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이라는 무대에서.
나는 요즘
고도를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살고 있다.
무언가를 하다가도 멈추고,
하루가 끝나갈 즈음엔
오늘은 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조용히 확인한다.
그들은 나무 아래에서 고도를 기다린다.
오겠다고도, 오지 않겠다고도 말하지 않은 존재를.
그래서 떠나지 못하고,
그렇다고 완전히 머무르지도 못한 채
같은 자리를 맴돈다.
나도 비슷하다.
고도가 오지 않는다는 사실보다
아무 말도 없다는 상태가
나를 붙잡고 있다.
기다리는 건 사람 하나가 아니라,
설명이었고 한 문장이었고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 같은
사소한 정리였다.
고도가 오면
모든 시간이 의미를 가질 것 같았고,
기다린 내가 바보가 아니게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오늘이 아니어도 내일은 오지 않을까
스스로에게 계속 묻는다.
하지만 베케트는 끝내 고도를 보내지 않는다.
그는 기다림이 얼마나 사람을
정지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기만 한다.
가장 슬픈 건 고도가 오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니라,
고도를 기다리느라
자기 삶을 잠시 옆에 세워두는 사람들이다.
나도 그랬다.
하루를 살면서도 하루를 기다렸고,
시간을 보내면서도 시간을 붙잡고 있었다.
어느 순간 깨달았다.
기다림은 사람을 성숙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가끔은 사라지게 만든다.
기다림이 길어질수록 나는 더 공손해지고,
더 이해하려 애쓰고, 더 조용해지고 있다는 걸.
그건 성숙이 아니라 사라짐에 가까웠다.
그래서 이제는 고도가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이려고 한다.
기다림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그건 내가 관계를
가볍게 대하지 않았다는 증거니까.
다만, 기다림이 내 삶을 대신 살게 두지는 않으려고 한다.
고도를 기다리며 그들은 늘 말한다.
“가자.”
그러고는 움직이지 않는다.
나는 다르게 말해보려고 한다.
“가자.”
그리고 정말로 한 발을 옮겨보려고 한다.
혹시 고도가 오더라도,
혹은 끝내 오지 않더라도,
나는 더 이상 그 자리에만 서 있지 않으려고 한다.
기다림이 남아도,
나는 내 하루를 다시 걷기로 한다.
소년이 말한다.
“고도 씨가 오늘은 못 오신대요. 하지만 내일은 꼭 오신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