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 크리스마켓이 열릴 때면 늘 그런 건지 모르겠지만 오늘밤 본 베를린은 지금껏 내가 본 독일 도시의 야경 중 가장 밝았다. IMF에서 G7국가 중 독일만 유일하게 마이너스 성장을 예상한다더니, 불황을 감추거나 혹은 민심을 달래기 위해 겉은 더 화려 해진 건가 싶었다. 2차 대전 당시 파괴의 흔적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카이저 빌헬름 기념 교회를 배경으로 아기자기한 크리스마스 마켓 샵들이 서있으니 더 운치 있어 보였다. 전쟁의 참혹함을 기억하기 위해 교회를 보수하지 않고 파괴된 모습 그대로 유지하는 건데, 마치 그 모습이 시간의 풍파 속에 자연스레 쇠잔해진 오래된 역사 유적 느낌을 줬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마켓에서 연기가 모락모락 나는 맥주를 마셨다. 마치 우리가 추운 겨울날 오뎅 국물을 마시듯이. 유럽 선진국의 화두는 탄소배출 감축, 친환경인데, 독일 경제의 중추인 자동차 산업이 이런 변화에 직격탄을 맞았다. 인구 고령화로 노동력마저 부족해서 서서히 구조적 경제 침체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래도 베를린 시민들은 깜깜했던 도시에 불이 켜지고, 연말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나니 그저 행복해 보인다. 물론 조국 경제에 대한 굳건한 신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