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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마 Jul 31. 2022

주간 이요마 인풋노트_7월 5주차

22.7.25~7.31 읽고 본 것들

현타가 와서 불쑥 강릉 여행을 다녀왔다.

조바심을 넘어서 요행을 바라고 있는 나를 발견했고, 그래서 새벽에 일단 어디든 갔다오자는 마음으로 강릉에 다녀왔다. 1박 2일이라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확실히 리프레시가 되었고, 나는 천천히 내 속도에 맞춰서 나아가야한다는 걸 다시금 깨닫고 온 시간이었다. 읽는 일은 더뎠지만 쓰는 일은 많았다. 8월도 화이팅해서 더 써가야지.



★모든 리뷰에는 스포 가능성이 있습니다! 스포주의


읽은 책



1. <매일을 헤엄치는 법>, 이연, 푸른숲, 2022


내가 된다는 것의 의미는 단순하다. 흉내를 그만두고 내가 나일 수 있는 일을 하는 것이다. (...) 세상에 너무나 많은 삶의 방식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꼭 회사에 소속될 필요는 없던 것이다. 그때부터 질문이 조금 더 날렵해졌다. '그러면 내게 맞는 삶의 방식은 무엇인가?' 내 삶의 방식을 존중해주고 환경을 제공해주는 조직은 없었다. 없으니 포기할 게 아니라 만들기라도 해야 하는 것이었다.


70만 그림 유튜버 이연의 2018년, 힘들었던 시기를 되돌아보며 풀어낸 '나다움'에 관한 이야기. 수영을 배우는 과정처럼 남의 기준에 맞춰 살아오던 이연수라는 사람이 이연이라는 이름을 짓고 자신의 호흡, 자신의 속도로 삶을 바꿔가는 1년의 치열한 기록이 담겼다.


이연님의 영상을 만난 건 순전히 알고리즘 때문이었다. 그림을 그리면서 차분하게 무언가 얘기하는 데 거진 다 맞말 뿐이고, 통찰력 있는 모먼트들을 풀어놓으면서 자신만의 것을 만들어 가는 것이 참 멋지다고 생각했더랬다. 그의 영상을 하나씩 다 보고 나서, 그의 히스토리를 조금씩 알아가면서 '나다움'을 찾기 위한 여정에 기꺼이 몸을 던진(그러나 본인은 엄청 플랜비를 깔아놨다고 하지만) 그의 이야기에 점점 매료되었다.


전작인 <겁내지 않고 그림을 그리는 법>이 태도 + 그리는 행위에 초점이 있다면, 이번 만화 에세이는 보다 감정과 불안이 눈에 들어왔다. 이유야 다르겠지만 나도 그처럼 우울공황으로 급 퇴사를 하게 되었고, 갑자기 붕 떠버린 시간을 견디며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있기에, 그의 이야기가 더 감정적으로 깊게 다가온 것 같다. 말 잘 들으면서, 남에게 사랑을 받으려고 부단히 노력해왔지만 남은 건 부서지고 삭아버린 나 자신밖에 없을 때, 어디서부터 나를 세워야 할 지 모를 때 이 책을 만날 수 있어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인상적인 장면들이 많지만, 펜으로 비장하게 그림을 그리던 자기 자신을 회상하며 5년만에 자기가 좋아하던 그림을 그리려고 펜을 잡으니 선 하나 쉽게 못 긋는 자신을 발견하는 장면이 제일 기억에 남았다. 다시 연필과 지우개를 잡고 망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선을 그어가는 그 장면을 보면서 나도 잃어버렸던 소설 쓰기에 대한 마음을 조금은 다잡을 수 있었다.


요즘은 매일매일 이런 생각을 한다. 6개월간은 놀겠다고 선언했지만, 이 적이 없는 시간을 무한히 연장하고 싶다고 말이다. 회사 밖에도 사람들이 있고, 나 또한 자유롭게 자신의 시간을 쓰는 이들처럼 되고 싶다고 말이다. 그 과정에서 분명히 절망의 시간도 고통의 시간도 가득할 것이다. 허나 내게 필요한 건 당장의 월급보다는 매일을 조금씩 내 속도로 헤엄쳐가는 살고자 하는 마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게 1m 1m 나아가다보면 명함이 없어도 나를 소개할 수 있는 어느 지점에 닿아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물론 목표와 성실성이 뒷받침해야겠지만 말이다. 여러모로 위로와 자극을 동시에 준 고마운 책.


2. <웰씽킹>, 켈리 최, 다산북스, 2021


당신이 유일무이하고 가능성이 무궁무진한 존재라는 것을 스스로 믿어야 한다.


