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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알스카토 Dec 16. 2023

1215@Préfecture de Police


파리에 살 수 있는 증서, 체류증 받는 날은 역설적으로  파리에서 가장 살기 싫어지는 날이다. 체류증을 받기 위해 약속시간보다 20분쯤 일찍 도착했는데 벌써 줄이 길다. 프랑스는 헝데부, 즉, 약속을 매우 중시하며, 정확한 헝데부 시간을 주는데, 체류증 받는 날은 그 시간과 상관없이 기다리고 또 기다려야 한다. 마치 파리 체류증 발급을 생색이라도 내려는 것처럼 사람을 기다리게 만드는 것. 한 프랑스인이 출근시간 한참 지닌 시간에 경시청 앞에서 조깅을 하며, 길게 서있는 외국인들을 안쓰럽게 쳐다보고 지나간다. 체류증 받으러 가는 줄 사이사이엔 다양한 마름들, 즉. 중간 관리들이 있다. 줄 똑바로 서라고 잔소리하는 직원, 언제까지 기다리냐고 항의하는 사람들을 제압하는 경찰, 헝데부 시간 체크하는 사람, 서류 잘 갖고 왔는지 체크하는 직원, 번호표 배부하는 사람 등등. 중간 마름들은 조금이라도 미흡한 게 있으면 체류증 수령 대기자들을 호되게 꾸지람한다. 나도 어제 혼났는데. 뒷줄에 서있던 한국분의 도움으로 겨우 위기를 모면했다.(치사해서 안 받는다 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 기다림이 길어지고, 체류증을 받으러 가는 사람들의 표정은 죄다 어두운데, 마름들은 뭐가 그리 기분이 좋은지, 경찰 한 명은 쉴 새 없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다가 결국 큰 소리로 노래 부른다.(작은 권력이 주는 행복이려나) 3시간쯤 돼서 어렵사리 체류증을 받고 나니 이 작은 카드가 마치 피천득 수필 속 거지가 집착하던 은전 한 닢 같이 느껴진다. 기다림의 분노는 사라진다. 대신 체류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경시청에 속으로 인사를 하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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