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그다음은 관계정의

어떤 만남은 바람처럼 지나가고, 어떤 만남은 밀밭처럼 남는다

by hako

그 사람이 없을 때의 감정까지 품을 수 있는 용기.

그 용기가 생기고 나서야, 나는 관계를 다시 보게 됐다


나는 여행을 하며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늘 무언가를 “정리”하고 있었다. 숫자, 규칙, 소유, 체면, 직책.

자신이 무엇을 사랑하는지보다, 무엇을 가지고 있는지에 더 익숙해 보였다.

나는 그들과 이야기를 나누었지만 오래 머물지는 못했다.

그들의 말은 내 마음에 들어오지 못했고, 내 마음도 그들에게 닿지 못했기 때문이다.

흔적이 거의 남지 않는 관계였다.

그때는 몰랐다.

그것도 관계라는 걸.

세상에는 스쳐 지나가는 방식의 관계가 있다는 걸.


어떤 관계는 느슨하다.

상대가 나쁘거나 내가 부족해서가 아니다.

그저 서로의 하루에 들어갈 자리가 없어서, 서로의 세계가 맞닿을 면이 없어서 그렇다.

느슨한 관계는 얕아서가 아니라, 역할이 다르다.

그들은 내 마음의 안쪽까지 들어오진 않지만,

내 생각의 방향을 조금 바꿔놓는다.

그 정도면 충분한 관계도 있다.


장미가 너무 많은 곳에서, 나는 내 꽃의 의미를 잃어버릴 뻔했다.

그때 여우를 만났다.

여우는 내게 관계를 한 문장으로 가르쳐줬다.

“길들인다는 건, 서로에게 단 하나가 되는 일이야.”

특별함은 갑자기 주어지는 게 아니라 시간이 만든다는 것을.

특별함은 비교로 증명되지 않는 내가 축척한 시간의 모양이었다.


그 이후로 나는 관계를 다르게 본다.

모든 관계가 깊어질 필요는 없다.

스쳐 가는 관계는 나를 넓히고,

남는 관계는 나를 지탱한다.

그 둘은 서로 다른 역할을 한다.

깊은 관계는 늘 적다.

그건 결핍이 아니라 구조다.

친밀함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시간을 내야 하고, 마음을 내야 하고, 기다려야 한다.

그래서 관계는 가까워지는 게 아니라,

남는 쪽으로 정리된다.


나는 누군가를 “더 가까이” 만들려고 애쓰다가 지친 적이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안다.

가까워짐은 목표가 아니라 결과다.

남는 관계는 보통 내가 붙잡아서 남는 게 아니다.

설명하지 않아도 이해받았던 순간들,

위기에서 태도로 증명된 순간들,

말이 없어도 불안하지 않았던 순간들,

그런 것들이 관계를 남긴다.


나는 앞으로도 많은 사람을 만날 것이다.

그리고 또 많은 관계가 스쳐 지나갈 것이다.

하지만 예전처럼 당황하지는 않을 것 같다.





바람처럼 지나간 줄 알았는데 밀밭처럼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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