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파제의 문법

파도 앞에서 장부를 찢어 들고

by 김하종

금일 뉴스는 명세서처럼 도착한다.

금액은 내일의 시간이 적히고,

보증인은 또다시 청년의 이름이 쓰인다.

동맹 현대화, 방위비 분담금.

숫자 뒤엔 영(零)들이 줄을 서고,

그 뒤엔 영(靈)들이 따라 선다.


관세의 바람이 불면 바다는 곧장 출렁인다.

3천5백억 달러 파도 한 줄기,

방파제는 낮은 둑이 되어

월파를 막지 못한 채 젖는다.

철길까지 물이 차올라

자취방 월세와 대학 등록금,

첫 월급의 발목을 시리게 적신다.



장부는 아직 97년의 자국을 지우지 못했다.

빨간 선은 이자로 몸살을 앓게 하고,

하루치 숨을 떼어 저당잡히는 버릇이

한 세대의 어깨뼈에 눌어붙는다.

한낱 도장은 오늘 찍히지만

빚은 내일의 시간으로 영영 갚아야 한다.



우리는 보증을 서지 않겠다.

서명란엔 커다란 ? 하나,

보증인란엔 굵은 X 하나를 긋는다.

방파제의 문법은 돌과 어깨의 문장,

우리의 노동이 쉼표(,)가 되어 파도를 끊겠다.



청구서 끝에 우리의 조건을 적어 본다.

내일이 더 이상

담보로 묶이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