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증편향에 빠지지 않는 방법

그레임 맥레이 버넷 <블러디 프로젝트>

by 알스카토

<블러디 프로젝트>는 소설이라기 보단 한 편의 실험이다. 인간의 선입견이 얼마나 강하며, 그로 인한 확증편향이 결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인식 실험이랄까. 그레임 맥레이 버넷이 쓴 소설엔 ‘로더릭 맥레이 사건 문서’라는 부제가 붙어있다. 소설가 버넷은 주변 이웃의 증언이나, 부검 결과, 정신과 전문의 감정 등과 피고인 로더릭 맥레이의 진술을 모은 뒤, 이 자료들을 스코틀랜드 기록 보관소에서 가져왔다고 말한다. 때문에 <블러디 프로젝트>는 소설이 아니라, 마치 역사학자가 작업한 사료처럼 느껴진다. 물론 시작부터 트릭이다.


1869년 스코틀랜드 북부의 작은 마을, 컬두이에서 열일곱 소년 로더릭 맥레이가 일가족 세 명을 처참하게 살해한다. 그중 한 명은 심지어 아기다. 세 명을 삽으로 죽인 뒤, 로더릭 맥레이는 차분하게 이웃에 자수를 하고, 죄를 인정한다. <블러디 프로젝트>에서 중요한 것은 범인이 아니라 동기다. 그는 왜 잔혹한 방법으로 이웃을 살해한 것일까. 소설엔 확증편향에 사로잡힌 변호사가 등장한다. 그는 확고하다. 변호인 앤드루 싱클레어는 로더릭 맥레이가 이웃을 살해한 것이 사실이지만, 피고인에게 살해 명분이 있었다며, 그의 구명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 본격적으로 로더릭 맥레이의 해명과 함께 소설은 시작한다.


총 386페이지의 소설 중 213페이지에 걸쳐 로더릭 맥레이의 해명이 덤덤하게 진술되는데, 꽤 평범하고 심지어 지루하다. 엄밀히 말하면 전형적이다. 아버지를 괴롭히는 마을의 작은 권력의 폭정에 맞서, 아들 로더릭 맥레이가 아버지를 대신하며 폭압적인 이웃 라클런 브로드를 살해했다는 내용. 상투적인 권선징악의 복수 스토리다. 그렇다면 뻔한 이야기를 이토록 길게 들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 소설가의 의도가 숨어있다. 로더릭의 말에 확신을 가졌던 변호인 앤드루 싱클레어처럼 독자도 일단 로더릭의 덤덤한 말을 길게 듣게 만든다. 그의 해명을 충분히 들었을 때쯤 작가는 실험을 시작한다.


<식스센스>나 <디아더스>처럼, 마지막 장면의 반전을 통해, 이야기의 전체를 뒤흔들고, 관객을 혼란에 빠트리는 작품이 있다. 마치 모든 장면은 마지막 한 순간의 반전을 위해 존재했던 것처럼. 반전과 함께 이야기의 모든 장면은 새롭게 정의된다. 두 시간 가까이 본인이 믿고 있던 확신이 무너질 때 느껴지는 쾌감이 반전 영화의 매력이다. 그런데 소설가 그레임 맥레이 버넷은 반전을 중간에 공개해버린다. 장황한 로더릭 맥레이의 해명 바로 뒤에 붙은, 부검 보고서를 통해서 말이다. 하지만 로더릭 맥레이의 말을 그대로 믿어버린-전형적이기 때문에 더 쉽게 믿어버린-나를 포함한 독자들은 그 단서를 찾아내지 못한다. 작가가 반전을 중간에 심어 놓은 이유이자, 소설이 한편의 실험인 까닭이다.


후두골은 완전히 함몰되었고 뼛조각들이 연조직을 깊이 관통하였다. 두발은 상당량의 응혈 때문에 엉켜있었다. 안면 윤곽은 망가지지 않았고 두개골 손상은 단 한 차례 둔기나 연장으로 강하게 가격한 데서 비롯한 것으로 보인다. 성기 부근에서도 열상과 좌상을 다수 관찰했으며 외피는 완전히 파괴되고 치골 좌측은 골절 상태였다. 왼쪽 다리는 골절 상태이며 무릎 외피는 심한 타박상을 입었다. 이는 둔기에 따른 것으로 우리가 확인한 삽과 상처 부위가 일치했다. 부상 이후 보행은 불가능했으리라 사료된다. (플로라 매켄지 (15세) 부검보고서-P.217)


이웃 라클런 브로드를 살해한 의도는 분명한데, 그렇다면 그의 15세 딸과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아기를 살해한 이유는 무엇일까. 범인은 라클런 브로드 살해 과정에서 발생한 우발적인 피해라고 주장한다. 과연 사실일까. 그 뒤에 이어지는 정신과 전문의 브루스 톰슨의 논문 ‘광기의 경계 지대에서’는 본격적으로 확증편향에 빠져있는 독자들을 최면에서 깨우려 한다. 톰슨 박사가 컬두이의 이웃을 취재하며 확인한 내용 중 상당 부분은 로더릭의 증언과 일치한다. 때문에 독자의 확증편향은 한층 더 강해진다. 반면 톰슨 박사가 확인한 새로운 증언, 즉 로더릭의 증언에 교묘히 빠져있던 내용도 하나 둘 공개된다. 하지만 그 정보는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작가의 실험은 성공이다.


