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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준 Nov 21. 2015

삼촌 미안

 




 나는 빼도 박도 못하고 얻어맞을 것이다. 학교 끝나면 땡 하자마자 들어오랬는데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으니. 이만 들어가 볼게 했었던 해는, 인사만 열 번째 하며 어두우면 더 혼날 나를 걱정 중이다. 오줌이 마렵다. 그러거나 계속 걷는다. 놀이터에서 여기까지 온 거리 하고 이제 남은 거리 하고 겨우 비슷비슷해졌다.


   

 코너만 돌면 저 멀리 아빠가 나와 있거나, 아님 안 나와서 때릴 준비를 하고 있겠지. 하나 둘 셋 하면 돌자. 하나, 둘 셋. 아침에 툭 던진 말 아니었을까. 아빠가 안 나와 있다. 한 발짝, 한 발짝 세어가며 가게 근처까지 걸어갔는데, 가게 안은 또 시끌시끌하다. 보통 여섯 시 일곱 시면 장사는 사실상 끝이 난다. 간혹 이 시간에 들어와서 고추를 빻거나 하는 손님이 있는데 그분이신가 보다. 손님 가시면 곧바로 본래의 아빠로 돌아오니까 기대는 하지를 말자.


 “다, 다녀왔습니다.”


 “이노무 새끼. 시간이 몇 신데 이제 기어들어오노 마.”


 아빠는 재빨리 고추방망일 드셨고, 나는 좁은 방앗간 한쪽 구석을 향해 넘어지다시피 도망을 갔고 울었다. 그때, 누군가 아빠를 말리면서 동시에 나를 향해 팔을 벌리는데, 손님인 줄 알았던 누군가는 다름 아닌 우리 삼촌이었다. 그것도 종호삼촌. 삼촌이 내 옷의 흙과 땀을 그대로 꼭 껴안았다.


 “형님 왜 애를 때리고 그러십니까. 애가 까먹고 늦었을 수도 있지.”


 아빠는 온갖 경상도 욕을 해가며 고추방망일 들었다 내렸다 하셨고, 삼촌은 뜨끈한 서울말로 계속 나를 안심시켰다. 친척들이 다 모이는 날이었다. 내가 잘못을 해도 큰 잘못을 저지른 게 맞다. 그런데 삼촌 무릎 위가 너무 편안한 가시방석인데 나더러 어떡할까. 눈물이라도 좀 더 흘리자. 방망이 끝에 묻어서 잘 안 떨어지는 고춧가루처럼 아빠의 화도 빨리 안 사그라들 것이니까. 



 아빠는 팔남매이다. 아들이고 조카인 내 눈에도 참 고생스러웠을 시절들이 보인다. 경북 청송 출신의 형제들은 대부분 고향 근처에 남겠다 했지만, 막내삼촌 바로 위 종호삼촌만은 상경을 택했다. 취직도, 결혼도 거기서 해 명절 때나 보는 삼촌은 드라마 속에 나올 것 같았다. 형제들 중 튀는 자상한 성격도 서울 사람들은 그런가 나는 몇 번씩 자문하곤 했다. 조카들 한 명, 한 명을 다 챙겼다. 그래서 삼촌은 언제나 내게 특별한 사람이었다.


 

 지는 해도 삼촌을 봤으니 어느새 사라져버려 나를 걱정 안 한 척 저런다. 나는 살짝 마음을 놓는다. 조금만 웃어도 하회탈처럼 되는 삼촌의 얼굴을 삼촌 무릎 위에서 올려다본다. 초등학교 삼사학년 때였다. 내 이름을 불러준다. 다른 삼촌들 낯 간지러 못하는 얘기들도 물어봐 준다. 그런데, 삼촌이 지난주에 하늘나라로 갔다. 급하게 아무 사진을 써서 삼촌은 영정사진 속 처음으로 무뚝뚝해 보였다. 그게 너무 가슴 아팠다. 하회탈처럼 잘 웃는 삼촌인데. 나는 그런 삼촌을 잘 써보겠다고 이렇게 고쳤다 저렇게 고쳤다 책상에 앉아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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