잘 담겨있는데요.

동전교환원과 그의 아내

특히 책과 거울을 묘사한 부분에선 플랑드르의 전매특허인 디테일 묘사가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습니다. 루벤스는 당대 그림 영재들과 마찬가지로, 성인이 된 후, 이탈리아로 유학을 떠납니다. 피렌체와 베네치아에서 수준 높은 회화를 경험했는데요. 루벤스는 어려서 보고 배운 플랑드르식 회화 스타일에 이탈리야 양식을 더해 자신만의 독특한 회화 스타일을 발전시켰는데요. 그렇다면 루벤스는 어떻게 유럽 최고의 슈퍼스타가 될 수 있었을까요?


루브르엔 루벤스 그림이 일단 상당히 많습니다. 특히 오늘 소개할 <마리 드 메디치의 생애 연작> 24점은 루브르 큰 방의 벽 전체를 가득 메우고 있을 정도인데요. 그림 속 주인공 마리 드 메디치는 프랑스의 왕비이자, 앙리 4세의 아내였습니다. 물론 두 사람이 만나기 전, 앙리 4세는 유부남이었습니다. 종교 화합을 위한 프랑스 공주 마르고와 정략결혼을 했었죠. 하지만 두 사람의 결혼 과정에서 가톨릭 신도가 신교도를 대학살 하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게 됩니다. 애초에 애정도 없던 결혼인데, 피비린내 나는 학살을 경험했으니, 결혼 생활이 유지되기 쉬웠겠습니까. 결국 앙리 4세는 엄청난 노력 끝에 당시로서는 거의 불가능에 가깝던 이혼에 성공합니다. 그리고 그는 또 다른 정략결혼, 즉 당시 유럽 최고의 부자, 메디치 가문의 마리와 결혼을 하게 되죠.


피렌체에서 태어난 마리 드 메디치

가장 먼저 <피렌체에서 태어난 마리 드 메디치>를 보시죠. 가운데 아기가 당연히 마리 드 메디치입니다. 그녀를 안은 사람은 엄마가 아닌, 의인화된 피렌체 여신이고요. 옆에는 출산의 여신 루치나가 횃불로 어둠을 밝히고 있습니다. 하늘 위 세 개의 영혼 중, 두 영혼은 꽃을 뿌리고 있으며, 다른 하나는 왕실의 힘을 상징하는 뿔, 코르누코피아를 들고 있죠.

그림 아래엔 공주가 태어난 아르노강의 신이 사자와 함께 있네요. 하늘엔 궁수자리의 이미지가 어렴풋이 보이는데, 이는 황소자리인 마리 메디치가 만나게 될 미래의 남편, 앙리 4세의 별자리를 표시해 놓은 겁니다. 물론 이런 걸 다 모르고 봐도, 대단히 성스러운 탄생을 기념하기 위해 화가가 애썼음이 느껴집니다.


마리 드 메디치의 초상화를 받아 본 앙리 4세


<마리 드 메디치의 초상화를 받아 본 앙리 4세> 그림도 재밌습니다. 그림 상단, 제우스와 헤라가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고요. 마리의 초상화를 들고 있는 건 결혼의 신 히메나이오스와 사랑꾼 큐피드입니다. 앙리 4세 뒤에는 의인화된 프랑스, 갈리아가 초상화를 함께 보고 있고요.

멀리서 나는 연기는 프랑스가 전쟁하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아기 신들은 앙리 4세의 방패와 투구를 갖고 노는데, 이는 이제 전쟁이 끝나고 곧 평화의 시대가 시작될 것임을 알려주는 겁니다. 이제 무기는 내려놔도 될 시대라는 거죠. 예전 왕족 결혼은 대부분 정략적 이유에서 이뤄지긴 했지만, 그래도 얼굴이 궁금했던 건 지금과 비슷했는지, 초상화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서로 얼굴을 확인했습니다. 앙리 4세는 소문난 바람둥이였으니, 아마 그림을 보고 일단 만족하지 않았을까요.



나머지 22점의 그림도 두 그림과 마찬가지로 실재와 허구가 아주 절묘하게 뒤섞여 있습니다. 실제 마리 메디치의 생애를 한 편의 그리스·로마 신화처럼 표현한 거죠. 그림 곳곳엔 아는 사람만 알 수 있는 신화적 상징들이 숨겨져 있고요. 바로 여기에 유럽 왕실이 루벤스에 열광한 첫 번째 이유가 있습니다. 루벤스는 그림도 잘 그렸지만, 어려서부터 성경은 물론, 그리스·로마 신화를 통달한 수재였습니다. 르네상스 이후, 왕실들은 다른 귀족들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그림을 갖고 싶어 했는데, 새로운 그림을 그리려면 남들이 그리지 않았던, 새로운 소재를 찾아내는 능력이 필요했습니다. 모르는 게 없었던 척척박사 루벤스는 툭 치면 소재가 튀어나오는 아이템의 보고였고, 예전에 그려진 적이 없던 소재를, 다양한 상징을 활용하여 유식하게 그려냈으니 당시 왕실에서 그에게 열광했던 거죠. 한 마디로 루벤스는 아는 게 많아, 작품 기획력이 탁월했던 겁니다.


마르세유로의 입성


위에서 설명한 두 그림 외에도 다양한 상징들이 숨겨져 있는데요. 24점의 그림 중 가장 유명한 <마르세유로의 입성>도 마찬가집니다. 피렌체에서 결혼하고 프랑스 남부 마르세유로 들어온 마리를 그렸습니다. 즉, 시댁으로 들어오는 며느리를 그린 건데, 마리를 두 팔 벌려 환영하는 사람은 역시나 의인화된 프랑스입니다.

