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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스트레스를 잠시 잊는 방법

헤르타 뮐러 <숨그네>

by 알스카토

아우슈비츠에서 살아 돌아온 이탈리아 화학자 프리모 레비는 <이것이 인간인가>에서 ‘허기’를 언급한다. 피로, 공포, 고통이란 단어도. 레비는 기존의 언어가 ‘자기 집에서 기쁨을 즐기고 고통을 아파하며 살아가는 자유로운 인간들이 만들어내고 사용하는 자유로운 단어’라며, 아우슈비츠에 적합한 새로운 언어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그래서였을까. 러시아 수용소에 끌려갔던 루마니아인은 침묵을 택했다. 마치 자신들의 경험을 터무니없는 할인가에 내놓고 싶지 않다는 의지의 표현처럼. 수용소 기억을 ‘추운 게 배고픈 거보다 힘들다’로 축약해 드러내던 어머니를 보며 작가 헤르타 뮐러는 침묵 뒤의 고통을 뽑아낼 수 있는 단어를 찾아 나섰다.


2차 대전 당시 루마니아는 동맹국 독일 대신 스탈린의 소련을 선택했다. 그 반대급부로 소련은 루마니아 거주 독일인을 요구했다. ‘참전 경험이라곤 전혀 없는 우리가 러시아인들에게는 히틀러가 저지른 범죄에 책임이 있는 독일인들이었다.’(P.50) <숨그네>의 주인공 레오도 그때 러시아 수용소로 끌려갔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말 그대로 포맷당했다. 문명이 부여한 모든 인간의 의미를 삭제당한 채, 원초적인 인간의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자아가 탄생하기 이전의 인간으로. 자아가 사라진 자리를 차지한 건 배고픈 천사였다. 수용자들은 배고픈 천사의 법칙 아래서 움직이는 수용소의 노동 기계가 되었다. 단순한 삶이었다.


배고픔은 항상 있다.
늘 거기 있으므로 제가 원할 때 원하는 방식으로 온다.
이 인과 법칙은 배고픈 천사의 손에서 탄생한 졸작이다.
배고픈 천사는 일단 나타나면 본때를 보인다.
정확도는 높다.
삽질 1회=빵 1그램 (P.96)
그리고 밤이 온다. 모두 일터에서 돌아온다. 일제히 배고픔에 올라탄다. 배고픈 사람의 눈에 다른 배고픈 사람은 올라탈 침대틀로 보인다. 그러나 그건 착각이다. 나는 느낀다, 배고픔이 우리 위에 올라타는 걸. 우리는 배고픔을 위한 틀이다. 우리 모두 눈을 감고 먹는다. 우리는 밤새 배고픔을 먹인다. 우리는 삽 위에 올라탈 배고픔을 살찌운다. (P.99)


수용소를 관통하는 제1 진리는 배고픔이다. 수용소의 세부 법칙과 사람들의 움직임은 모두 배고픔에서 파생된 결과물이다. 빵을 훔치다 걸린 동료를 집단 폭행하는 건 ‘일반적인 도덕’이 통용될 수 없는 ‘빵의 법정’ 명령이다. ‘남의 떡이 커 보인다’는 속담을 증명하듯, 그들은 먹기 전까지 빵을 바꾸고 또 바꾼다. 그리고 후회한다. ‘빵 바꾸기의 덫’이다. 아사한 동료의 몸에서 잽싸게 옷을 벗기고 빵을 가져가는 일 역시 그들만의 애도 방식이다. ‘수용소는 실용적인 세계다. 수치심과 두려움은 사치다.’ (P.168) ‘뼈와가죽의시간’ 속에서 조리법을 이야기하며 견딘다. 배고픔의 천사가 만든 진리대로 흘러가는 게 수용소에서의 자연스러움이다.


