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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준 Apr 10. 2018

교내 백일장

교내 백일장





 행정실 복도 벽면에 그래프로 서울대 입학자 면면이 붙어져 있다. 갓 10년 넘긴 역사지만 그래프는 해마다 높아지고, 새 건물 새 복도는 올해도 자신감이 희번득 넘친다. 또 다른 벽엔 최근 시험 때 상위권들의 성적을 붙여놓으니, 벌써 교내에 유명세를 떨치는 몇몇. 잘못 없는 내 친구들. 학교는, 중학교로 직접 찾아가는 식의 물밑 작전을 펼쳐 그 친구들을 데려왔다. 급식비 면제 등 여러 혜택을 줄 테니 와서 서울대에 입학해만 달라.


 그들이 포함된 ‘특반’은 나머지 반들과 차원이 달랐다. 수업 들어오는 선생님들도 달랐다. 나는 물밑작전에 없었던 특반 학생으로,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무 선생님도 내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딱 그 성적이었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슬퍼 보이는 선생님이 있었다. 들어온 이상 가르치고는 있으나 애초에 잘못 붙은 벽지라서 가만히 울자 하는. 선생님은 오직 수업만 했다. 그 유명한 우리 반 서울대 후보생들도 무시고, 종이 울리면 날렵하게 수업을 끊고 나가셨다.   



 시험 외엔 달리 중요시하지 않더니 교내 백일장이 열렸다. 글을 다 쓰고 내면 야간 자율학습 전까지 바깥 외출도 허락했다. 기숙사에 살며 한 달에 두 번 외박을 나가는 나는 조급해졌다. 요령껏 쓰고 낼 수도 없는 것이 나름 중학교 때 문학 소년인데……. 교실의 반 정도가 떠난 뒤에야 나는 종이를 들고 복도로 나왔다. 책상에 앉은 선생님께 내면 되는데, 바로 그 선생님이시다. 갑자기 종이가 무겁기도 하고 가볍기도 하다. 나를 알 리는 없지만.

 

 “저기, 잠깐 여기 와볼래?”

 

 “네?”

 

 나는 내고 나서 뜨겁게 복도를 걸어 나가는 중이었다. 나가서 뭐부터 할지에 대한 고민으로 말이다.

 

 “어디 의자 없나? 조용히 교실에 들어가서 의자 하나만 빼 와볼래?”

 

 “네.”

 

 의자를 옮기면서 나는 이 선생님이 왜, 국어선생님이긴 해도, 종이가 너무 가벼웠나.

 

 “시를 이렇게 쓰면 안 돼.”

 

 거기 적힌 내 이름을 불러주고 나서도 아니었다. 시를 그렇게 쓰면 안 된다니. 나는 수업 내용 바깥의 선생님 말투가 이렇구나와 동시에 기분이 나쁘려 했다. 중학교 때 시로 받은 상장만 몇 갠데 말이다. 그러나 나를 앉혀놓고 이제 시작이었다. 읽기도 어려울, ‘시’가 들어가는 가르침들이 복도에 도돌이표를 그리며 계속 이어졌다. ‘나가서 영화라도 한 편 봐야 되는데.’ 하는 조급함은 ‘평소에 이 선생님한테서 느낀 슬픔의 이유와도 연관이 있는 걸까.’ 하는 연민으로 바뀌고 있었다. 그만큼 길었다.



 학생과 복도에서 마주치는 것도 유쾌해하지 않으셨지만, ‘당신이라고 이런 학교를 다니고 싶으실까’ 슬픔이 느껴져서 나한테는 그게 위로가 됐다. 나는 전학을 가고 싶어 했다. 잘못 붙은 벽지라면 살짝 떼어볼까 했던 나와, 그랬다간 아예 달라붙지 못할까봐 제자리에서 수업만 했던 선생님. 그렇다면 왜 나를 앉혀놓고 시를 가르쳤던 것일까. 선생님은 그 이후로도 수업만 하고 나가셨다. 다만 기억나는 말씀 한 가지가 더 있다. 시에는 무언가 생각이 담겨 있어야 한다— 





여행(교내백일장에 냈던 시)


떨어진 꽃잎 위

다시 피어난 향기

그 고운 뺨에 흐르는

눈물을 위로한다.


풀잎의 감은 눈을 본다.

그제서야 향기는 날갯짓을 시작한다.


풀잎 위를 

걷기도 하고


구름에 닿아

꽃물을 터뜨린다.


다시 햇살 굴려지는 봄에

향기는 여행을 마치고

풀잎에 안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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