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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준 Apr 20. 2022

예전의 너는 안 그랬는데.

어떤 최악의 시기에도, 나만은 내 안의 빛을 바라볼 것이다.


불안증을 겪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

너 지금 또 자존감 바닥 치는 소리 하고 있어.'


'난 한 번도 그런 적 없는데?

뭐가 불안한 건데?'


'말도 안 돼.'


'예전의 너는 안 그랬는데.'


맞아, 예전의 나는 안 그랬는데.

 말이  맞아.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어디 갔어, 버나뎃'이라는 영화를 보는데,

버나뎃에게 '외계인' 되어버린  같다고

 소리를 치는데,

그게  나한테 소리를 치는  같아서,

그래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도 그런 말들을 들어봤다.


'너는 그때가 리즈였는데 왜 이렇게 됐어?'

'예전의 너는 밝았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어?'


내가 내가 아닌 것 같다는 그런 말들.


사소한 불안감에 밥도  먹고,

가만히 앉아있지도 못하고,

밤에는   숨을  자는 내가, 제일  알고 있다.

내가 요즘 이상하다는 .

 

근데 그냥 누군가는 아니라고 말해줬으면 겠는.


버나뎃의 딸처럼, 테일러 dress 가사처럼,

 최악의 시기에도 나의 빛을 봐주고 나를 믿어주는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내가   속에 있는 말을 꺼내면,


'나 요즘 불안해.

가슴이 조여와서 온몸이 긴장되고,

혀마저 뻣뻣해지고,

 몸을 의지대로  움직일  같은 기분이 들어.

그래서 너무 무서워. 점점 우울해지는 것 같아.

나아지지 않고 이대로 우울한 사람이 될까 ,

그게 너무 두려워.'


그러면 이렇게 대답해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불안하고 우울해도 괜찮아.

넌 여전히 예쁘고 사랑스러워.

여전히 웃음이 귀엽고,

작은 것에도 기뻐하는 밝은 아이야.

너는 스스로를 그렇게 보지 못한대도,

 눈에는 그게 보여.  최고야.

걱정하지 마.

언젠가 너도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는 날이 올 거야.


영화의 마지막에 버나뎃은 말한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약속할게. 큰 약속이야."


"I will move forward."

"난 앞으로 나아갈 거야."


나도 스스로에게 약속의 말을 해본다.


"모두가 너를 외계인 취급해도 주저앉지 겠다고 약속할게."


"I will move forward."

"나 꼭 앞으로 나아갈게."


2020년 10월 15일.




이런 일기를 썼는지도 잊고 있었다.


내가 나와의 약속을 지켜오고 있었다는 걸,

1년 하고도 6개월이 지난 지금 깨달았다.


제자리걸음이라고 생각했지만,

작은 한 걸음씩을 내딛고 있었다.


한 번의 산책, 한 끼의 건강한 식사,

한 회기의 상담, 한 권의 책,

 편의 ,  획의 ,  번의 명상.


이 모든 작은 걸음들로 난 앞으로 나아온 것이다.


인복이 없었다고 생각했던 내게는 사실,

행운 같은 상담 선생님과 따뜻한 심성의 친구들,

미우나 고우나 늘 내 편인 내 동생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게는 내가 있었다.


나를 주저앉히는 일이 생길지라도,

내게 위로를 건네고, 내 손을 잡아주는 내가 있었다.


버나뎃은 자신의 손을 잡고 스스로를 일으켜 지구의 남쪽 끝까지 갔다.

자신의  발로, 자신의  손으로 남극의 기지를 지으러.


1년 후의, 10년 후의 나는 어디까지 가 있을까.

어떤 날의 일기장을 펼쳐보며, 어떤 말을 내게 건네줄까.


확실한 건 예전의 나도, 지금의 나도, 미래의 나도,

어떤 최악의 시기가 또다시 찾아오더라도, 나만은 내 안의 빛을 봐줄 거라는 것.

하나만은  글에 새기고, 오늘도 나의 기지를 지으러 떠나본다.


22년 04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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