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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종 Feb 04. 2021

<대학생 기후행동>과 3ㆍ1 운동

3ㆍ1 운동은 청년운동이었다.

여러분은 “3ㆍ1 운동은 청년운동이었다.”라는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보통 3ㆍ1 운동하면 보통 33인 민족대표를 떠올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천도교와 기독교, 불교계에서 명망 있는 지도자급이 이름을 올린 33인 민족대표는 3ㆍ1 독립선언문을 발표하고 그 자리에서 연행되었습니다. 독립선언문을 발표하고 체포되는 것. 그것이 민족대표들이 생각했던 3ㆍ1 운동의 끝이자 전부였습니다.


1918년 중국 상하이에서 결성된 신한 청년당은 1919년 파리 강화 회의에 김규식을 민족대표로 파견합니다. 당시 우드로 윌슨이 주창한 민족자결주의에 따라 조선의 독립을 주장하기 위해서였는데요. 실제로 파리까지 가서 회의에 참석하지는 못하였지만 여기서 영감을 받은 조선의 청년들이 전 세계적으로 일어난 것이 3ㆍ1 운동입니다.


3ㆍ1 운동을 전후하여 상하이로 모인 독립운동가들은 신한 청년당을 중심으로 독립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의하였습니다. 신한 청년당의 핵심 당원들은 1918년 8월 초에 프랑스 조계 안에 독립 임시사무소를 설치했는데, 이것은 뒤이어 4월 19일에 결성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모체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당시 신한 청년당의 핵심당원이었던 김규식은 81년생, 여운형은 86년생이었습니다. 청년 기본법에서는 만 19세에서 34세를 청년으로 정의하지만 통상적으로 만 39세까지를 청년으로 본다고 했을 때 이들은 모두 청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3ㆍ1 운동의 가장 직접적인 도화선이었던 2ㆍ8 독립선언을 주도한 세력은 도쿄의 유학생들로 구성된 조선 청년 독립단이었습니다. 2ㆍ8 독립선언을 주도하고 실질적으로 선언문을 작성했던 이광수는 당시 92년생이었습니다. 또한 3ㆍ1 운동 기미독립선언서 초안을 작성한 최남선은 당시 90년생이었죠. 하지만 이들은 훗날 변절로 인해 지금은 섣불리 대놓고 입에 담기 어려운 인물들로 남게 되었습니다.


3ㆍ1 운동 민족대표 33인은 독립선언서 낭독 직후 모두 체포되었지만 운동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운동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어 일제 강점기에 나타난 최대 규모의 민족운동으로 발전했습니다. 해외에서도 국내의 소식을 듣고 곳곳에서 동참하기에 이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서울 시내에서 대규모 운동으로 퍼질 수 있었던 것은 탑골공원에서 먼저 소리쳤던 우리가 알 수 없는 한 청년 덕분이었습니다. 그리고 태극기를 숨겨 지역으로 내려가 서울 소식을 전하고 3ㆍ1 운동을 거족적인 운동으로 확장시킨 여러 학당의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가장 대표적으로 유관순을 기억합니다.


당시 유관순은 02년생이었습니다. 바로 2021년에 새로 대학교에 입학하게 될 21학번 새내기들의 나이와 같지요. 지금의 02년생은 어떠할까요?  2019년 3월 15일, 대한민국 청소년들이 거리로 뛰쳐나왔습니다. 청소년들은 5월 24일 ‘청소년 기후행동’ 시위, 9월 27일에 이르러서는 급기야 결석 시위를 감행했습니다.


“우리에게 미래가 없는데 왜 미래를 위해 공부해야 하나요?”


2019년 5월, 청소년 기후행동은 서울시교육청에 기후변화 교육을 요구하는 서한을 전달했습니다. 이어 2020년 6월, 서울시 교육청이 '생태 전환교육 중장기 발전계획'(2020-2024)을 발표하게 하는데 주요한 영향을 미칩니다.


그리고 지난 2020년 10월 31일, 코로나 19로 대규모 집회ㆍ시위가 불가능했던 시기, 젊음의 거리 신촌을 형형색색으로 물들인 청년 대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졸업까지 남은 시간 4년, 지구에게 남은 시간 7년”, 미래를 빼앗긴 대학생들이 <대학생 기후행동>이라는 이름으로 스스로 미래를 되찾기 위한 대장정을 시작했습니다.


3ㆍ1 운동의 주역은 고요한 탑골공원의 침묵을 가장 먼저 깬 청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시대 기후위기 운동과 체제 전환 운동의 주역 또한 바로 청(소)년입니다. 전 세계적 기후 운동을 처음 열어낸 것은 다름 아닌 선거권조차 없던 18세 미만 청소년들이었습니다.


우리는 주어진 길을 그대로 걸어가지 않습니다. 우리 스스로 빼앗긴 미래를 되찾기 위해 우리만의 길을 낼 것입니다. 가장 먼저 불의한 침묵을 깨고, 견고해 보이는 체제의 벽을 부수어, 금단의 선을 넘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청년들이 역사적으로 지녔던 고유한 역할입니다.



출처 및 참고)

1) 김하종의 브런치,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데 불이나 끄고 다니라고요?” (2020.12.11.)

    https://brunch.co.kr/@hajongkim20/44

2) 서울시교육청, “제1회 생태 전환교육 포럼” (2020.6.18.)

3) 전범선, 3.1 운동 100주년 기념 바른 미래당 청년 톡톡! “3.1 운동은 청년운동이었다” 국회 토론회(2019.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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