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의 얼굴을 사랑하는 방법

알랭 드 보통/정이현 <사랑의 기초>

by 알스카토

소크라테스는 말한다. 사랑은 완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불완전에서 온다고. 사랑은 충만한 완성이 아니라 극도의 결핍이라고. 때문에 에로스적 사랑엔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심정이 다르다’는 싸구려 격언이 그대로 적용된다. 그녀를 욕망하던 순간의 사랑은, 그녀를 얻는 순간 짧은 포만감과 함께 시들어간다.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던 <봄날은 간다> 상우의 질문은 그래서 어리석을 수밖에 없다. 사랑은 호르몬의 작동이라는, 환원주의적 표현을 피하더라도, 지속 불가능한 속성을 부정할 수 없다. 아니 어떠한 감정도 영원할 수 없다. 그러니 남편이나 부인의 얼굴을 바라보는 시선이야 오죽하겠는가.


정이현 <사랑의 기초-연인들>, 알랭 드 보통 <사랑의 기초-한 남자>는 일종의 사랑 연대기 소설이다. 정이현은 한 연인의 일대기를, 알랭 드 보통은 유부남 벤의 이야기를 건조하게 그려낸다. 민아와 타버린 빵 모서리 조각도 나눠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던 준호는 어느 순간 주말마다 만나자는 민아의 요청이 부담스럽다. 일요일 오전 TV를 보며 빈둥거리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그녀를 사랑하는 것과 빈둥거리던 그때를 그리워하는 것은 엄연히 다른 문제'라고 해명한다. 물론 변명이다. 벤도 화목한 가정의 가장이지만, 결혼 생활이 그리 행복하지 않다. 이 모든 게 변덕스러운 감정에 기초한 관계에서 출발했기 때문이다.


준호와 민아는 삐걱거린다. 두 사람이 부딪히던 때는 사랑의 감정이 모든 걸 치유해주던 시기가 지날 무렵이었다. 이때부터 준호와 민아는 상대가 자신을 제대로 이해해주지 못하는 현실이 서운하다. 그들은 타인의 애정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충족시키고자 했다. 둘 다 주긴 싫고 받고만 싶은 상황. 애초부터 불가능한 기대 위에 사랑의 건축물을 세운 꼴이다. 바로 여기에 낭만주의적 사랑의 위험이 숨어있다. 낭만적인 사랑은 사랑의 대상보다 사랑을 더 사랑하는 사람, 열정을 위한 열정을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어낼 뿐이다. 내 안의 열정과 사랑이 식어버리는 순간, 사랑의 대상은 바로 용도 폐기된다.


'현대의 사랑 이야기는 우리에게 위험천만한 기대를 주입했다. 우리는 다른 사람 때문에 실망하지도 않고, 우리 또한 그를 실망시키지 않기를 진정으로 바라게 되었다. 하지만 이런 초자연적인 묘기는 경우에 따라서가 아니라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P.133 한 남자.)


사랑에 기반한 결혼 생활이란 건 거대한 신화다. 굳건하지 않은, 쉽게 변하는 감정에 내 결혼 생활을 맡기는 건 얼마나 위태로운가. 때문에 이 단계에서 에리히 프롬에서부터 알랭 드 보통까지 오랜 세월 여러 사람이 강조했던 부분, 즉, 사랑을 기술로서 인식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스피노자는 말한다. '사랑은 물론 욕망이다. 하지만 욕망은 결핍이 아니라 능력이며, 기쁨이다.‘ 그렇다. 사랑은 능력이다. 능력은 개발하고 다듬어야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그렇다면 그 능력을 어떻게 발휘해야 할 것인가. 소설 속에서 단서를 찾아본다. 부모의 사랑. 그렇다. 배우자를 딸이나 아들처럼 사랑하려는 노력이다.


'어른의 사랑은 아이일 때 어떻게 사랑받았는지를 추억하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 무엇을 희생했는지 상상해보는 것이어야 한다.' (P.157, 한 남자)


이쯤 되면 이렇게까지 노력하며 사랑해야 하는가란 의문이 떠오를 수 있다. 하지만 혼자 사는 게 인류의 정답이라고 생각한 사람, 평생 주기적으로 파트너를 교체할 자신이 있는 사람을 제외하면, 이를 받아들여야 한다. 내 옆의 파트너가 바뀌더라도, 사랑의 감정과 결혼 관계의 본질은 바뀌지 않기 때문이다. 즉, 이렇게까지 노력하며 살아야 사랑할 수 있다는 개념이 박혀 있어야 한다. 평생 자유로운 영혼처럼 사랑의 감정에 내 몸을 맡기며 사는 결혼 생활은 소설이나 영화로 대리 만족하자. 매일 새벽 운동을 나가는 사람의 심정, 토익 900을 향해 영어 공부하는 마음가짐이 결혼엔 필요하다.


'결혼 생활이 안기는 실망에 대한 해결책으로 외도를 생각하는 것은 결혼이 우리 존재 자체의 실망에 답이 되어줄 거라는 생각만큼이나 미성숙한 것이다.' (한 남자, P.138)


프랑스의 작가 스탕달은 말한다. '사랑한다는 것, 그것은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사랑스러운 대상을 보는 기쁨, 만지는 기쁨, 느끼는 기쁨을 가능한 최대한 얻어내는 것.' 노력해야 한다. 좋은 점을 바라보고, 파트너에게서 최대한 기쁨을 뽑아내려고 노력해야 한다. 프랑스 철학자 앙드레 콩트 스퐁빌도 말을 보탠다. '초기의 광적인 사랑을 기쁨으로, 부드러움으로, 감사로, 명철로, 신뢰로, 함께 사는 행복으로, 간단히 말해서 필리아로 전환해야 한다.' 즉, 가장 오랜 친구 같은 관계로 발전시키는 게 필요하다. 친구의 얼굴을 바라보며, 모든 기쁨을 최대한 얻어내려 노력하는 것, 그것이 이미 소멸해버린 광적인 사랑의 재점화를 기다리며 하루하루를 불만족스럽게 보내는 것보다 백 배 낫다.


알랭 드 보통과 정이현의 소설은 사랑의 연대기를 건조하게 잘 그려냈지만, 안타깝게도 더 많은 실용적 해법의 단서를 찾긴 힘들다. 다만 연대기는 사랑에 기반한 결혼을 지속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 사랑은 선천적인 능력이 아닌, 갈고닦아야 할 기술이란 사실을 말해준다. 한 사람과 깊은 우정을 주고받듯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방법을 깨우치게 된다면, 한 개인과의 관계를 강제로 규정한 결혼은 결코 한 개인의 무덤이 될 수 없다. 대신 결혼은 그리스 철학자들이 늘 꿈꾸던 완벽한 우정의 파트너를 제공한다. 핵심은 사랑을 하는 것이 아닌, 어떻게 사랑을 하는가에 달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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