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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자아성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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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준 Feb 27. 2022

그저 잠들다가 죽어버렸으면

나도 모르는 사이 흘러나오는 노래처럼, 그렇게 어느새 변화는 찾아온다.


작고 조용한 카페, 왼쪽 귀퉁이의 아이스크림 기계는

'웅-'하고 큰 소리를 내며 덜덜 떨어댄다.

시끄러워 죽겠다 싶을 때 소리가 그친다.

그러다 끝난 줄 알고 방심하고 있으면 또다시 '웅-'.


입에서 '아, 지겹다.'라는 말이 나왔다.

정말 지겹다. 지겹고 지겨워.

벽에 뒤통수를 기대고는 쭈그려 앉아

멍하니 기계 소리를 듣는다.

그렇게 한참을 '멍-'.

입에서 잊고 있던 노랫말이 흘러나온다.


'편의점에선 냉장고 흐르는 소리.

창백한 조명 아래, 먹을 것들 쓸어 담고.

그저 잠들다가 죽어버렸으면 하고 바라는 거,

말고는 바라는 거 없어.'


_김사월, 『너무 많은 연애 中』



좁디좁은 방 한 칸, 틈만 나면 나오던 바퀴벌레들.

작은 침대에 서너 시간 겨우 잠을 붙이던 시절이었다.


너무 많이 우울했던 나의 밤들에

묘하고, 고요하게 큰 위로를 들려줬던 노래였다.


'내가 원하는 건 사랑뿐이었는데, 누군갈 목 조르게 해.'


마지막 소절까지 노래 한 곡을

끝까지 다 부르고 나서야 드는 생각.


어쩌면 그 시절 내가 원한 건, 누군가의 사랑이 아니라

나 자신의 사랑이었을 수도 있겠다,


어쩌면 그 시절 내 목을 조르고 있었던 건,

나 자신이었을 수도 있겠다.


'웅-'하고 죽을 만큼 힘들었던 시기가 찾아오다가도,

또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는 법이잖아.


지겨운 일상의 반복인 것만 같지만

나도 모르는 사이 흘러나오는 노래처럼,

어느새 변화는 찾아오는 법이잖아.


그때의 나는 스스로를 눌러 죽였지만,

지금의 나는 스스로를 잡아 일으키니까.


엉덩이를 툭툭, 어깨 한번 토닥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오후가 되어가니 작은 카페 창문으로는 햇살이 가득 찬다.


손님들이 들어차기 시작하겠구나.

정성어린 커피를 내려 드려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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