적나라한 진실은, 법무사 파울 가스트가 배고픔을 어쩌지 못해 아내 하이드룬 가스트의 수프를 훔친 것처럼, 그 아내가 일어나지 못하고 어쩔 수 없이 죽은 것이고, 아내가 일어나지 못해 죽을 때까지 남편은 아내의 그릇에서 수프를 훔쳤다는 것이며, 그가 둥근 깃과 해진 토끼털 주머니가 달린 아내의 외투를 입고서 아내의 죽음을 책임질 수 없었듯, 아내가 제 몸을 일으키지 못한 것이 그녀의 책임은 아니었으며....(중략) 비록 외투 한 벌을 둘러싼 일이었지만 원인과 결과라는 것이 이렇게 적나라한 진실임을 원인과 결과를 향해 따질 수 없는 것처럼, 하루하루가 원인과 결과의 굴레가 되어가는 것이 세월 탓은 아니었다.
일의 경과가 그랬다. 누구도 책임이 없었기에 아무도 책임을 질 수 없었다. (P.256-257)


그러니까 군대 시절, 사회 나가면 늘 감사하며 살아야지 하는 다짐이 제대 후 한 달도 못 넘겼던 건, 독감에 걸려 혹은 대책 없는 숙취에 괴로워하며 몸의 고통이 사라질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겠다던 의지가 하루 이틀을 못 넘겼던 건, 진짜 몸의 고통을 겪어보지 못해서였다. 몸의 고통이 노동의 일부인 사람을 바라보며 ‘차라리 몸이 힘든 게 낫지’라는 말 따위를 꺼낸다거나, 몸의 고통을 알고 싶다며 카메라 들고 엠티쿼터 사막으로 떠났던 일은 자유로운 인간의 사치였다. 사는 게 팍팍한데 왜 굳이 2차 대전 당시의 고통을 읽어야 할까란 의문은 헤르타 뮐러가 조탁해낸 언어 앞에서 부끄러움으로 되돌아온다. 타인의 고통에 둔감한 인간도 <숨그네>를 읽으며 ‘공감’이란 단어를 체화할 수 있다.


만화가 최규석의 <습지생태보고서>‘팔을 잘려 본 사람은 손가락 잘린 사람을 위로하지 못한다’란 에피소드가 있다. 고통의 경쟁 심리를 비꼰 만화였다. 고통이 다 주관적이고, 내가 겪는 고통이 가장 아픈 고통일진대, 왜 누군가의 아픔은 덜 아픈 고통으로 치부되어야 하는가. 이게 요지였는데, <숨그네>를 보며 어쩔 수 없이 고통의 차등은 존재하며, 고통의 무한 상대화 역시 자유로운 인간들의 사치는 아닐까란 생각이 들었다. 몸의 고통은 실제적이다. 내면의 목소리가 만들어낸 허상의 고통과 다르다. 때문에 몸의 고통을 겪은 인간이 세상을 보는 관점은 다르다. 레오는 수용소 너머, 자유롭게 날아가는 새떼와 그들을 지키는 망루와 보초병을 바라봤다. 거기서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새 떼를 보며 자유를 꿈꿨을까. 아니다.


나는 망루의 보초병과도, 새 떼 목걸이와도 자리를 바꾸고 싶지 않았다. 매일 밤 똑같은 계단 64개를 내려가야 하는 지하실의 슬래그 노동자도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총이 되고 싶었다. (P.253)
추위가 살을 에고, 배고픔이 기만하고, 피곤함이 짓누르고, 향수가 먹어치우고, 이와 빈대가 문다. 나는 생명이 없으므로 죽지도 않는 것들과 거래하고 싶었다. 나는 내 몸을 허공의 지평선과 땅의 먼짓길과 바꾸는 구조(救助)바꿈을 원했다. 나는 몸 없이 존재하고 싶었다. (P.278)


아우슈비츠를 버텨냈던, 이후 시대의 야만을 끈질기게 기억했던 프리모 레비는 70세가 되기 전 아파트 난간에서 몸을 던졌다. 헤르타 뮐러는 –273도, 절대 영도를 이야기한다. 더 아래로 내려갈 수 없는 고통의 밑바닥. 그때의 고통은 몸 안에 새겨진다. 때문에 절대 영도를 겪고 나면 인간은 완전히 달라진다. 고통 이전의 순간으로 되돌아갈 수 없다. 매 순간 스트레스를 받으며, 힘들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지만, 절대 영도를 모르는 자유인의 입장에선 그저 소설 앞에서 겸허함을 느낄 뿐이다. 동시에 거대한 비극을 실용주의적으로 활용하려는 현대인의 본성이 발휘된다. 내가 겪고 있는 스트레스가 사소하게 느껴지는 위안을 받는 건, <숨그네>의 덤이다.


고향에 돌아온 후로 내 보물에는 나 거기 있다는 물론 거기 있었다라는 말도 적혀 있지 않다. 내 보물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나는 거기서 나오지 못한다. (P.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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