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속에는 시도 때도 없이 '침입 경보음'이 울렸다.
'아, 난 이거는 싫어.'하면서
마음속에 선을 하나 그었다.
'이것도 싫어.'
또 하나의 선이 생긴다.
'저것도 싫어.'
또 하나의 선.
'싫어.', '싫어.' 할 때마다 그어지는,
수많은 내 마음속의 선들.
끝도 없이 늘어난 선들은 벌집 모양이 되어,
나를 좁은 공간에 가두어 버리는 꼴이 됐다.
선과 선의 비좁은 공간 틈에서 늘 경계태세를 세우고,
조금만 건드려져도 벌떼가 '윙' 하듯 성질을 부렸다.
선이 많아질수록 누군가 선을 넘는 일은 늘어갔고,
내 마음속에는 시도 때도 없이 '침입 경보음'이 울렸다.
그러니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게
쉽게 피곤해지고 지겨워졌다.
나이가 들수록 어른이 되기는커녕,
벌집 구멍만큼 좁디좁은 인간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영상의 썸네일을 보면서 '특단의 조치'라면,
1. 아이의 부모님께 한소리를 했거나
2. 경찰에 신고를 했거나
둘 중 하나일 거라 예상했다.
하지만 집주인이 한 '특단의 조치'는
날 벙찌게 만들었다.
그의 차고 바닥에 아예 자전거 트랙을 손수 그린 것이다.
아이가 보안 카메라의 경보 범위에 들지 않으면서도
그의 차고에서 맘껏 자전거를 탈 수 있도록.
심지어 그는 비가 와서 트랙이 지워지면
매번 다시 새로운 트랙을 만들어 그려줬다.
벌에 쏘인 것만 같이 얼얼한 기분이 들면서,
'어른'이라는 건 저런 사람을 말하는 거구나 느꼈다.
진정한 '어른'이 되는 일은,
선을 긋는 일이 아니라 선을 지우는 일이라는걸.
내 마음속에도 어떤 트랙이 생긴 기분이 들었다.
화내고, 짜증 내고, 불평불만을 늘어놓고, 남탓만 하던
지난 트랙은 빗물에 흘려 씻겨 보내고,
감정을 다스리고,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을 적극적으로 찾는,
새로운 트랙을 마음에 그려 넣었다.
그렇게 마음속의 선들을 하나씩, 하나씩 지워나가다 보면
내 마음에도 넓은 생각이 들어올 자리가 생기지 않을까.
회색빛 차고를 무지개색 꿈동산으로 만들어버리는,
그의 '특단의 조치' 같은 그런 반짝이는 생각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