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그리고, 마지막 모습이 좋아야 하는 이유

오늘이 서로의 마지막 일수도 있어서.

by hako

여우는 알고 있었다.

이별의 마지막 장면이 얼마나 오래 남는지.


어린 왕자가 떠나기 전, 여우는 울음을 숨기지 않았다.

길들여졌다는 사실이 슬펐지만, 그보다 더 슬픈 건

아무 의미도 남기지 않는 작별이었다.


“네가 온 시간 때문에,

이제 밀밭이 달라 보일 거야.”


마지막 모습은 기억의 표지가 되고,

그 표지는 앞으로의 시간을 조용히 바꿔 놓는다.

이별이 어지러웠다면,

함께 웃던 오후마저 흔들렸을 것이다.

길들임의 기쁨은 상처로만 남았을 거다.

그래서 여우는 붙잡지 않았다.

원망하지도 않았다.

함께 했던 시간을 망치지 않는 방식으로

한 발 물러섰다.


마지막 모습이 좋다는 건

아프지 않다는 뜻이 아니다.

울지 않는다는 의미도 아니다.

그저 상대와 나 자신을 끝까지 존중했다는 증거다.

어린 왕자가 등을 돌릴 때,

여우는 밀밭을 바라봤다.

이별 이후에도 남아 있을 풍경을 미리 선택한 것이다.

기억이 머무를 자리를.


나는 그 장면을 오래 생각했다.

관계의 끝은 종종 내용보다 방식으로 남는다.

무슨 말을 했는지보다,

어떤 표정으로 등을 돌렸는지,

어떤 침묵이 남았는지가 더 오래 남는다.


나도 마찬가지다.

관계의 끝에서 무엇을 남길지 선택한다.

소리였는지, 침묵이었는지, 아님 조용한 이해였는지.


나는 마지막을 잘 몰랐다.
붙잡아야 후회가 없을 것 같았고,
따져 물어야 마음이 정리될 것 같았다.
하지만 그렇게 남긴 마지막은
이별을 넘어, 함께했던 시간까지 흐리게 만들었다.

그래서 조금씩 배우게 됐다.
끝을 예쁘게 만들겠다는 욕심이 아니라,
끝을 함부로 만들지 않겠다는 태도.


여우는 그날,

이별을 상처가 아니라, 그 관계가 지나온 방식으로 남겼다.

그래서 시간이 흘러도 그 이별은 아프기만 하지 않았다.


마지막 모습이 좋아야 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을 좋아했던 나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다.

그리고 어쩌면,

언젠가 다시 떠올렸을 때

밀밭이 너무 아프게만 보이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다.


삶은 한 번도 예상하는 대로 흘러가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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