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이 서로의 마지막 일수도 있어서.
여우는 알고 있었다.
이별의 마지막 장면이 얼마나 오래 남는지.
어린 왕자가 떠나기 전, 여우는 울음을 숨기지 않았다.
길들여졌다는 사실이 슬펐지만, 그보다 더 슬픈 건
아무 의미도 남기지 않는 작별이었다.
“네가 온 시간 때문에,
이제 밀밭이 달라 보일 거야.”
마지막 모습은 기억의 표지가 되고,
그 표지는 앞으로의 시간을 조용히 바꿔 놓는다.
이별이 어지러웠다면,
함께 웃던 오후마저 흔들렸을 것이다.
길들임의 기쁨은 상처로만 남았을 거다.
그래서 여우는 붙잡지 않았다.
원망하지도 않았다.
함께 했던 시간을 망치지 않는 방식으로
한 발 물러섰다.
마지막 모습이 좋다는 건
아프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울지 않는다는 의미도 아니다.
그저 상대와 나 자신을 끝까지 존중했다는 증거다.
어린 왕자가 등을 돌릴 때,
여우는 밀밭을 바라봤다.
이별 이후에도 남아 있을 풍경을 미리 선택한 것이다.
기억이 머무를 자리를.
나는 그 장면을 오래 생각했다.
관계의 끝은 종종 내용보다 방식으로 남는다.
무슨 말을 했는지보다,
어떤 표정으로 등을 돌렸는지,
어떤 침묵이 남았는지가 더 오래 남는다.
나도 마찬가지다.
관계의 끝에서 무엇을 남길지 선택한다.
소리였는지, 침묵이었는지, 아님 조용한 이해였는지.
나는 마지막을 잘 몰랐다.
붙잡아야 후회가 없을 것 같았고,
따져 물어야 마음이 정리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남긴 마지막은
이별을 넘어, 함께했던 시간까지 흐리게 만들었다.
그래서 조금씩 배우게 됐다.
끝을 예쁘게 만들겠다는 욕심이 아니라,
끝을 함부로 만들지 않겠다는 태도.
여우는 그날,
이별을 상처가 아니라, 그 관계가 지나온 방식으로 남겼다.
그래서 시간이 흘러도 그 이별은 아프기만 하지 않았다.
마지막 모습이 좋아야 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을 좋아했던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리고 어쩌면,
언젠가 다시 떠올렸을 때
밀밭이 너무 아프게만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삶은 한 번도 예상하는 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