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최악의 시기에도, 나만은 내 안의 빛을 바라볼 것이다.
불안증을 겪으며 주변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많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지 마.
너 지금 또 자존감 바닥 치는 소리 하고 있어.'
'난 한 번도 그런 적 없는데?
뭐가 불안한 건데?'
'말도 안 돼.'
'예전의 너는 안 그랬는데.'
맞아, 예전의 나는 안 그랬는데.
네 말이 다 맞아.
나 왜 이렇게 되어버린 걸까.
'어디 갔어, 버나뎃'이라는 영화를 보는데,
버나뎃에게 '외계인'이 되어버린 것 같다고
막 소리를 치는데,
그게 꼭 나한테 소리를 치는 것 같아서,
그래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나도 그런 말들을 들어봤다.
'너는 그때가 리즈였는데 왜 이렇게 됐어?'
'예전의 너는 밝았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어?'
내가 내가 아닌 것 같다는 그런 말들.
사소한 불안감에 밥도 못 먹고,
가만히 앉아있지도 못하고,
밤에는 잠 한 숨을 못 자는 내가, 제일 잘 알고 있다.
내가 요즘 이상하다는 건.
근데 그냥 누군가는 아니라고 말해줬으면 좋겠는데.
버나뎃의 딸처럼, 테일러 dress 가사처럼,
내 최악의 시기에도 나의 빛을 봐주고 나를 믿어주는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내가 내 맘 속에 있는 말을 꺼내면,
'나 요즘 불안해.
가슴이 조여와서 온몸이 긴장되고,
혀마저 뻣뻣해지고,
내 몸을 의지대로 못 움직일 것 같은 기분이 들어.
그래서 너무 무서워. 점점 우울해지는 것 같아.
나아지지 않고 이대로 우울한 사람이 될까 봐,
그게 너무 두려워.'
그러면 이렇게 대답해 줄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는데.
불안하고 우울해도 괜찮아.
넌 여전히 예쁘고 사랑스러워.
여전히 웃음이 귀엽고,
작은 것에도 기뻐하는 밝은 아이야.
너는 스스로를 그렇게 보지 못한대도,
내 눈에는 그게 보여. 넌 최고야.
걱정하지 마.
언젠가 너도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하는 날이 올 거야.
영화의 마지막에 버나뎃은 말한다.
"하지만 이거 하나는 약속할게. 큰 약속이야."
"I will move forward."
"난 앞으로 나아갈 거야."
나도 스스로에게 약속의 말을 해본다.
"모두가 너를 외계인 취급해도 주저앉지 않겠다고 약속할게."
"I will move forward."
"나 꼭 앞으로 나아갈게."
2020년 10월 15일.
이런 일기를 썼는지도 잊고 있었다.
내가 나와의 약속을 지켜오고 있었다는 걸,
1년 하고도 6개월이 지난 지금 깨달았다.
제자리걸음이라고 생각했지만,
작은 한 걸음씩을 내딛고 있었다.
한 번의 산책, 한 끼의 건강한 식사,
한 회기의 상담, 한 권의 책,
한 편의 글, 한 획의 선, 한 번의 명상.
이 모든 작은 걸음들로 난 앞으로 나아온 것이다.
인복이 없었다고 생각했던 내게는 사실,
행운 같은 상담 선생님과 따뜻한 심성의 친구들,
미우나 고우나 늘 내 편인 내 동생이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게는 내가 있었다.
나를 주저앉히는 일이 생길지라도,
내게 위로를 건네고, 내 손을 잡아주는 내가 있었다.
버나뎃은 자신의 손을 잡고 스스로를 일으켜 지구의 남쪽 끝까지 갔다.
자신의 두 발로, 자신의 두 손으로 남극의 기지를 지으러.
1년 후의, 10년 후의 나는 어디까지 가 있을까.
어떤 날의 일기장을 펼쳐보며, 어떤 말을 내게 건네줄까.
확실한 건 예전의 나도, 지금의 나도, 미래의 나도,
어떤 최악의 시기가 또다시 찾아오더라도, 나만은 내 안의 빛을 봐줄 거라는 것.
그거 하나만은 이 글에 새기고, 오늘도 나의 기지를 지으러 떠나본다.
22년 04월 20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