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자라는 나무도 있다.
누군가를 좋아하는 마음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작은 신호들이 겹쳐 만들어진 결과에 가깝다.
처음은 인식이다.
말투, 시선, 침묵의 간격, 사소한 친절.
사람은 의식하기도 전에 상대를 분류한다.
“안전한 사람인가, 위험한 사람인가.”
호감은 설렘보다 먼저, 안전에서 시작된다.
그다음은 반응이다.
내 말에 웃어주는 순간,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주는 태도,
감정을 가볍게 넘기지 않는 눈빛.
이런 반응이 반복되면 마음은 결론을 서둘러 만든다.
“이 사람 앞에서는 나로 있어도 괜찮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빈칸을 채우는 단계.
아직 모르는 상대의 빈칸에
내가 바라는 모습과 그리워하던 감정을 덧입힌다.
실제의 사람보다 내가 만든 이미지가 커질수록
마음은 더 빠르게 움직이고, 판단은 더 느려진다.
나는 그 구간이 늘 경계된다.
그래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있다.
좋아하는 마음은 상대에게서만 오지 않는다.
상대를 통해 드러난 ‘나’가
내가 생각했던 나보다 조금 더 괜찮아 보일 때,
호감은 확신으로 변한다.
정확히는 이런 문장으로 정리된다.
“이 사람과 있을 때의 내가 마음에 든다.”
그래서 누군가를 좋아하는 일은
사실 누군가를 통해
나를 새롭게 확인하는 경험에 가깝다.
그 앞에서 내가 조금 더 진짜 같아질 때
마음은 조용히 생겨난다.
요란하지 않게. 그런데 분명하게.
그리고 그다음부터는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운영의 문제로 넘어간다.
마음은 자라기만 하면 되는 게 아니다.
방향과 속도를 가진 채로 커진다.
방향이 틀리면 나를 흔들고, 속도가 빠르면 나를 소모한다.
어떤 마음은 키우기보다 지키는 쪽이 오래간다.
성급히 증명하지 않고,
쉽게 소모하지 않고,
확인할 수 있는 만큼만 자라도록 두는 것.
좋아한다는 감정이 나를 흔들어도
내 삶의 중심까지 밀려오지 않게 두는 것.
마음은 자란다.
그리고 어떤 마음은, 커질수록 더 조용해진다.
조용해졌다는 건
이 감정이 내 삶을 흔들지 못하게 했다는 뜻이다.
마음을 조정 하는 다이얼이 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