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학준 Nov 23. 2017

홍대


홍대





 새벽 6시, 깔린 도로는 매일이 마라톤 당일처럼 마음의 준비를 한다. 잠시 밟고 지나가겠다며 무단횡단을 하는 내 말까지 들어주기엔 오늘 소화해야 할 일정이 크시다. 나는 이쪽저쪽 도로에 즐비한 편의점들 중에 통신사 할인이 되는 편의점을 향해 간다. 뭐 하는가 했더니 저긴 아저씨 몇 분이 크레인으로 새 간판을 길어올리신다. 떨어진 원래 간판 조각들. 크레인의 긴 목을 찔러 죽이고 싶은데 현수막을 달듯 너무 아무렇지도 않은 분위기에 가로수 나뭇가지는 더 이상 핏대가 안 선다. 


 사서 나오니 유명한 간판이 돼 있다. 유명하지 않은 간판 조각들은 아저씨들이 포대자루에 싸서 묶었다. 누런색 포대자루에 간판 글씨의 한 획이 날카롭지도 않은 비명 소리를 낸다. 자기 좀 꺼내달라고. 많이 해봐서 손발이 잘 맞는 아저씨들은 깔끔하게 치우고 도로 위를 떠났다.


 더 이상 못 골라선 안 되겠다 해놓고 이걸 골라버렸다. 포장이 화려한 민트초코우유. 도로를 밟으면서 궁금해하며 우유팩을 뜯었다. 걱정스러운 첫 모금. 쌉싸래함이 지나가겠지, 지나가겠지 하다가 끝까지 다 마셨다. 그리고 흐뭇하게 우유팩을 접는데, 접히는 쪽 면에 유명한 책 한 구절과 그 밑의 더 유명한 출판사 이름(내 첫 원고를 거절할 때 너무 안타까이 하기에, 또 보내고 또 보내어봤더니 토씨 하나 안 틀린 말로 안타까워해주던). 우유팩에서 그 이름을 읽자 흐뭇하던 입 안이 결국은 쌉싸래해졌다. 그리고 아까 자루에 묶여 간 간판 조각들이 생각났다. 지금 무단횡단을 한 뒤 도로 위를 떠나는 나와 그것들은 똑같았다. 











작가의 이전글 정류장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