꼰대가 되지 않기 위한 방법

이언 매큐언 <솔라>

by 알스카토

소설 <솔라>의 주인공 마이클 비어드는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과학자다. 노벨상을 무기로 화려한 여성 편력을 과시했고, 끊이지 않는 특강과 정부 연구 기관장 자리를 차지하며 삶을 윤택하게 이어갔다. 마치 고3 시절의 맹렬한 성실성으로 나머지 인생의 안락함을 보장받았던 것처럼(물론 이건 옛날 얘기지만) 마이클 비어드의 인생도 21살 젊은 물리학도의 열정에 꽤 큰 신세를 지며 유지되고 있었다. 이제 그 열정을 대체한 건 지혜를 가장한 냉소다. 냉소가 빚어낸 그의 삶은, 이제 여섯 번째 아내와의 쌍방 불륜으로 갈등을 겪고 있었으며, 기관장으로 있던 연구 재단 사업을 과학적 근거가 아닌 대마불사의 힘으로 이어가고 있었다.


가끔 비어드는 어느 모르는 청년, 자신은 꿈도 꾸지 못할 만큼 똑똑하고 헌신적인 이론물리학자의 업적 덕에 평생을 쉽게 살아온 기분이 들었다.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 스물한 살의 물리학자는 천재였다. 그런데 그 청년은 어디로 간 걸까? 그의 논문을 보고 흥분한 리처드 파인먼이 1972년 솔베이 회의를 중단시켰다는 그 마이클 비어드가 정말 자신이 맞는 걸까? 아직까지 그 유명한 솔베이의 ‘마법의 순간’을 기억하거나 관심 있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P.87-88)


늘어나는 뱃살과 빠지는 머리만큼이나 내면의 모습도 시간이 갈수록 변해간다. 직접 일하기보다 말로 대신하는 경우가 많아진다. 말로 하는 업무는 실패할 가능성이 낮다. 그간의 경험들이 어설픈 지식들과 화학적으로 결합하면서 무수한 편견의 더께가 쌓여간다. 쉽고 단호하게 판단하며, 주저함 없이 의견을 드러낸다. 변해가는 모습은 한 때 내면에 있던 어느 모르는 청년이 혐오하던 특징과 꽤나 비슷하다. 그런데 어쩔 수 없다.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처럼, 사람이 늙어가는 과정에서의 자연스러운 변화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어쩔 수 없이 누구나 꼰대가 되어 간다.


꼰대를 유지하는 가장 큰 동력은 냉소다. 냉소는 소극적 태도다. 방관자의 미덕이다. 냉소는 세상의 모든 실패와 그로 인한 비판으로부터 자아를 막아주는 것 외엔 어떠한 의미도 찾을 수 없는 무기력의 에너지다. 삶의 부조리와 받아들이기 힘든 실패를 반복적으로 겪으며 냉소가 태어난다. 늙을수록 냉소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모든 혼란에서 한발 떨어져 고고하게 세상을 조롱하지만, 정작 자신의 삶에 어떠한 기여도 하지 못하는 냉소적 인간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몸과 머리를 분리시킨다. 전방위적으로 주변을 비판하지만, 정작 자신의 삶은 자신이 비판하는 그 모습과 거의 다르지 않다. 꼰대의 핵심은 바로 냉소에 있다.


마이클 비어드는 전형적인 꼰대다. 지적으로도 탁월한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 온갖 다채로운 바보로 가득 차 있다. 실제로도 세상엔 바보가 많다. 그중에서도 타인을 바보라고 냉소하지만 정작 자신이 바보임을 모르는 바보가 가장 대표적인 유형이다. 머리에 지식은 많아서 온갖 이야기를 쏟아내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는 식. 실제로 지구온난화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비어드를 포함한 지적인 예술가들이 북극 여행을 떠난다. 그곳에서 환경 파괴의 심각성을 논하고, 그 사안을 저마다의 전공을 살려 분석하고 표현하지만, 정작 매연을 뿜으며 스노 모빌을 타고 다니고, 탈의실에서 지켜야 할 작은 원칙도 지키지 못해, 타인의 방한 장비를 훔친다.