원하는 것을 얻으려면 먼저

당신부터 귀하겨 여겨라.

삶은 하찮게 여기는 순간,

사람은 그 때 죽는다.


켈리델리의 켈리 최 회장이 쓴 자기계발서이자 마음공부 책. 연초에 읽었는데, 새로 마음을 다잡고 나를 믿는 힘을 부스트하기 위해서 재독했다. 웰씽킹은 사람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는 생각들이다. 시크릿의 영향을 많이 받아 호불호는 갈릴 수 있겠지만 나는 믿는 쪽으로 선택했다.


내 몸에 대한 통제권을 잃었다가 회복하는 기간이어서인지, 요즘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솟을 때가 왕왕있다. 와 이거 나도 하겠는걸? 야 이건 쉽겠다. 하는 마음으로 이거 저거 해봐야지 마음까지는 잘 먹는데 행동으로까지는 잘 안 이어지고 관성대로 게임을 켜게 된다.


<웰씽킹>을 다시 읽게 된 건 어제 밤에 반쯤 읽다가 잔 <10배의 법칙>이라는 책 때문인데, 목표를 타협하지 말고 10배 높게 잡고 그에 걸맞는 노력을 하라는 말이 최근에 유튜브 알고리즘을 통해서 만난 스노우폭스 김승호 회장의 원하는 건 100번 쓰기와 겹쳐져, 그 둘 다 실천하고 흡수해서 스스로 대장이 되신 켈리스 켈리 최 회장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간절히 원하면 이루어진다는 <시크릿>은 많은 부자들에게 영향을 주기도 했지만, 나부터 시작한 내 주위의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그게 되겠냐?'의 영역이기도 했다. 지금은 직업도 없고, 딱히 책임도 없는 상황이니 속는 셈치고라도 간절히 믿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믿기만 해서는 켈리 최 회장처럼 이룰 수는 없다. 위기를 직시하고 태도를 바꾸고, 몸을 먼저 움직여서 기회를 쟁취하는 건 결국 내 몫이다.


하지만 그렇게 몸을 움직이는 것이 잘 되지 않았는데, 그건 내가 나에 대한 믿음과 신뢰를 완전히 저버렸기 때문일 게다. 퇴사를 하면서 나는 나 자신에 대해 수없는 자기비난과 혐오를 쏟아냈다. 그 과정에서 이러지 말아야지 하는 반성도 있었지만 여전히 남아있다. 지금은 상담을 통해 과거를 되돌아보면서 이게 모두 다 내 탓만은 아니구나라는 걸 깨달으면서 조금씩 그 고여있는 자기혐오와 우울의 감정에서 한 발씩 나오고 있다. (타인에 대한 원망이 늘은 건 아직 덜 치료되었다는 것이겠지)


그 과정에서도 나는 자기 믿음이 제로라는 걸 다시금 확인했는데, 생각해보면 그렇게 나쁠 것도 없는 데 왜이렇게 나를 스스로 저평가하는 지 모르겠다가, 문득 돈오 모먼트로 깨달은 바가 있다. 지난 주에 읽은 <수치심>과 연결되는 부분이다. 나는 스스로가 타인으로부터의 거절이나 받아야할 실망감을 원천 차단하기 위해서 일 자체를 안 만드는 방식으로 방어기제를 만들어 왔는데, 그 과정에서 커넥션을 안 만드는 방법으로 '나를 망가뜨리고, 저평가되게 하여서 타인과의 접점을 없애기'의 방식을 사용한 것 같다. 말이 좀 이상하긴 한데, 내가 후지고 남들보다 아래 있으면 누구도 나에게 관심을 갖지도, 건들지도 않는다. 먹이 사슬로 치면 최약체인 물풀 같은 포지션을 스스로 잡은 셈이다. 그 과정에서 나 자신은 그저 물풀 쪼가리이기 때문에 스스로 별로라고 자기 최면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사랑하는 일, 그 전에 나를 이해하는 시간을 가지면서, 도무지 납득하기 어려운 나의 모습을 가끔은 발견하게 된다. 왜 그렇게까지 나를 낮춰야했을까. 나를 방치하고 무관심해야했을까. 더 나아가 스스로 자기 통제권을 포기해 우울로 이끌었을까 말이다.


