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진상 손님, 빨리 나가게 하는 방법.
카페에서 가장 간단하면서도 간단하지 않은 메뉴는 "아아(아이스 아메리카노)"이다.
커피만 내리고 물만 부으면 끝일 것 같은 아아의 세계는 은근히 그렇지가 않다. 사람마다 느끼는 커피의 농도 차이가 심해서, 샷 개수, 물의 양, 또는 얼음의 양에 대한 요구사항이 많은 편이다.
오늘 오신 손님은 커피를 좀 진하게 드시고 싶었던 것 같다.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이요. 물은 조금만 주세요."
'조, 조금만?!'
'조금만'이 얼마만큼의 물의 양을 의미하는지 잠깐 고민했지만, 나는야 프로 알바생. "물은 반만 드릴까요?!"하고 얼른 다시 여쭤본다.
그렇게 해달라 하셔서 얼른 커피 그람수를 측정하고, 정확히 28초로 떨어지는 완벽한 샷을 뽑아냈다.
물의 양은 반만 하고~ 얼음을 넣고~ 뚜껑 닫고~ 커피 홀더 끼우고~ 빨대까지 주둥이 비닐만 남기고 잘 꽂아 드렸는데! 그런데..!
"아유, 얼음이 너무 많잖아요! 물을 적게 달라했는데 얼음을 많이 주시면 어떡해요!!"
생각하신 얼음의 양이 아니었는지 대뜸 짜증을 내시는 손님이셨다. 갑작스런 짜증 테러에 3초 정도 당황했지만, 얼른 머리를 굴려 손님이 원하는 바를 파악해본다.
"(마스크 안은 정색 중이지만 눈으로는 미소를 지으며 친절한 목소리로)그러면 얼음을 조금 빼드릴까요?"
목적을 달성한 손님의 목소리가 그제야 누그러진다. 집게를 들고 와 얼음을 빼는 내 등 뒤로 투덜투덜하는 소리는 그치지 않았지만, 그래도 친히 원하는 얼음 양에서 스톱을 외쳐주시는 손님이었다.
뚜껑도 새 뚜껑으로 바꿔서 잘 닫아 드리자, 손님은 그제야 약간의 머쓱한 미소와 함께 만족스러움을 표하셨다. 다음에는 물의 양 + 얼음 양까지 미리 물어보는 게 좋겠다는, 작은 깨달음을 내게 선사해 주시고는, 유유히 카페를 나가주셨다.
타인은 내가 아니기 때문에 자신의 의도를 세세히 파악할 수 없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래서 자신의 의도와는 다른 일이 벌어지면 막 짜증을 낸다.
짜증을 내는 것보다는 원하는 것을 명확히 말하는 게, 더 빠르고 더 현명한 방법이라고, 짜증을 내는 사람을 붙잡고 일일이 일러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똥은 무서워서 피하는 게 아니라 더러워서 피해야 한다. 그 사람의 의도를 파악할 수 있는 질문을 내가 대신해주고, 얼른 그 상황을 벗어나는 게 내 정신건강에 좋다.
이처럼 일을 하다 보면 어쩔 수 없이 갑을관계가 생겨나고, 누군가에게 무례한 갑질을 당하게 되는 경우도 생긴다. 그렇다고 그 사람 때문에 내 처지를 비관하고, 내 기분을 상하게 할 필요는 없다.
나는 오직 내가 하는 일로만 이루어진 그런 단순한 사람이 아니다. 카페 알바생이라는 직업은 나를 이루는 아주 작은 부분이고, 나는 그 밖의 다양한 모습으로 이루어진 사람이다.
그 사람이 카페 알바생이라는 나의 '직업'을 무시했다고 해서, '나'를 무시했다는 느낌은 받지 않아도 된다. 그 사람은 '나'의 가치를 모른다.
반대로 나는 그 사람의 직업은 모르지만, 그 사람의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는 알겠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온화한 말투로 표현할 줄 모르는, 타인에게 날이 선 태도로 일관하는, 나쁜 인격의 소유자.
그래서 나는 감히 그 사람을 '진상'이라고 표현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