자, 다시 그레임 맥레이 버넷이 <블러디 프로젝트>에서 짜 놓은 두뇌 게임의 순서를 확인해보자. 가장 먼저 사건 개요에 관한 이웃 진술이 소개된다. 곧이어 로더릭 맥레이의 해명이 장황하게 이어진다. 그의 해명은 이웃 진술과 대부분 일치한다-로더릭은 그런 짓을 할 친구가 아니에요. 이제 독자들은 로더릭이 세워놓은 플롯 속에서 사고하고 판단한다. 바로 그때 소설가는 총 분량 6페이지 미만의 부검 보고서를 툭 던져놓는다. 결정적 단서지만 독자의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버넷은 다시 톰슨 박사의 새로운 취재를 통해 두 번째 단서를 던져놓는다. 이쯤 되면 확증 편향에서 빠져나온 소수의 독자들은 새롭게 추리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독자는?


그래도 단서를 찾지 못한 독자들을 위해 작가 버넷은 재판 증언을 공개한다. 이웃들의 증언은 앞에서 봤던 내용들의 반복이다. 독자들의 확증편향은 더 강해진다. 혼란의 시작은 톰슨 박사가 자신의 논문 결과를 명시적으로 밝히는 순간이다. 그는 명백하게 맥레이의 자백과 배치되는 새로운 범행 동기를 제시한다. 근거도 탄탄하다. 독자의 확증편향을 대변하는 변호사 싱클레어의 혼란이 시작된다. 하지만 편향의 힘은 만만치 않다. 혼란을 가라앉힌 싱클레어는 본인의 기존 믿음을 확고하게 강화한 채, 톰슨 박사의 증언을 반박한다. 독자들 대부분은 버넷이 짜 놓은 덫에 빠져, 싱클레어에 격하게 감정 이입한다.


자, 다들 저명한 톰슨 박사님의 증언을 경청하셨겠죠? 증인은 로더릭 맥레이의 진짜 목표가 라클런 매켄지가 아니라 그의 따님 플로라라고 단언했습니다. 예, 상관없습니다. 하지만, 이것 하나만큼은 분명하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톰슨 박사의 견해는 억측에 불과합니다. 그 말이 옳다고 믿을 만한 증거가 어디에 있죠? 그렇다면 계획을 실행에 옮긴 직후-그러니까 세 명을 처참하게 살해한 바로 그 순간-로더릭이 범행 동기를 조작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정상인이라면 그렇게 침착하게 행동하는 게 가능할까요? (재판 증언, P.364)


확증편향에 빠진 독자는 싱클레어의 확신에 찬 반박에 더욱 혼란스럽다. 맥레이의 증언도 변화가 없다. 그렇게 소설은 끝나고 만다. 그래서 누구 말이 진실이란 말인가. 버넷이 설계해놓은 실험 상자 안에 남은 건 나 자신의 확증편향이 만들어놓은 찌꺼기뿐이다. 과연 싱클레어의 말대로, 톰슨 박사의 견해는 억측에 불과한 것인가? 이미 해석과 판단을 배제한 건조한 부검 보고서의 문구가 사실 모든 걸 말하고 있었다. 나는 책을 다 읽은 지 두 달이 지나서야, 맥레이의 자백이 만들어낸 확증편향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확증편향에 사로잡혔던 사람이 그 편향에서 빠져나오는 게 이렇게 어렵다. (아직도 모르겠다면 인용한 부검 보고서를 다시 읽어보시길..)

결국 확증 편향에 빠지면 그와 반대되는 단서는 보이지 않는다. 단서가 눈앞에 거대한 크기로 존재한다 하더라도. 그게 인간의 종특이다. 인간의 다양한 편향을 연구하는 학문이 최근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행동경제학이다. 행동경제학을 공부하는 학자들도 확증편향에 빠질 것이다. 인간이라면 그 누구도 확증편향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사실을 그레임 맥레이 버넷은 실험 같은 소설을 통해 증명하고 있다. 그렇다면 오류투성이 인간은 어떻게 해야 할까. 그저 알고 있으면 된다. 소설가가 던진 책략만으로 확증편향에 쉽게 빠지는 게 인간이란 사실을. 너무나 쉽게 편향에 빠질 수 있단 두려움을 갖는 게, 확증편향에 빠지지 않은 첫 번째 방법이다. 본인은 안 빠질 자신이 있다면. <블러디 프로젝트>를 읽어보라.


209534103.jpg 블러디 프로젝트/ 그레임 맥레이 버넷/ 열린책들/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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