이제는 더 이상 그러고 싶지가 않다. 켈리 최 회장이 센느 강에서 스스로를 포기했다가 마음을 다잡은 그 순간처럼 나도 다시 나를 사랑하며 일어나고 싶어졌다. 솔직히 시각화에 대한 거부감이 없지 않은 건 아니다. 우선은 100번 외치기(혹은 쓰기)부터 시작하면서 나 자신의 자의식을 내려놓고 스스로를 믿는 일부터 시작하려한다. 좋은 생각들로 나 자신을 좀 더 알아가고 아껴주고 싶어졌다.


여담으로, 이번 포스팅으로 이 계정을 처음 만들었을 때 세운 정량적 목표 100포스팅에 성공했다. 곧 리뷰할 <10배의 법칙>을 고려해서 다음 목표는 1,000개 포스팅을 잡고 선선히 나아갈 것이다. 인풋을 멈추지 말자.


3. <동유럽 기행>, 가브리엘 마르케스, 민음사, 2022


'철의 장막'은 장막도 아니고 철로 돼 있지도 않다. 그것은 빨간색과 흰색으로 칠한 나무 방책인데, 꼭 이발소 간판 같다. 그 장막 안에 석 달 동안 머무르고서, 나는 철의 장막이 정말 철의 장막이기를 바라는 건 일반 상식이 모자란 결과라는 걸 깨달았다.


소비에트 연방 시절, 그 중에서도 스탈린이 죽고 흐루쇼프가 집권하던 시절 콜롬비아의 작가 마르케스가 동유럽-러시아를 여행하며 보고 듣고 느낀 것을 쓴 기행문. 수년간 고립되었던 러시아 사람들의 태도와 행색 그리고 생활 풍경이 인상적인 책.


일단 표지에 매혹되어 나도 모르게 사게된 책. 뭐야 이건;; 하는 남자의 표정이 책을 읽는 내내 독자들도 지을 표정이다. 선전 뒤에 가려진 소비에트 연방의 사람들의 실상은 참담하다고 해야할 지, 이상하다고 해야할 지 묘했다. 책 내내 흔히 공산주의 국가의 표상하면 떠올릴 법한 멋드러진 건축물과 동원된 인민들이 보여주는 화려한 면과 그 뒤에 나일론 양말 하나 구하기 어려운 사람들의 현실이 교차되며 마르케스의 눈에 포착된다.


재미있는 부분은 마르케스가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초대되어 간 일종의 VIP신분이고, 그럼에도 통제를 받는 대목, 그리고 그 통제 와중에도 빠져나와 현실을 마주하려고 분주히 움직이는 모습들이었다. 하나뿐인 언론, 광고없는 선전들, 주입된 사상 속에서 인민들은 알건 다 알지만 그럭저럭 순응하고 살아가고 있었고, 마르케스는 약간의 자극은 줄지언정 선민의식을 갖고 그들을 꺼내준다거나 하는 개입은 하지 않는다. 그 관광객 같은 약간의 거리감이 이 책을 부담없이 읽게 만들어주는 것 같다.


한편 모스크바 방문편을 읽을 때는 미묘한 기시감을 느꼈는데, 생각해보니 <전쟁과 평화>의 배경도 모스크바-블라디보스톡이기 때문인 것 같았다. 같은 공간이지만 과거의 배경이 된 그 장소는 약간 사교의 장, 공작새들의 천국, 귀족귀족한 분위기를 상상하며 읽었는데, <동유럽 기행>의 그곳은 처절하면서도 처연한 사상때문에 몰락한 공간으로 느껴지는 점이 재미있었다. 같은 공간이라도 그 공간이 처한 맥락이, 상황이 더해지며 달라지는 지점을 비교하면 읽는 게 책 읽는 맛이라는 걸 새삼 깨닫게 되는 모먼트.


4. <연인>, 마르그리트 뒤라스, 민음사, 2007


나는 글을 쓰나고 생각하면서도 한 번도 글을 쓰지 않았다. 사랑한다고 믿으면서도 한 번도 사랑하지 않았다. 나는 닫힌 문 앞에서 기다리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한 것이 없다.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어린시절 프랑스령 베트남에서 살 때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담은 소설. 열다섯 반 소녀가 마주한 세상과 가정의 억압 그리고 광적인 사랑이 유려한 문장과 섬세한 표현으로 풀어냈다. 짧은 분량이지만 임팩트가 상당한 책.


사실 베트남 여행을 계획하면서 베트남 배경 소설을 찾다가 생각나서 다시 읽은 책이다. 두 가지 애석한 점이 있었는데, 하나는 이 책의 배경은 지금의 베트남 남부 호치민 시티 근처고 내 여행지는 북부였다는 점이였고, 다른 하나는 여차여차의 사정으로 여행을 취소했다는 점이다. 어쨌거나 좋은 소설을 읽어 오늘 하루 괜찮았으니 그걸로 만족한다.


