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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전하진 Dec 26. 2022

MZ세대의 비전

디스토피아를 기대할 수는 없다.

MZ세대의 비전


  지금으로부터 50년 전쯤에는 서울에도 쥐들이 들끓어 정부가 한 달에 한 번 쥐 잡는 날을 정해 쥐약을 나눠주고 함께 쥐를 잡아야 했다. 쥐는 살찌고 사람은 굶는다며 쥐를 잡아 없애는데 모두가 참여한 것이다. 서울 한복판에서 태어난 필자도 천장 한 구석에 쥐구멍으로 들락거리는 쥐를 보면서 잠이 들어야 했고, 천장에서 시끄럽게 굴면 책이든 뭐든 잡히는 대로 냅다 던져 조용해지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때는 그랬다. 방안에 개미 등 수 많은 벌레들이 우글거렸지만 그냥 그런 줄 알았다.

길에는 개 똥 소똥이 즐비했고 목욕을 최소한 한 달에 한 번 하라는 캠페인을 들었지만 한 달에 한 번 목욕을 한다는 것은 소수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 같은 것이었다.  서울이 그랬으니 그 이후 한참 뒤에야 전기가 들어왔던 지방은 어떠했을까. 이런 척박한 환경을 살아낸 이들에게 꿈이란 그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면 족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있다면 무엇이든 다 감당할 수 있었다. 쥐에게 빼앗기는 쌀을 되찾기 위해 애어른 할 것 없이 쥐를 잡아 쥐꼬리를 전리품으로 학교에 제출해야만 했던 그들에게 감당 못할 일은 없었다. 주말도 없이 하루에 10시간 20시간을 일해도 삶이 나아지기만 한다면 상관없었다. 일 년에 단 하루를 그것도 주말을 끼고 여름휴가를 받아도 좋기만 했다. 지금의 중장년층은 그렇게 씩씩하게 살아 온 것이다. 그리고 그 때에 비하면 꽤 풍족한 삶을 누리게 된 것 또한 사실이다.


   그 즈음 지구 저편에서는 학자, 기업가, 정치인 등 세계적인 지도자들이 모여 인류와 지구의 미래를 연구하는 로마클럽이라는 것이 결성되었는데, 1972년에 ‘성장의 한계’라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인구급증, 급속한 공업화, 식량부족, 환경오염, 자원 고갈 등 다섯 가지 문제로 인해 세계 경제 성장은 100년 이내에 멈출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 놓은 것이다.  쥐와 쌀을 놓고 생존경쟁을 벌어야 했던 우리들에게는 관심 밖의 일이었을지 모르지만 세간이 큰 충격을 주었고 그 이후 몇 번의 개정판을 출간되고 새로운 데이터를 활용한 예측 결과들이 나오고 있다.

올해는 50주년 되는 해라 리뷰기사가 제법 눈에 들어온다. 어찌되었건 이들의 예상은 현실이 되었다. 이제 사회경로를 새롭게 재설정하지 않으면 그들의 예상대로 파국을 맞이할 확률이 매우 높다고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지금까지의 상식을 깨지 못한 채 여전히 어떻게 하든 가속페달을 밟으려고 애쓰고 있다. 과거처럼 경제가 활성화되고 생산이 늘고, 소비가 늘면 탄소배출이 늘고 따라서 기후위기에 직면하는 디스토피아가 앞당겨질 것임을 알면서도 애써 왜면하고 있는 것이다.

전쟁 등의 여파로 탄소배출의 주범이라던 석탄발전까지도 다시 늘고 있다. 지금 당장 죽게 생겼는데 훗날의 디스토피아를 생각할 겨를이 없다고 생각하겠지만 척박한 환경에서도 미래에 대한 꿈을 꾸었기에 지금을 만들었던 것처럼 우리는 새로운 미래를 꿈꿔야한다. 마이카시대를 꿈꾸고 좋은 환경에서의 삶을 꿈꿔왔기 때문에 지금의 양적인 성장을 누릴 수 있었던 것처럼, 당장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도 유토피아를 꿈 꿀 수 있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지금의 MZ세대는 부모세대가 꿈꿨던 유토피아를 오히려 디스토피아로 인식할 확률이 높다. 이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결과적으로 디스토피아를 앞당기는 일이라면 과연 부모세대와 같은 열정이 솟아나겠는가. 거대한 사회통념의 무게에 짓눌려 그것이 디스토피아라고 감히 말도 못하고 무기력해지거나 그저 앞만 쳐다보고 경쟁에 내몰리다 크게 좌절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부모세대가 그리던 유토피아가 시간이 갈수록 디스토피아가 될 수밖에 없다면 과감하게 용도폐기하고 새로운 유토피아를 그려내야 한다. 그래서 내가 지금 하는 일이 새로운 유토피아를 향해 가는 힘찬 발걸음이요 궁극에는 나도 내 아이도 그런 유토피아에 살게 될 거라는 확신을 심어주어야 한다,


    이 창조적 활동이 시급히 이루어지지 않으면 희망이 없다.


    안타깝게도 이 거대한 사회경로의 변화는 한 국가 한 세대에 국한에서는 효과가 없다.  기후위기는 인류공동체가 하나라는 인식으로부터 출발해야 해결책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어찌보면 거의 불가능해 보이는 일이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온 세계가 일시에 마스크를 쓰고 경제를 멈췄던 경험이 있다.  그로 인해 탄소배출량이 처음으로 줄었고 우리는 다시 맑은 공기를 만날 수 있었다.  


    이처럼 기후위기도 우리에게 강제적으로 변화를 요구한다. 공존 과 멸망 이라는 두 개의 선택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우리 모두에게 절망적인 상황이 닥치게 되면 아마도 희망의 대안을 빠르게 전파되지 않을 까 기대해 보는 것이다. 따라서 하루 빨리 인류공동체가 약속할 수 있는 새로운 유토피아의 청사진이 그려진다면 어쩌면 인류공동체는 그것을 빠르게 받아들일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모두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유토피아를 꿈꿔야 한다. 지금의 경제시스템이 디스토피아를 향하고 있다면 새로운 경제시스템을 창조해야 하고, 지금까지의 일을 로봇이 대신하게 된다면 일에 대한 개념부터 다시 정의해야 한다. 기능인을 육성하던 지금의 교육제도를 개인들의 숭고한 가치를 창조하는 자아실현 교육으로 전환하여 타고난 저 마다의 소질을 개발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마이카 시대를 꿈꾸며 미래로 달렸던 부모세대처럼 새로운 유토피아를 향해 MZ세대가 힘차게 달려나갈 수 있을 때 우리들에게 미래가 보장될 것이다. 그래야 기후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유토피아를 향해 전진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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