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무엇보다 '기후변화'가 두렵다.
우리는 평소 환경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을까요? 세계에서 가장 많은 후원과 지지를 받고 있는 시민단체는 ‘그린피스’이고 동아시아에서 가장 큰 시민단체는 한국의 ‘환경운동연합’ 일 정도로 우리는 오랫동안 환경에 아주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오랜 관심이 오히려 우리에게 안일함을 심어주고 있지는 않았나 생각합니다. 어려서부터 숱한 환경단체의 활동을 보고 있었다면 언젠가는 환경문제는 해결될 수 있는 문제라고 쉽게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환경문제는 소수 환경운동가가 도맡아 해결하는 문제라는 인식을 강화했습니다. 그 결과, 기존 환경운동은 일반 시민들의 후원과 지지는 많았지만 실제로 적극적인 행동을 이끌어내는 데까지는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환경이나 기후 문제는 많은 관심에 비해 실제 일상을 살아가는 데 있어 우선순위에서 별로 높은 점수를 받지 못합니다. 먹고사는 문제는 당장 급하고 필요하다고 느끼지만 기후 문제는 그에 비해서 눈 앞에 직접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해결 과정에 있어서도 그 효과가 바로 드러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기후변화 이외에도 더 크고 중요한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닌 것 같습니다.
퓨 리서치 센터는 매년 감염병 확산, 기후변화, 테러, 해외 사이버 공격, 핵무기 확산, 세계 경제 상태, 빈곤, 국가나 민족 간 오랜 갈등, 대규모 이주 등 9개 항목에 대해 각국 국민이 얼마나 큰 위협이라고 생각하는지 추적 조사를 하고 있습니다. 올해도 역시 14개국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했고 8개국이 기후변화, 4개국이 감염병 확산, 2개국이 해외 사이버 공격을 최대 위협으로 꼽았습니다.
퓨 리서치 센터가 작성한 2020년 보고서 <팬데믹에도 불구하고 많은 유럽인들은 여전히 국가의 가장 큰 위협을 기후변화라고 본다.>에 따르면 한국은 14개국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89%)인 열명 중 약 아홉 명으로 감염병 확산이 국가에 중대한 위협이라고 생각한다고 응답하였습니다. 이에 비해 프랑스, 이탈리아, 스웨덴 등은 코로나 19로 큰 인명피해가 발생했지만 역대 가장 높은 비율로 기후변화에 대한 우려를 드러냈습니다. 더 주목해야 할 점은 따로 있습니다. 한국은 감염병 확산 말고도 해외 사이버 공격(83%), 글로벌 경기(83%), 국가나 민족 간 갈등(71%), 대규모 난민 이주(52%)에 대한 우려 정도도 14개국 중 가장 높았습니다.
왜 이토록 우리나라 사람들은 걱정하는 문제가 이토록 많은 걸까요? 그 문제의 원인을 한반도 분단체제와 급격히 성장한 자본주의 체제에서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70여 년째 아직도 한국전쟁은 계속 중입니다. 평소에는 휴전상태라는 걸 느끼지 못할 정도로 평온하게 사는 듯 보이지만 핵 실험, 미사일 실험 등 실제 상황만 발생하면 극도로 불안해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항구적인 한반도 평화체제가 확보되지 않는 한 이 문제는 해결하기 어려워 보입니다.
대한민국은 70-80년대 급격한 경제성장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뤘습니다. 하지만 1997년 IMF라는 국가 경제위기 앞에 속절없이 무너지는 모습을 두 눈 뜨고 봐야만 했습니다. 경제 규모 10위권을 코앞에 둔 대한민국은 아직도 그 트라우마가 지워지지 않은 듯 보입니다. 평소에는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며 자부심을 갖지만 2008년 금융위기나 2020년 코로나 19로 인한 경제 위기 등 경기가 조금만 안 좋으면 나라가 망할 것처럼 떠들썩합니다. 하지만 이 문제도 자본주의 체제가 이대로 지속되는 한 해결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모두가 지금 불안하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막연하게 불안하다고 느끼면서도 그 불안의 원인이 뭔지 정확하게 잘 몰라요. 그 불안을 돈으로 어떻게든 방어할 수 있을 거라고 믿어서 돈에 올인하거든요. 그럼에도 불안이 사라지지 않고 더 불안해지죠. 또 사회적 차원에서 보면 경제성장에만 계속 관심들이 있지, 평등과 화목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대해서는 주목을 거의 못하고 있어요.”
– 심리학자 김태형(심리연구소 ‘함께’ 소장)-
우리는 현실을 제대로 직시해야 합니다. 기후위기가 가져올 변화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기후위기에 대한 대처 없이 평화도 경제도 그 무엇도 챙기기 어려울 겁니다. 기후위기는 사소한 불편 정도로 그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후위기는 핵전쟁과 맞먹는 규모로 인류를 위협합니다. 생활양식, 미래에 대한 기대, 정체성 등 모든 수준에서의 위협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후위기를 받아들이지 않는 이유는 기후위기가 유발하는 불안과 그것이 요구하는 근본적인 변화를 피하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기후위기는 절대 우리가 대처하지 못할 문제가 아닙니다. 이미 기후위기는 그 해결책마저 준비되어 있을 뿐 아니라 우리에게는 집단적 행동에 나설 수 있는 강력한 추진력까지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기후행동’에 나섬으로써 경제적 이익과는 차원이 다른 보상을 얻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우리가 지금껏 고질적인 문제라고 여겨왔던 분단 적폐와 자본주의의 폐해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던져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왜냐하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일은 전 세계의 시민들이 하나로 뭉쳐야만 가능한 일이며 모두가 하나같이 지금까지 유지해 왔던 일상의 규모를 축소하거나 포기해야만 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