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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하종 Dec 27. 2020

일주일에 한 번  
완전 채식을 하는 이유

우당탕탕 금요비건 실천기

 기후변화 말고 체제 변화를 입이 마르도록 얘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정말 개인적인 실천은 아무런 의미도 없는 걸까요?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고 텀블러를 사용하는 정도는 기후위기를 막는데 유의미한 도움을 주지 못합니다. 그렇다면 정말 아무런 쓸모도 없는 행위일까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텀블러 사용이 기후위기 해결에 직접적으로 도움을 주지는 못하더라도 우리는 텀블러를 사용하고 배달음식을 덜 시켜 먹으면서 가장 중요한 것을 얻을 수 있습니다. 바로 ‘감수성’입니다. 우리는 각자가 일상에서 할 수 있는 개인의 사소한 실천을 통해서 가장 가치로운 감수성을 키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기후위기를 체제 변화를 통해 막아 내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 예민해져야 합니다. 매일 편의점에서 사 마시는 플라스틱 병 음료수를 보면서도 바다로 흘러가 분해되는 미세 플라스틱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합니다. 사무실에 출근해 무의식적으로 종이컵 하나를 빼어 들고 달달한 믹스커피 한 잔을 타며 아침잠을 깨울 때도 지구 반대편에서 베어지는 수많은 나무들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주 사소하고 큰 도움도 되는 않던 행동들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람 아닌 것 그리고 사람과 지구를 잇는 징검다리가 되어 줄 것입니다. 단 한 번도 산소 없이 살아본 적 없으면서 미세먼지 광풍이 불기 전까지는 그 소중함을 몰랐습니다. 박쥐는 지구라는 공간에서 함께 살고 있던 동물이었지만 평소에는 마치 책 속에서만 볼 수 있던 전설 속 동물같이 여겼습니다. 하지만 사스, 메르스, 코로나 19까지 최근 인간을 위협한 모든 인수공통 전염병은 박쥐를 1차 숙주로 삼고 있었습니다.


 지구 고온 현상으로 인해 하루가 멀다 하고 북극의 빙하가 녹고 있습니다. 영원히 녹지 않을 것 같던 영구동토층도 함께 녹아내리고 있습니다. 아마도 다 녹고 나면 인간은 그 소중함을 뼈저리게 깨닫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때 가서 깨닫는다고 해도 돌이킬 방법은 없습니다. 지구가 완전히 변하기 전에 우리 인간이 먼저 변해야 합니다.


 그래서 맛있는 돈까스를 ‘귀여운 돼지 친구’로 바라보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동물권 이야기를 빼고서 라도 공장식 축산업 현장에서 뿜어내는 온실가스 배출량은 전 세계의 교통수단이 배출하는 온실가스보다 많습니다. 차라리 텀블러를 들고 다니는 것보다는 고기를 덜 먹는 게 더 도움이 된다던 기후 과학자 조천호 박사님의 YouTube 영상이 큰 인상에 남았었나 봅니다. 처음에는 기후위기 동가로서 운동의 정당성을 갖기 위해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점차 시간이 지날수록 고작 일주일에 하루 하는 작은 실천으로도 사람이 변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평생을 초육식주의자로 살았던 20대 시스젠더 헤테로 남성에게 비건(완전 채식주의자)을 선택한다는 건 한국에서 참 힘든 일이었습니다. 금요일 비건 선언을 하고 고작 단 하루 만에 ‘남자는 고기를 먹어야 힘을 쓴다’는 명제가 거진 사실인양 받아들여지는 한국사회에서, 채식을 하는 딸에게 소고기집에 데려가 굳이 집게와 가위를 쥐여주는 한국사회에서 비건을 지향하던 사람들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새삼 깨달았습니다.


 처음에는 ‘일주일에 하루만 완전 채식을 한다고 뭐가 크게 바뀌겠어?’라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그 오만했던 생각은 단 하루 만에 깨졌습니다. 하늘의 장난질인지 비건 선언을 한 바로 그 주 금요일에는 1년 만에 보는 대학 동기들과 바비큐 파티가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당장 큰일이 났습니다. 그토록 좋아했던 삼겹살과 소주를 눈앞에 두고 버섯과 마늘만 주워 먹어야 하는 상황이 막상 닥치니 ‘일주일에 하루 채식’은 지금까지 살아왔던 생활방식을 완전히 뒤엎어야 하는 일이었습니다.


 단 하루의 소중함을 깨닫게 해 준 이는 다름 아닌 완전 채식을 하던 비건 동지의 한마디였습니다. 솔직히 ‘금요 비건’을 하고 있다는 말 자체를 채식주의자들 앞에서 하기에 부끄러워했습니다. 그들과 비교해 너무나 작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금요일에 완전 채식을 하고 있다는 말을 듣자마자 너무나 반가워했습니다. ‘요일 비건’을 하는 사람이 6명만 더 있으면 한 사람 역할을 할 수 있겠다는 말을 해주던 그의 해맑은 얼굴은 아직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바꾸는 일은 정말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아주 작은 행동으로도 변하게 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사람의 마음입니다. 우리는 아주 작은 실천으로도 나와 주변의 사람들을 바꿔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조금씩 감수성을 키우면서 우리는 점점 예민하게 변합니다.


 한국사회에서 채식을 한다고 말하면 왜 이렇게 예민하냐는 둥 조롱 비슷한 말을 듣곤 합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예민한 사람들이 세상을 바꿔왔다는 사실을 잊지 않아야 합니다. 강원도 모 초등학교에서는 학교 급식에서 채식 선택 옵션을 도입했습니다. 마초들의 성지라고 불리던 대한민국 군대에서조차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식단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세상은 아직 부족하고 더디지만 이렇게 조금씩 나아지고 있습니다. 열성적으로 헌신했던 환경단체 활동가와 사회 운동가들과 함께 한편에는 각자의 자리에서 소리 소문 없이 작은 실천을 해왔던 조금 예민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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