당시 마리 드 메디치는 배를 타고 건너왔는데, 배 아래에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과 세 명의 바다 정령이 여왕을 안전하게 프랑스로 모시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루벤스는 자연스럽게 실제 왕족이 경험한 일을 신의 세계에서 일어날 법한 사건으로 격상시키고 있는 겁니다. 다른 두 그림도 마찬가지죠. 피렌체 도시와 출산의 여신이 보우하는 마리의 탄생은 얼마나 신성한 일일 것이며, 사랑의 신 큐피드와 결혼의 신 히메나이오스가 연결해 주는 결혼이란 얼마나 강력했겠습니까.


기획력만 있고 실행력이 없으면 물론 안 되겠죠. 그림을 잘 그리는 건 기본입니다. 루벤스는 플랑드르와 이탈리아의 그림 스타일을 흡수해 자신만의 양식을 만들어 냈습니다. 일단 르네상스의 엄격한 그림에 비해 루벤스의 작품은 색이 화려하고, 붓 터치가 역동적입니다. 동시에 카라바조 이후, 바로크 화가들이 발전시킨 연극적 구성도 탁월하게 활용했죠. <마르세유의 입성>에서 배 위의 우아하고 정적인 분위기와 배 아래 바다의 신과 물 정령들의 극적인 포즈를 조화롭게 배치된 것처럼요. 특히 루벤스는 피부색의 붉은 터치를 잘 사용하여, 그림 속 인물을 생동감 있게 만드는 탁월한 능력을 자랑했습니다. 앙리 4세의 투구와 방패를 갖고 노는 어린 신들의 얼굴을 한번 보시죠.

피부의 붉은 혈색과 방금 립글로스를 바른 듯한 생기 넘치는 입술의 묘사는 루벤스의 그림 실력이 얼마나 뛰어났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생드니의 임관식>에 참여한 여성 귀족들의 혈색 좋은 피부색도 마찬가지고요.

물론 루벤스는 게으른 천재가 아녔습니다. 루브르 박물관엔 대형 작품을 완성하기 전, 루벤스가 연습하며 스케치했던 그림들이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가장 역동적인 순간을 구성할 수 있는지, 보는 사람의 시선을 고려할 때 구성은 어떻게 바뀔 수 있는지, 인물들의 표정과 움직임을 연구했습니다.

이처럼 완벽주의 성향을 보였음에도, 더 놀라운 건, 루벤스가 마리 드 메디치 생애 연작 24점을 3년 안에 완성했다는 점입니다. 바로 여기에 루벤스가 스타가 된 세 번째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밀려드는 주문을 소화할 수 있는 왕성한 생산력, 주문 납품 기일을 잘 맞추는 자본가적 특성이 바로 루벤스의 또 다른 능력이었죠. 즉, 루벤스는 대형 그림을 탁월하게 구성하는 능력과 대규모 작업을 빠르게 소화하는 능력을 동시에 갖추고 있던 겁니다.


생드니에서 열린 마리 드 메디치의 대관식


당연히 혼자 모든 작업을 한 게 아닙니다. 루벤스는 우리가 알던 괴팍하고 독특한 르네상스의 예술가와 달리 온화하고 사교적이었습니다. 때문에 그는 자신만의 사단, 대형 공방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피렌체에도 공방은 있었지만, 루벤스 공방의 규모는 훨씬 컸습니다. 직원이 100명이 넘었던 적도 있었을 정도니까요. 공방이라기보다 공장이라고 말하는 게 더 정확할 것 같습니다. 루벤스가 스케치를 통해 초안을 잡으면 조수들이 대형 화폭에 작업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유명 식당의 셰프가 맛을 체크하고 최종 요리를 완성하는 것처럼, 루벤스가 마지막으로 조수들이 한 작업을 최종 수정하여 루벤스식 작품으로 완성해 낸 겁니다. 어찌 보면 그는 뛰어난 뮤지션이자 동시에 훌륭한 음악 기획사 대표였던 셈이죠. 이후에 루벤스 공방의 조수들이 유명 화가가 되고, 나아가 독립하여 또 다른 회사를 차리기도 했습니다. 그 조수 중 가장 성공한 인물이, 영국 왕실 화가가 된 앤서니 반 다이크입니다.

앤서니 반 다이크의 작품


루벤스는 유식한 기획자였으며, 탁월한 그림 실력의 소유자였고, 효율적인 경영인이었습니다. 그 결과 루벤스는 유럽 대륙 전체에서 최고의 명성을 획득했습니다. 워낙 많은 왕실을 돌아다니며 그림을 그린 덕분에, 나중엔 지금의 외교관 역할까지 하게 됐다고 합니다. 내밀한 공간에서 오린 시간 그림을 그리다 보니, 자연히 루벤스는 유럽의 여러 권력자와 친해지게 됐고, 때로 일부 왕실은 루벤스의 그림 실력만큼이나 그의 인맥을 활용하고 싶어 했던 가죠. 그 정도로 루벤스는 살아생전 화가가 누릴 수 있는 모든 영예를 누렸던 인물이었고, 가장 먼저 전국구 스타가 된 화가였던 거죠. 대형 작품 제작에 특화된 왕성한 작품 생산력의 가장 큰 수혜자는 당시 유럽의 왕실이 아닌 현대의 미술 관람객입니다. 루벤스의 이런 능력 덕분에 우리는 전 세계 여러 미술관에서 다양한 루벤스의 작품을 볼 수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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