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픽션 아카이브 - 단편소설 | 이요마
문학을 읽는 일은 책을 매개로 한 이야기에 독자가 접근하면서, 그의 내면에 있던 이야기와 화학작용을 일으켜 텍스트를 읽기 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상태가 되는 것이라고 스스로 정의하고 있다. 변화는 '재미'일수도, '감정'일수도, '느낌'이나 '행동'이 될 수도 있을 게다. 나는 그러한 변화가 촉발되기 위해서는 내 삶과 연동되는 연결고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데, 그 고리가 너무 우리 사는 세상과 동떨어져 있거나, 너무나 일치한다면 흥미를 갖기가 어렵다고 본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내 인생과 전혀 상관도 없는 동서양 고전을 읽을 때 느끼는 지루함, 너무나 내 얘기여서 픽션이기보다는 논픽션 같은 느낌을 확인하는 경험이 그것일진데, 한 때는 나도 이 두 가지 때문에 책을 읽었지만 지금은 한 발 피봇해 나온 상황이다. 요즘은 '낮은 진입장벽'과 '확장'이 나의 화두다. 책은 꽂혀 있는 것이 아니라 읽혀야 의미가 있고, 누구에게나 읽히기 쉬운 콘텐츠가 많아지길 희망한다. 다른 하나 '확장'은 문학을 읽고 나서 무언가 달라진 기분, 느낌적인 느낌이라도 얻어갈 수 있기를 바란다. 물론 앞서 말한 두 가지가 나쁘단 건 아니다. 그저 내가 달라졌을 뿐이다.
서론이 길었다. <위치스 딜리버리>는 그런면에서 과거의 나는 선호하지 않았겠지만, 요즘 기준으로는 참 좋았던 소설이었다. 그만큼 쉽고 재미있게 읽히면서도 일상 속에서 상상의 여지를 주는 작품이란 의미다.
주인공 보라는 좋아하는 걸그룹 씨엘즈의 콘서트 비용을 벌기 위해 '여성만 가능한 아르바이트'를 하게 된다. 퇴폐나 불법적인 건 아닐까 걱정하며 찾아간 [위치스 딜러버리]는 배달/택배 회사였다. 근로계약서도 안 보고 싸인을 하고 나니, 이곳은 알고보니 '마녀'가 되어 하늘을 날며 배송을 하는 업체였다(?). 시대가 바뀌어 청소기를 타고 하늘을 나는, 배달노동자가 된 보라는 단짝 '주은'이 오컬트 샵 [벤시 포켓]에서 주문한 위험한 물건을 배달하면서 사건에 휘말리게 되는데...
"왜. 뭐. 마녀는 월세랑 가스비랑 수도비랑 식비 안 드냐."
"마녀가 되어서 좋은 게 뭐에요 대체?"
(...)
"하늘 날잖아."
시종일관 캐쥬얼한 문체로 이야기를 풀어가는 통에 쉽게 읽힌다. 더불어 성남시를 배경으로 하는 생활밀착형(?) 어반판타지기에 마녀-비행-초능력 같은 터무니 없는 이야기를 하지만 디테일이 죽지 않는 신기한 소설이었다. 한편 이 책에 실린 두 편의 단편 <위치스 딜리버리>와 <에어프라이어 콤비의 탄생> 모두 '미성년 능력자'들의 이야기인데, 분량 상의 문제일까 둘다 프리퀄 내지 인트로 같은 소소한 이야기로 마무리된 점은 아쉬우면서도, 후속작이 기대되는 포인트였다. 또한 그 미성년자 주인공들이 주체적으로 자신에게 처한 위기 상황을 극복해 나가는 것도 참 좋았다.
굳이 분류하자면 정세랑 작가의 <보건교사 안은영>류의 귀엽고 명랑하지만 살짝 유치하고, 그러면서도 사회의 일면을 보여주는 포지션일지언데, 나는 이런 이야기들이 좋다. 막연한 희망이나 낙관을 주지 않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인공들이 잘 살아가는 이야기여서 그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