1인칭 소설이여서일까, 아니면 뒤라스가 워낙 잘 쓴 까닭일까 책을 읽는 내내 '나'에 몰입할 수 있었다. 노름에 미친 큰 오빠, 그에게 당하는 여린 작은 오빠, 강박적인 성격을 보이는 엄마까지 '나'에게 집은 안식의 공간이 되지 못한다. 우연히 만난 중국인 남자와의 격정적인 사랑은 다만 한때 화르르 타오른 것이기보다는 그럴 수밖엔 없는 선택이 아니었을까도 싶더라.


그와 자신과 자신의 가족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아도 되는, 그 역시도 그렇게 깊은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되는 딱 그정도의 위치가 서로에 대한 배려이고 사랑의 거리감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더 아프고, 더 잊을 수 없는 사랑이 된 건 아니였을까. 둘의 관계에 대한 묘사는 육체적 관계가 대부분이지만, 리무진 안에서 서로에게 기대 이동하는 시간부터 독신자 아파트에서의 시간까지 둘에게는 더 없는 안식을 주지 않았을까.


각본에 참여한 <히로시마 내 사랑>과 영화 <연인>도 이어서 챙겨볼 생각


5. <흉가>, 미쓰다 신조, 북로드, 2016


뭔가 안 좋은 것이...

산에서 내려온다...


강릉에 놀러갈 때 챙겨간 책. 여름이니 시원한 공포 소설이 보고 싶어서 선택한 일본 소설. 결과적으로는 굉장히 만족스러웠다. 원하는 키워드인 '정체불명의 존재'가 '오컬트'적인 면모를 풍기며 '사람들을 현혹/흔들어놓고' '인간과 대결'한다는 모든 것이 다 충족되었다. 후후


재미로 읽기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몰입도가 높았다. 주인공 쇼타네 가족이 안라 시의 도도산 아래 집으로 이사가면서 벌어지는 이상한 일이 주요 스토리다. 공포는 다른 가족들은 느끼지 못하지만 10살인 쇼타와 그보다 어린 동생 모모미에게만 보이는 '그것'들의 존재인데 어린이의 시선에서 '그것'을 목도하고 해결해 가는 과정이 일품이다.


가끔 그런 생각을 한다. 절대자가 되었든, 신 혹은 악신이 하늘 위에 있어 인간들에게 좋든 나쁘든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게 아닐까 하고 말이다. 논리나 인과관계가 통하지 않는, 인간으로서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이상한 일'에 속절없이 휘말리는 게 아닐까 하고. 나는 인간의 자유의지를 믿는 한편 사주팔자와 같은 날 때부터 주어진 길이라는 개념도 믿는다. 그래서 <흉가>에 나오는(나오는 것으로 추정되는) 도도산의 뱀신들도 그러려니 받아들인 것 같다.


세상이 나를 흔들어놓고 있다고 생각할 땐 하늘을 본다. 내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일 사이에서 선택해야할 것은 단연 통제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걸 부정하면서 시간을 끌어봐야 돌아오는 건 고통뿐이였던 것 같다. 할 수 있는 걸 하자. 그리고 차곡차곡 정보를 쌓고 좋은 친구를 만들어서 내게 고통을 주는 '흉가'와 '그것'들로부터 멀어지자.



본 영화

: 이번 주 없음



본 시리즈(-ing 포함)

다 본 시리즈

: 이번 주는 없다.


보는 중인 시리즈

* -ing는 기록만 간단히


1. <왜 오수재인가>(2022)

: 보는 중, 이번 주는 한 편도 안봤다.


2.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2022)

: 아껴본다고 생각하니 안볼 줄이야... 천천히 따라가자


3. <파티피플 공명>(2022)

: 찬찬~ 치키치키 찬찬~ 오프닝은 익히 알았는데 꽤 재밌다. 정신차리니 벌써 5화... 마저 볼 생각.





기타 기록


1. 브런치 에세이 2개 발행

https://brunch.co.kr/@hakgome/415

https://brunch.co.kr/@hakgome/416

: 조바심 편은 어디에 노출이 되었는지 조회수 1천을 찍었다! 동기부여가 되는 모먼트. 지금의 내 마음은 지금만 기록할 수 있으니 계속 진솔하게 적어나가야지.


다음 주도 열심히 읽고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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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시간 인풋 기록은 아래 인스타에 하고 있다.

문장 밑줄 치고, 그때 든 감정/생각을 바로 기록하는 중이다.

https://www.instagram.com/hako_eyom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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