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좋은 꿈을 꾼 날

다시 뭐라도 쓰기 2일차

by 이요마

똥꿈을 꿨다. 공중 화장실에 앉아있는데 대부분의 꿈이 그렇듯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닫혀있던 문은 개방된 유리로 바뀌었고, 사람들이 지나가는 길가에서 나는 얼른 수습을 하고 나왔더랬다. 황당하고 면구스러워서 어쩔줄 모르며 잠에서 깼고 머리맡에 있는 휴대폰을 켜서 꿈 해몽을 찾아보았다. 요는 똥꿈이란 좋은 것이며, 사람들 앞에서 변을 본 건 직장에서 좋은 기운이 올 것이라는 풀이가 있었다. 똥꿈 덕분일까 오늘 새로운 업무를 담당하게 되었다. 나름대로 일하고 있지만 겉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일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와서 좋았다. 한편으로는 내가 잘 해낼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함도 있지만 지금 잘 배워두면 언젠가 내가 누군가를 이끌어야할 때 스무스하게 이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하며 기분 좋게 나왔다.


사실 여전히 불안하다. 잘하고 있는 것인지. 너무 우유부단하게 끌려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판단이 잘 서지 않는다. 예전과 자주 비교를 하게 되는데,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선이 있었고 그 선에 맞춰 세상을 재단하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내가 행사할 수 있는 힘이랄 게 없어서 남에게 영향을 끼치지는 않았지만, 호불호를 표현하는 정도는 무탈하게 할 수 있었다. 그간 타성에 깃든 것인지, 책임지고 싶지 않은 마음이 생긴 것인지 남의 의견에 비판하는 일이 이제는 어려워졌다. 내가 비판받고 싶지 않은 마음처럼 남도 그렇지 않을까 라는 그럴 듯한 이유로 코멘트를 따로 달지 않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비판을 받고 싶지 않은 마음은 맞지만, 타인에게 코멘트를 할 만큼 내가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않다고 생각하면서 감 놓아라 배 놓아라 말하지 않게 된 것이다. 하지만 피드백이 필요한 상황에서 조차 주저하고, 좋은 것을 좋다고 별로 인것을 별로라고 말하지 못하게 된 것은 상호존중이기보다는 필요할 때 할 말 못하는, 말하자면 고장난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고장난 것은 고치면 되는 법. 취향을 부리지는 않지만 고집만은 있다고 생각하는 내가 본연의 모습을 숨기고 일반인 코스프레를 하면서 예쓰맨이 된 건 전부 사회의 탓이라고 투정하고 싶다. 하지만 결국 지금의 나를 만든 건 과거의 나의 선택들이 쌓여 생긴 결과이고, 이 결과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지어야 한다. 누구도 나를 대신할 수 없고, 남탓 해봐야 달라지는 건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외곬, 외길인생이라는 부적응자 포지션을 다시 잡을 필요는 없다. 대신 할말은 할 수 있고, 당당하게 괜찮은 방향으로 팀을 이끄는 조력자가 되고싶다.


또 하나 좋은 일이 있긴 했다. 퇴직금을 부어 해외주식 배당주에 투자했고 오늘 처음으로 배당금이라는 걸 받았다. 0.3달러. 그중에 세금 15%정도 떼고 0.25달러가 주식 통장에 꽂혔다. 300원 남짓한 불로소득에 기분이 몹시 좋았다. 그간은 노동력을 투입해야만 돈을 번다고 생각했었다. 알바를 해도 일한 시간만큼 벌고, 회사를 다녀도 한 달을 일한만큼 돈을 벌고 하는 식으로 말이다. 어쩌다보니 흘러흘러 배당주의 세계로 왔고 코로나와 유래없는 증시 폭락으로 -12%까지 원금이 떨어졌었지만(물론 시드머니가 미미해서 멘탈이 크게 흔들리지는 않았다.) 어쨌든 돈이 돈을 굴린다는 말을 아---주 미약하게나마 증명했다는 점에서 약간의 희망을 얻었다. 언젠가는 월급만큼 배당금을 받게 된다면 취미로 회사를 다닐 수 있지 않을까. 돈의 압박에서 벗어나 커리어를 설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꿈도 잠깐이나마 꿨다. 300원 받고 너무 행복회로를 돌린 것도 같다.


불로소득만큼이나 요즘 많이 생각하는 것이 선순환의 구조다. 악순환의 굴레에 빠져 번아웃 + 우울증 + 남탓병(핑계) + 원진살 콤보를 온몸으로 경험하고 나서 내가 뜯어 고치려고 하는 것이 돌고 도는 써큘레이션의 세계다. 열심히 살수록 수렁으로 빠지고 안 쓰고 아끼고 참아가며 돈을 모으고 버텨도 비루한 생활을 벗어날 수 없고 미래도 아마 비슷할 것이라는 좌절감은 내가 살아갈 힘을 잃어버리게 했다. 그 시기를 지나 내 주변에는 좋은 사람들이 있고 열정이 있는 사람들이 있고 오늘을 멋지게 보내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조금의 숨돌릴 여유가 생기고 나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언제나 도망치고 싶었다. 돈이 무서웠고, 변화 없이 이대로 살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것이 무서웠고, 언젠가 쓸모가 다하면 대체된다는 것이 무서웠다. 해결은 간단했다. 돈을 무서워 하지 않고, 변화를 받아들이고, 쓸모를 만드는 방법. 이 모든 것을 내가 해낼 수 있다는 작은 믿음을 갖는 것. 그게 전부였다.


