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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마 Nov 18. 2023

15. 생각의 방향이 잘못되었다

좋아하는 것이 마땅히 없어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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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생각의 방향이 잘못되었다

어제는 하루종일 침대에 누워있었다. 처음엔 체했나 싶어서 열 손가락을 수지침으로 따고 소화제를 마셨더랬다. 먹은 건 없고, 화장실에 가도 나오는 건 없어서 변기에 한참을 앉아있다가 돌연 오한이 느껴졌다. 그제야 아 몸살기운이구나 싶었다. 전날 저녁을 늦게 먹고 소화를 하겠다며 얇게 입고 밤산책을 한 게 화근이었다.


감기약을 먹고 다시 누워 자다 깨기를 반복했다. 유튜브를 틀어도 머리가 지끈거렸고, 책을 읽으려해도 머리에 들어오지 않아 내가 할 수 있는 건 눈을 감는 일 뿐이었다. 문득 퇴사를 할 때 즈음, 자주 체해서 주말마다 누워있던 시기가 떠올랐다. 회사에선 자존감이 바닥친 채로 나머지 공부를 하다가 일을 들고 퇴근해서, 집에선 일을 하는 것도 쉬는 것도 아닌 애매한 시간을 보내던 때였다. 괜한 보상심리로 금요일마다 나는 배달음식을 시켜 과식을 했더랬다. 주말내내 체해서 움직일 수 없을 걸 알면서도 꾸역꾸역 입에다가 먹을 것을 집어넣던 시절이었다.


그때의 나는 몰려있었다. 되는 일 하나 없이 자꾸 꼬여만 가는 기분이었고, 쉴 때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잠을 못 자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 그래서 먹었다. 배가 고파서도 있었겠지만 마음의 허기짐을 채우기 위해서 아귀처럼 쳐먹어댔다. 인생 최고 몸무게를 찍었던 건 안봐도 비디오였다. 내 인생은 최악으로 치닫고 있었다. 체해서 누워있는 그 시간에 나는 괴로워했다. 나를 망치고 있다는 걸 알면서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생각을 했다.


온전히 괴로움만으로 가득한 시간. 무엇도 먹히지 않고, 누구와도 연결되지 않는 조용한 그 시간이 너무도 싫었지만, 한편으로는 '내 시간'이라고 여겼던 것도 같다. 나는 의무와 책임 그리고 공허감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었다. 잠이 오든 말든 상관없이 잠으로 도피를 했고, 악몽을 꾸고, 피로에 절은 몸을 일으켜 다시 과식을 하는 악순환. 나는 결과를 비난하는 방식으로 생각을 했다.


뚱뚱해진 건 쳐먹어서야. 그러니 수면 무호흡도 오고, 혈압도 오르지. 난 구제불능이야. 그러니 무얼 바라서도 안 돼. 그냥 이렇게 살아야해.


나는 나 자신에게 철천지원수에게나 할 악담을 쏟아부으며 가학적으로 체한 시간을 버텼더랬다. 그럴 필요가 없었는데 말이다. 포인트는 사실 '도피'에 있었다. 내가 무엇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어서 과식을 하고, 잠으로 도피하는지를 말이다. 그때 내가 도망가고 싶었던 건 '무능함'이라는 감정이었던 것 같다. '나 자신이 회사에서 과대평가된 건 아닐까. 내가 능력이 부족한데 버티고 앉아서, 이렇게 계속해서 일이 틀어지고, 일에 펑크를 내면서, 일 못하는 사람으로 낙인 찍히는게 싫다. 도망가고 싶다.'


몇 년이 지나 한 발 떨어져서 보면, 일이 연달아 틀어진 건 '운이 없어서'에 가까운 문제였고, 주변사람들도 나에 대해 별로 관심이 없었던 것 같다. 달리 말하면 그때의 자기평가만큼 바닥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결론만 보면 패배자였기에, 그런줄만 알았다. 과거의 내가 이런 바닥친 마음을 고백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 모른다. 나는 그저 숨기고 도망치고 싶었다.


참 오랜만에 몸살로 몸져 누워서 그때의 나를 떠올리니, 이제는 그렇게 살지 말아야겠다는 다짐을 또한다. 그래서 이번엔 내가 무엇으로부터 도망가고 싶어하는지를 직시했다. 그리고 나는 다시 한 번 '무능함'이라는 감정 앞에 서있다는 걸 깨달았다. 당장에 돈도 잘 못벌고, 일을 한다고 말은 하지만 실상 카페에 나가서 결과가 나올지 안 나올지도 모르는 소설 쓰기에 3-4시간 건성건성 쓰는 게 전부인, 나머지는 책이나 읽고 독후감이나 쓰는 한량. 내가 가장 싫어하는 누군가의 모습과 겹쳐보이는 불쾌감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이번에는 나를 비난하는 방식으로 자기파괴 엔딩을 만들지 않을 것이다. 대신에 나는 느슨했던 기록을 좀 더 강화하는 방식으로 무능감을 벗어나기로 다짐했다.

스톱워치를 다시 꺼내 정량적으로 체크할 수 있는 업무 시간, 업무량을 기록하고 물에 물탄듯 올리던 연재를 주5일로 빡빡하게 운영하기로 했다. 그리고 그 사이에 들었던 감정이나 변화의 감각을 [좋아하는 것이 마땅히 없어서요]에 솔직하게 쓸 것이다. 

스스로의 정체성을 정하는 건 생각에 달려 있다. 나는 생각의 방향을 바꿔서 나를 좋게 만드는 길로 나아갈 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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