종으로서 인간은 상상 가능한 최고의 종은 아니자만 분명 현존하는 최고의, 아니 가장 흥미로운 종이다. 하지만 탈의실에서 보여준 그 불명예는 어떤가? 그건 분명 인간 본성의 문제다. 그런데 대체 인간 본성에 대해선 어떻게 배우게 되는 걸까? 과학은 물론 훌륭한 것이고 예술도 그럴 수 있겠지만 어쩌면 자기 이해는 별개의 문제인지도 모른다. 탈의실은 결점이 있는 생물체가 올바로 사용할 수 있도록 적절한 체계를 갖춰야 한다. 과학이나 예술, 이상주의에 책임을 미루지 말자. 오직 좋은 규칙만이 탈의실을 구학 수 있다. (P.132-133)


동감하는 내용이지만, 정작 이 말을 하는 마이클 비어드는 죽은 제자의 연구 아이디어를 훔쳐 경제적 대박을 꿈꾼다. 그게 바로 냉소의 문제고, 냉소의 전형이다. 시선이 내면을 향하지 못한다. 세상의 온갖 비과학적 태도를 비난하고, 대중의 비합리적 냄비 근성을 욕하던 마이클 비어드였지만 제자의 연구를 훔친 뒤 자신의 행동을 이렇게 정당화한다. ’ 죽은 사람에게 우선권이나 독창성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게다가 긴급한 문제를 다룰 때는 누구 이름이 들어가는지 따위의 디테일은 의미가 없었다. 유일하게 중ㅇ한 의미는 올더스의 연구의 본질이 오래도록 남을 거라는 점이었다.‘ (P.300) 뇌가 큰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사후 논리는 이토록 탄탄하고 아름답다.


냉소의 본질은 생각이다. 맞다. 나이 들면 생각이 너무 많아진다. 뇌가 끊임없이 말을 거는데, 대부분은 비생산적인 내용들이다. 시간의 대부분을 쓸데없는 생각과 비판에 소모하느라, 정작 의미 있는 그 어떤 결과물도 만들어내지 못한다. 몸은 움직이지 않는다. 시간의 강은 게으른 냉소꾼을 태워 흘려보내고, 긴장의 끈을 놓은 채 자신을 둘러보면 이미 되돌아갈 수 없는 추한 늙은이의 모습만이 남게 된다. 이언 매큐언의 비극답게 <솔라>의 마이클 비어드는 자신의 비도덕과 무감각 때문에 결국 파멸을 맞게 된다. 그 파멸 앞에서 독자가 가질 수 있는 태도는 경계와 반성뿐이다. 내 안의 게으른 냉소꾼을 조심하라는 게 이언 매큐언의 메시지다.


그렇다고 남은 여생을 고3처럼 긴장하며 살 수 없다. 정답도 아니다. 다만 마이클 비어드의 모습에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훌렁 벗어진 정수리를 받치고 귓불까지 내려오는 덥수룩한 머리칼, 겨드랑이 아래도 장식용 커튼처럼 늘어진 살, 순진하고도 아둔하게 튀어나온 뱃살과 엉덩이‘ (P.18) 팔 굽혀 펴기를 8번도 못하면서 감자칩 앞에서 모든 이성을 해제하는 사람이 마이클 비어드다. 지금부터 외모를 가꾸라는 의미가 아니다. 몸과 머리의 분리를 막기 위해선 쇠퇴해가는 몸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 몸을 바쁘게 움직이고, 몸으로 무언가를 이뤄내야 한다. 게으른 냉소꾼 뇌가 지껄이는 헛소리를 어느 정도 막기 위해 몸을 써야 한다.


자족적이고 자신에게 몰두해 있었고, 그의 정신은 욕구와 몽상의 집합체였다. 객관성을 소중히 여기는 많은 똑똑한 사람처럼 그는 자기중심주의자였고 그의 마음속에는 얼음덩어리가 존재했다. (P.272)


마이클 비어드의 모습이다. 육체와 관련된 어떠한 특징도 없다. 전형적인 꼰대의 모습. 때문에 사소하지만 몸을 이용해 뭔가를 만들고-목공예를 하거나, 텃밭을 가꾸거나, 유튜브 영상을 편집하거나 등-실체가 있는 결과물을 도출해낼 필요가 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지만 몸으로 뭔가를 직접 하다 보면, 서투른 자신의 모습에 겸손함도 얻게 되고 무엇보다 게으른 냉소꾼이 되어 잔소리를 쏟아내는 쾌감의 중독에서 어느 정도 벗어날 수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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