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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준 Apr 15. 2022

버티지 않아도 되었다.

마음만 스투키처럼 뾰족해졌다.



2021년 03월 31일, 인터넷에서 첫 반려 식물로 스투키를 구매했다. 마음이 스투키처럼 뾰족한 시기였다.


열심히 하고 싶은데, 열심히 하는  무서웠다.  하지 못할까 , 결과가 쓰레기 같을까 .


어른은 되고 싶은데, 나이가 드는  무서웠다. 지금과 그대로일까 , 하나도 나아진  없을까 .


이런  속마음은 누구에게도 들키지 않게  속에 숨겼다. 내가 1cm 정도의 성취만이라도 이루면, 그때는 내가 이런 마음이었다고, 누군가에게는 꼭 털어놔야지, 그런 생각을 했. 그렇게 성장하기를 기다리며  버텼다.


1년을 넘게 매일 아침 햇빛이  드는 창가에 스투키를 내놓았다. 위로 쑥쑥 뻗어갈 스투키를 기대하며 이름도 '쑥쑥이' 지어줬다. 그런데 쑥쑥이 죽었다. 노랗게 썩어서 악취를 풍겼고,  주변으로는 파리가 꼬였다.


쑥쑥이는  1cm 자라지 않고 죽었다. 나도 다를  없었다. 버티고 버텼지만 성장은커녕, 자꾸만 속만 곪아갔다. 그런  주변에는 파리 같은 인간들이  많이 꼬였다. 내게서 풍기는 외로움이란 지독한 악취를 맡은 거지.


 근처 꽃집에 쑥쑥이를 데려갔다. 물을 너무 많이 줘서 썩어버렸다고 했다. 때로는 열심히의 방향이 잘못됐을 때가 있는 거지. 돌이키기엔 너무  길을 와버렸다. 때로는 통째로 갈아엎는  나을 때가 있다.


쑥쑥이는 소생 불가 판정을 받았다. 꽃집 사장님은 무심히 쑥쑥이를 통째로 뽑아주셨다. 그런데 뿌리 쪽이 이상했다. 손바닥의 반도  되는 작은 플라스틱 포트에 뿌리가 갇혀 있었다.


알고 보니 스투키는 예쁘게 원형의 모양을 잡아 판매하기 위해 인위적으로 잘라져 심겨있었던 거였다. 그래서 아무리 정성을 들여도 단 1cm도 자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어쩌면  뿌리도 남들에게 잘난 모습만 보이기 위해 갇혀 던 건 아닐까. 못난 모습을 견디지 못해 하면 조금도 성장할 수가 없는 건데.


상황이 내 통제를 벗어난 날이었다. 차를 운전하던 중 그냥 그대로 어디 처박아 죽어버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밤 친구들과의 영상통화에서 눈물을 쏟아내며 내 마음을 솔직히 털어놓았다.


친구들은 내 못난 모습을 못나게 보지 않았다. 그냥 같이 울어줬다. 바람이 불면 같이 흔들리는 잎사귀들처럼.


막상 못난 모습을 꺼내놓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었다. 저마다 인생의 세찬 바람이 불 때가 있는 거였다. 친구들은 그럴 때 자신들이 어떻게 나뭇가지를 꽉 붙들고 있었는지, 각자만의 방법을 내게 알려줬다. 그 덕에 나도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을 수 있었다.


스투키가 사라진 화분에 새로운 반려 식물을 심었다. 꽃집 사장님께 쑥쑥  자라는 아이로 달라고 했다. 이번엔 뿌리를 가두는 포트 따위는 없었다. 정해진 모양은  이상 원하지 않으니까.


그렇게 데려온 반려 식물이 '홍콩야자'이다. 한 달도 안 된 지금, 벌써 무럭무럭 자라났다. 자기만의 모양으로, 자유롭게.


매일 아침 햇빛과 바람을 쐬어주니 싱싱하게 자라나고 있다. 아마 곧 있으면 큰 화분으로 분갈이를 해줘야 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함께   세상으로 나아가야지.

나만의 모양으로, 자유롭게.


그렇게 싱싱하게 자라나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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