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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웃을 수 없는 면죄부

그런 류의 사람들.

by HJH

착한 일은 나쁜 일을 해도 된다는 적립금이나 포인트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이제 그런 사람 앞에서 웃음을 짓기 힘들다.

뭔가 같이 하자고 하기도 힘들다.

자신이 이러이러한 일을 해 왔으니, 왜 나에게 나쁘게 하면서,

지난 본인 커리어에 대한 과실은 나에게 따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나는 줄게 없다. 함께 일하는 것이 아니면, 동행도 아니다.


그런 류의 사람 1000명이 있는 것보다 혼자 일하는 것이 낫고,

정말 같이 일해보면, 오히려 - 가 된다.

같이 망하는 것 보다야 빨리 일깨워 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한 결과는 그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함께 해보자며 최선을 다 한 경우,

분명 다시 만날 계기가 된다.


그리고 언젠가는 그런 류의 사람들도 마치 치열하게 산 것처럼

코스프레를 하며, 다시 만날 날이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지쳤다. 뭔가를 하려고 하면 일을 하기보다

아직 덜 된 밥조차도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라 뺏고자

약점을 찾는 사람들.


수십 년 라포 쌓은 관계에 어디서 주워들은 내용 가지고

약점이랍시고 그걸 이야기하면 그 관계가 자신에게

돌아올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


나는 참으로 당황스럽고 혐오스럽다.


이것조차도 좋게 바라보면, 반면교사가 된다고 하자. 그래서 나는 나와 가까운 사람에게

더 이상 뭘 바랄 게 없다. 그냥 존재 자체만으로 고맙다.


그만큼, 같이 오래 있어왔던 사람들과의 세월이 있다.


어찌 보면 사람에 대한 기대를 더 이상 하지 말라는 뜻은 아니라. 나이를 먹어 더 이상 10년, 20년, 또 초등학교 친구처럼 30년 간의 관계를 쌓을 기회가 나에게 없기 때문에 적당한 선에서의 비즈니스 관계를 만들라는 이야기 일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 관계가 다시 30년이 지나면 70살 80살이나 되어, 나름 옳았다는 결론을 가지고 죽으라는 신의 뜻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이재명 세상이라도 살기는 더 힘들어진다. 세상은 좋아지지만 내가 살기는 왜 더 힘들어지는지. 관계 속에서 그것을 찾아봤지만. 어찌 보면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또 다른 방법으로 다시 시도해 보라는 뜻일 수도, 혹은 시스템만 만들어온 나에게 사회 시스템을 재 정의 해보라는 뜻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나는 옛사람들을 다시 만나며. 그리고 기술을 다 만들었음에도 성공하지 못하고 성공했음에도 나스닥 상장 기업에게 수 없이 소송을 당해 힘든 커리어 끝판왕 지인을 보며. 정말 어려운 시기에서도 긍정을 유지하는 것은 각 분야에서 정점을 찍어보고, 또 여러 번 찍어보고, 주관적 객관적으로 인정을 받아 본 사람만이 겨우 멘탈을 잡고 이성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았다. 보통의 인간이 버틸 수 있는 압박은 아니다. 혹은, 그런 적은 없지만. 신 혹은 마음속에 큰 존재나 뜻을 품고 사는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열심히 웃을 수 있었던 지난날이 고맙다. 마음은 아프지만, 가슴 아픈 이야기가 많지만 웃음을 주는 친구들과 지인들 덕에 폐허가 된 마음 위에 뭔가를 쌓고 또 한 발짝 나아가며 모두가 혁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제품을 만들 수 있어 좋았다. 이제는 예전보다 많이 늙어. 기능이 많이 떨어져서. 그래도 내가 해야 할 일이 있기에 노하우가 있기에 또 앞으로 나아가 본다. 힘들고, 마음 아프고, 또 치열하게 살아야 할 미래가 두렵다기보다.


늘 그래왔기에 또 담담하게 맞이할 수 있는 시련이 아닐까 한다. 계획되거나 알 수 없는 부분에 대해 수많은 사람들이 먼저 그 길을 가서 지금의 나에게 알려주어 너무 고맙다. 나도 그 길을 걸어가며, 또 이것이 맞는지 돌다리를 두드려 보려고 한다.


함께 가는 것이 맞는지. 함께 일하는 것이 맞는지. 나는 늘 궁금하다. 그래서 다른 사람 하는 일에 큰 관심은 없었지만 내 바운더리 안에서 함께 만드는 제품은 어쩔 수 없는 터라. 그리고 나를 그런 자리에 앉힌 터라 하기 싫은 질문을 해 본다.

당신은 이 제품은 어떤 기여를 하는가?
당신의 일이 나에게 어떤 도움을 주는가?

내가 지금 느끼고 있는 이 공허함은 마찬가지로 나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제품은 어떤 기여를 하는가? 나의 일이 당신에게 어떤 도움을 주는가? 선행 개발의 단점은 늘 안된다고 하는 일은 나의 몫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살다 보니 몇 배는 더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고, 지금은 안된다고 하는 일 자체를 찾기 힘들어졌다. 결국, 그렇게 성장한 나의 시각이 공허함을 만들어냈다.


나는 헬스 하면서 모든 사람들이 그런 근육을 좋아하지도 않는데 왜 그런 뿌듯한 얼굴을 하는지 몰랐었다. 그리고 다른 일도 마찬가지였다. 내 일도 그렇지만 인류에 딱히 큰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은 일을 하며 마치 대단한 것처럼 표정 짓는. 한 때는 그래 저들에게는 저것이 힘드니 다른 사람보다 낫다는 정신 승리가 없으면 지속하기 힘든 것이구나 했다. 그리고 대부분은 그것이 맞았고, 그들은 사회에서 누가 만들어 놓은 도그마에 갇힌 것이었지 딱히 하는 일을 즐긴 적도 없었다.


일을 즐기려면 일을 겁나게 잘해야 한다. 겁나게 잘한다는 것은 겁을 먹을 정도로 빨라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그래봤자 전자의 이동 속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닌 '빠름'이지만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다. 그래서 뭔가에 몰입되어 제대로 먹지도 입지도 못하고 일상생활도 문제 있는 미친놈들이야 말로 세상을 바꾼다고 생각한다. 아프리카나 주변에 굶어 죽거나 사고 나서 죽는 어린이가 없어질 때까지 세상은 바뀌여야 한다. 물론, 전쟁도. 참으로 오래된 생각이다. 다시 써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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