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요마 Jan 09. 2023

[2022] 폭풍이 쫓아오는 밤_최정원

K픽션 아카이브 - 장편소설 | 이요마

*도서 리뷰입니다.

*스포일러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안전한 공간 없는 시대의 아이들 | 이요마


제4회 창비 영어덜트 공모전이 조만간 마감이다. <스노볼> 이후로 수상작을 챙겨보지는 않았지만, 출간된 당선작들의 면면을 보면 장르적인 성격이 묻어나는 것 같다. 청소년-영어덜트 소설이 다만 학교 생활, 자아정체성을 찾는 성장기의 파편 같은 표상에서 벗어나서, 재미 중심으로 독자들에게 다가간다는 점이 인상적인 공모여서, 가장 최근에 출간된 수상작을 찾아보게 되었다. <폭풍이 쫒아오는 밤>은 제3회 공모전 우수상 수상작이고, '크리쳐물', 좀 더 구체적으로 괴생명체와의 사투를 소재로 삼은 이야기였다.



  열일곱 이서와 여섯살 이지는 오랜만에 가족여행을 왔다. 혼자서 둘을 키우는 아빠는 밤낮으로 회사일로 바쁘기에 보기드문, '가족이 함께 하는 시간'이었다. 숙소에서 쉬고 있는 데 폭풍이 치기 시작하고, 회사에서 온 급한 전화를 받던 아빠는 갑자기 통화권 이탈 표시가 뜨며 휴대폰이 꺼지는 통에, 통화를 이어가기 위해 숙소를 나와 사무실로 나선다. 이서와 이지 둘만 남은 숙소. 옆 건물에서 굉음이 들려온다. 창밖으로 스윽 보이는 건 '괴물'. 이곳은 위험하다. 그리고 천식으로 몸이 좋지 않은 아빠도 위험하다. 이서는 이지를 데리고 사무실을 향해 뛴다.


아니지, 그때 네가 그런 말만 하지 않았어도 엄마는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을걸?


  사실 이서와 이지는 친자매는 아니다. 엄마가 재혼하며 나이차가 많이 나는 동생이 생긴 것이다. 이서는 자신이 엄마가 꾸리는 새로운 가족 밖에 서있는 이방인 같은 기분이 들었고 가족 안에서는 겉돌게 된다. 놀아달라는 이지를 뿌리치고 방에서 혼자 잠들었던 날, 퇴근 후 돌아온 엄마는 이서를 혼내거나 추궁하지 않았다. 둘이서 드라이브를 하자는 엄마를 따라 차에 탄 이서. 자신도 모르게 상처가 되는 말을 던지게 되고. 하필이면 그 순간, 맞은 편에서 오는 음주운전을 한 화물차와 정면으로 부딪히며 엄마는 사망, 이서만 살아남게 된다.

  이서의 마음에는 늘 죄의식이 따라붙는다. 내가 엄마를 죽였다. 내 탓이다. 하는 마음과 내가 남은 가족들을 위해서도 살아야 한다는 부담감. 자기 자신만 보면서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나이지만 이서는 (지긋지긋하게도) 가족에 매여있다. 이서에게 가족은 '안전한 공간'이 아니다. 부담과 책임 그리고 사랑이 공존하는 견뎌내는 공간에 가깝다.

  서브 캐릭터로 나오는 수하의 입장도 다르진 않다. 노름에 빠져 가정을 파탄낸 아버지의 그늘이 수하를 늘 따라다닌다. <폭풍이 쫓아오는 밤>의 청소년들은 누구도 지켜주지 않는 공간에서 자라, 스스로를 지키며 생존해왔다. 푹 쉴만한 안전한 공간하나 없이, '여행'을 와서도 정체불명의 크리쳐와 맞닥뜨리는 위험에 노출된다. 

  곰과 개 사이의 어드메 쯤 되는 외향의 크리쳐가 이서와 수하에게는 그렇게 무서워보이지 않았다. 꼭 살아남아야겠다는 생의 의지라거나, 너무 놀라서 어찌할 지 모르는 당황 모먼트가 별로 없었는데, 그들은 눈 앞의 괴물과 싸우는 일보다 더 복잡하고 힘든 시간들을 겪어왔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각자도생의 시대의 아이들은 매순간이 대응인 것일까. 

  '괴물'을 만든 것도, 이서와 수하에게 상처를 준 것도, 아이들이 결국 스스로 자신을 지켜야만 했던 세상도 어른들이 만든 세계다. 어른들은 일을 키울 뿐이다. 박사장처럼 역정을 내거나, 성광처럼 버리고 튀거나, 아빠처럼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포칼립스 세계에 사는 것마냥 안전망 하나 없이 살아온 아이들이 여러모로 안타까웠던 이야기였다. 분명 이겼지만 이긴 것 같지 않은 찝찌름한 이야기였다.








▼ 다른 리뷰 보러 가기 ▼


매거진의 이전글 [2022] 랑과 나의 사막_천선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