그 과정에서 힘을 주는 친구들이 있었고, 본받고 싶은 회사 동료들이 있었고, 다시 현실로 이끌어 준 유튜브의 많은 선생님들이 있었다. 여전히 내 삶을, 나 자신을 직시하는 일은 두렵고 무서운 일이다. 나는 여전히 보잘 것 없고 무엇도 할 수 없는 그냥 평범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평범함이 때론 더 큰 것을 만들 것이라 생각한다. 나는 평범하기에 검열 없이 이런 평범한 잡문을 써도 괜찮고, 평범하기에 누구도 내게 큰 기대를 품지 아니한다. 평범하기에 남 눈치 볼 필요 없이 더 배워야 할 명분도 있고, 평범하기에 오늘을 열심히 살아야할 당위도 생긴다. 나를 방치하던 시간이 길어지고 어제 밤 오랜만에 글을 쓰면서 다짐한 것이 하나 있다.


문앞에 잔뜩 쌓여있던 재활용 쓰레기를 출근하면서 하나씩 버리는 것, 설거지를 하는 것, 왠만한 일은 미루지 않는 것. 내가 내일로 유예해온 수많은 결과들이 집안 곳곳 쌓여있는 쓰레기들과 쌓인 설거지로 나타난 것이다. 한번에 치울 양이 아니여서 출근길에는 페트병을 버렸다. 이 글을 마치고는 종이류와 일반쓰레기를 한바탕 버리고 산책을 때리고 올 것이다. 산책을 하는 동안은 다시 힘을 내서 완성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글리프 마감을 때릴 것이다. 다른 사람의 기대에 충족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를 위해, 내가 만족할만한 글을 써 나갈 것이다. 많은 고마움이 과거로부터 이월되어 쏟아지는 요즘이다. 여전히 불안하고 힘들지만 잘 넘겨서 괜찮은 선순환의 미래를 만들어 가고 싶다. 오늘도 두서 없이 길어졌지만 이렇게 싸질러 놓으니 생각도 정리되고 기분도 좋다. 마무리 하기 전에 왠지 오늘의 읽은 책에 대해서 조금 기록을 해두는 게 좋을 것 같다. 완독을 하게 되면 단독으로 독후감도 써야지.


오늘은 홍화정 작가의 <쉬운 일은 아니지만>를 읽었다. 프리랜서로 살며 일기처럼 기록한 작은 메모들과 4~8컷 만화로 구성된 에세이집이다. 따뜻한 그림체도 좋은 포인트지만 스스로를 끊임없이 격려해가면서 나를 미워하지 않으려는 노력이 보여 한편으로 와닿으면서 한편으로는 나만 그런게 아니었구나 위안을 준다. 교보문고 전자도서관으로 읽고 있는데 80%정도 왔으니 산책때리면서 스윽보면 완독을 때릴 수 있을 거 같다.


아참 어제 자기 전에도 책을 조금 읽었더랬다. 2018년 1월에 시작했던 <총, 균, 쇠> 하루 4장 읽기를 다시 시작했더랬다. 당시에는 아침에 일어나서 4장을 읽고 씻으러 가는 습관을 들이려했었지만 일주일도 안되어 실패했던 기억이 난다. 2년간 360페이지 정도 읽었고, 앞 부분이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완독에 목표를 두기에 책갈피를 끼어놓은 부분부터 다시 읽기 시작했다. 요지는 대륙이 문화 전파가 빠르고, 문화 습득이 빨라서 상대적으로 고립된 지역의 부족들보다 발전을 잘 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발전도 결국 운빨이라는 뜻으로 읽혀 역시 인생의 9할 이상은 운이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이제 14장에 왔으니 반년 후에는 끝나지 싶다.


<총, 균, 쇠> 같은 두꺼운 책은 오버페이스하면 쳐다도 보기 싫은 부작용이 생기기에 4장만 딱 읽고 덮었다. 그렇지만 잠이 바로 오지 않아 왓챠플레이를 켜려다가 잠을 설칠까 얼마 전에 마음이 아플 때 산 책을 꺼내들었다. <잠시 슬럼프였을 뿐 더 괜찮아질거야>라는 왠지 나약한 사람이 읽을 것 같은 책을 조금 읽다가 잤다. 기억에 남는 부분은 부부간의 갈등의 골이 깊어진 사례였다. 신혼 부부였던 A씨와 B씨는 같은 상황에서 다른 해석을 했더랬다. A씨는 남편을 위해 반찬을 여러 개 만들어 한상을 차려줬고, B씨는 퇴근 후 집에 와서 그걸 보더니 양푼을 달라고 하고 이내 반찬을 다 때려박고 비벼먹었더랬다. A씨는 기껏 차린 밥상을 무시한 남편에게 상처를 받았고, 부부는 3년 동안 이에 대해 말하지 않았더랬다. B씨는 3년후 부부 상담에서 그 사건을 또렷하게 기억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아내가 해준 반찬이 너무 고마워서 한톨도 남기고 싶지 않아서 그랬다. 뭐 지나고 나면 변명이 되어버린 말들이겠지만 나고 자란 생활 환경이 달라 벌어진 오해라고 필자는 정리한다. 가정교육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반찬을 락앤락에서 그릇에다 꼭 꺼내먹라고 골백번 말씀하시던 엄마의 말씀이 갑자기 생각났다. 오늘도 죄송하게도 김치볶음을 한 그릇에 때려박고 비벼먹었는데 갑자기 죄책감이 든다.


죄책감이 들 때는 걷기만한게 없다. 빨리 죄책감을 털어내고 내게 주어진 소중한 지면을 채워가야겠다. 내일도 또 브런치에 마음을 싸질러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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