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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준 Oct 09. 2015

가을




                                                                                                             

 모든 것들처럼 나뭇잎이 떨어지는 계절이다. 여름 내내 보면서 위안 삼았던 난데, 저토록 갈색의 가볍고 약한 존재들이었다. 바람은 우리가 미안해할 것 있느냐며 분다. 한 잎 씩 다 떨어지고 어느 날 내가 나무로부터 아버지의 다리를 본다면 그땐 겨울이겠지. 




 나는 이번 추석에도 아버지의 다리를 보았다. 보지 않았더라면 하는 이유 같은 건 하나도 없다. 다만 이제 털이 거의 다 빠지셨고, 그걸 아버지 스스로도 무덤덤해한다는 사실이다. 몇 년 정도는 아버지께 죄송스러웠다. 어쩌다가 둘 다 반바지를 입고 나타나면 엄마는 안 해도 될 비교를 꼭 하고 넘어갔다. 우리 아들 다리 좀 보라며 그리고 당신 다리도 좀 보라며, 내가 털이 많으니까 더 건강해 보이고 좋다 했다. 내 다리가 별로 건강하지 않기 때문에 부러 그러셨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버지의 표정은 머쓱했고, 자꾸만 빠진다 하는 혼잣말은 작고 가늘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다행히 키가 커줬지만, 중학생 때 나는 교복을 입힌 초등학생과 다름없었다. 어느 순간 아버지와 함께 목욕탕을 가는 일이 부끄러워졌다. 꼼꼼히 살펴보아도 아직 나는 털이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꼬박꼬박 목욕탕을 따라다녔던 까닭은 아버지가 무서웠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언제나 말 한마디 않고 내 등을 밀어주셨다. 부끄러움에 자꾸 몸이 움츠려 들어서, 똑바로 대라고 아버지께 등을 한 대 얻어맞았던 기억이 난다. 나도 말 한마디 않고 아버지의 등을 밀어줄 때, 그 넓고 단단한 등이 내심 부러웠었다.   




 막 떨어뜨린 잎사귈 찾다가보니 겨울이고, 마지막 잎이 떨어진 게 바로 어제 같은데 하다가 봄이 와서, 나무는 다시 물들 것이다. 또 중학생처럼 기뻐할 수 있다. 슬픈 것은, 요즘 따라 아버지가 안 무섭고, 그런 아버지의 다리엔 털이 안 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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