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브런치의 <바다 한가운데>글을 읽고 오시면 더 좋습니다.
경상도 특유의 묵묵함으로 ‘너 왜 집으로 돌아왔니?’ 묻지 않으시고 그저 따뜻한 밥을 차려주셨다. 집 곳곳엔 조카가 드나드는 흔적인 색색의 장난감들이 굴러다녔다. 언제나처럼 거실 tv는 켜져 있다. 다음 사람이 마른 상태로 신을 수 있게 욕실 슬리퍼는 한쪽 벽에 세워져 있다. 나는 집의 빈자리에 짐을 풀어놓으며, 혹시 나 때문에 집의 하나라도 달라지지나 않을까, 왠지 모를 조바심을 냈다.
하여간 집은 오랜만인지라 처음 며칠은 나를 반가워하는 분위기가 돌았다. 경주의 변한 곳들을 둘러보면서 나도 서울에서의, 부산에서의 일은 잠시 잊은 듯했다. 열흘 정도가 지났다. 나는 거실에서 엄마의 저녁밥을 기다리는 게 까닭 없이 보는 tv채널 마냥 쑥스러워졌다. 일을 마치고 아빠가 현관을 들어온다. 엄마의 예고대로 술을 한 잔 걸치셨는데 신발 끈을 한참 만에 푸셨다.
“야 이노무 새끼야!”
그로부터 아빠의 속마음을 전부 다 들을 수 있었다. 내가 글 쓰는 건 처음부터 싫어하셨는데,
“내일 모레면 나이가 서른이다. 그 정도 먹었으면 나가서 스스로 살림을 차려야지. 얼마나 됐다고 또 집에 기어 들어오고, 아주 잘하는 짓이다. 공무원 준비나 해라고 그랬제? 앞으로 뭐해먹고 살 작정이고?”
부엌에서는 밥 냄새가 올라온다. 때맞춰 누나네 식구가 들이닥쳤고, 아빠는 원래의 무뚝뚝함으로 돌아왔다. 거실에 너른 상을 펼치고 둘러앉으니 밥상의 모서리가 전부 들어찼다. 따뜻했다. 조카가 어설픈 발음으로 ‘삼촌’하고 들려준다. 나는 맛있게 받아먹고 속에선 그러나, 내일이라도 당장 서울로 도망쳐야겠다는, 밥상에서의 내 모서리를 지울 준비를 끝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