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현지시간) 프랑스 하원은 '기차를 타고 2시간 30분 안에 이동할 수 있는 거리는 비행기 운항을 금지'하고 '공립학교에서는 일주일에 적어도 한번은 채식 메뉴를 제공', '에너지 효율 등급이 낮은 집은 2028년부터 임대를 금지'하는 내용이 담긴 기후대응법('기후와 복원 법안')을 채택했습니다.
바바라 퐁필리 환경부 장관은 표결에 앞서 "기후위기에 대응하려면 프랑스에 뿌리 박힌 습관부터 바꿔야 한다"라며 지지를 호소했다고 하는데요. 110시간이 넘는 토론 끝에 첫번째 고비를 넘은 이 법안에는 일상생활 곳곳에서 지켜야 하는 수칙들이 담겨있다고 일간 르몽드 등이 보도했습니다.
이번 법안이 최종 통과되면 2030년까지 단계적으로 1km당 123g이 넘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신형 자동차 판매를 종료하고 디젤 자동차에 제공하던 세금 혜택도 중단합니다. 의류, 가전제품 등을 생산하는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 배출량에 등급을 매기고 이를 표기하는 제도도 도입할 예정입니다.
물, 공기, 토양을 고의로 오염시켰을 경우 '환경 학살(ecocide)' 혐의로 기소될 수 있고, 유죄 판결을 받으면 복원까지 책임져야 합니다. 하지만 환경단체 일각에서는 "15년 전에나 적합했을 법안이라며 현재기준에서 매우 역부족이다"라는 비판이 나온다고 하는데요. 우리나라 사정과 비교하면 무척이나 부러워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 프랑스 하원에서는 "프랑스는 생물 다양성과 환경보호를 보장하고 기후변화에 맞서 싸운다"라는 문구를 프랑스 헌법 제1조로 삽입하는 내용을 골자로 헌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바있는데요. 오는 5월 중순에는 상원에서 해당 헌법 개정안 논의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헌법 1조 개정안이 환경보호와 기후변화 대응에 대한 국가 차원의 선언적 의미가 강하다면 이번 기후법은 보다 구체적이고 실천적인 성격이 강합니다.
'프랑스 헌법 1조 개정안'과 '기후법' 모두 기후시민의회의 제안을 바탕으로 마련되었습니다. 기후시민의회는 지난 2019년 4월 25일 엠마뉴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의 유류세 인상 등에 대한 반대로 시작해 계급갈등과 경제 불평등 등 전방위적 사회운동으로 번진 '노랑조끼 시위'를 계기로 구성되었습니다.
지난 2019년 10월, 기후시민의회에 참석한 시민의원들의 모습니다. (출처 : 프랑스 기후시민의회 누리집)
"우리는 전문가는 아니지만 사회의 다양성을 대표하는 시민입니다. 우리에게는 사회에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힘이 있습니다."
지난 1월 29일, '프랑스 기후시민회의'에서 발간한 보고서 서문에 담긴 내용인데요. 성별, 나이, 지역 등 인구 대표성을 반영한 무작위 추첨으로 선발한 150명의 시민 의원들은 지난해 5월까지 약 9개월간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1990년대 대비 최소 40%를 줄이는 방법에 대해 논의했습니다. 프랑스 정부는 우리 돈으로 72억원의 예산을 배정하고, 선발된 시민에게 하루에 11만원의 활동비를 지급했고 주말에 일하는 사람이나 아이가 있는 부모에게는 각각 시간당 1만 4천원, 2만 4천원 가량의 추가 수당을 지급한 바있습니다.
프랑스 기후시민의회가 제안한 정책들이 프랑스인들의 아침 식탁에서 대화 소재로 오르내릴 정도로 큰 관심을 끌었으며 지난해 6월, 프랑스 기후행동네트워크에서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국민 10명 중 7명이 기후시민의회의 제안에 대해 들어봤고, 이들 대부분이 시민의회의 활동을 지지한다고 밝혔습니다.
프랑스의 사례를 통해 더는 시민을 기후위기 캠페인의대상으로만 여겨서는 안된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계획 수립부터 대안 제시, 실행점검과 사후점검에 이르기까지 정부와 의회, 시민이 상호 소통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시민들이 직접 적절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관련 정보나 데이터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도 함께 주어져야 합니다. 이로써 정부가 일방적으로 결정하고 시민들에게 따르라고 요구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시민들과 함께 고민하고 실행할 수 있는 '기후위기 대응 정책'을 마련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