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 다시 터키로
조지아와 터키의 국경에는 자정을 넘어 도착했다. 흑해를 끼고 난 도로를 달렸기 때문에 국경 검문소도 바다 바로 옆에 있었다. 국경을 넘어 터키 땅으로 다시 걸어 들어갔다. 바다 냄새가 진하게 났다. 버스로 국경을 넘을 때는 같은 버스를 탄 사람들을 잘 기억해두어야 한다. 버스에서 내려 입국 심사를 받다가 내 차를 놓치면 어쩌나 하는 걱정에. 이번에도 태연한 척하면서 마음속으로 찜해둔 가족을 따라가 무사히 국경을 넘어 다시 버스에 올랐다.
승용차는 괜찮은데 왜 버스는 오래 타고나면 무릎이 아픈지 모르겠다. 11시간의 버스 여행 끝에 아침에 트라브존에 내렸더니 다리가 휘청거렸다. 배가 고파 터미널 근처 식당에서 아침부터 먹었다. 할머니 말씀에 역전에서 밥 사 먹는 거 아니랬는데 진짜 맞는 말이다. 20리라 받아놓고 시들시들한 오이와 토마토에 치즈, 분홍 햄과 빵 몇 조각은 너무했다.
흑해의 항구도시인 트라브존은 부산과 비슷한 분위기를 풍겼다. 꽤 가파른 언덕이 해안가까지 능선이 뻗어있어 경사도 심하고 도시가 전반적으로 올록볼록하다. 내가 예약한 숙소도 산꼭대기에 있어서 배낭을 지고 오르막을 걸어 올라갔다.
도착한 호텔의 리셉션 아주머니는 풀 부킹이라 조기 체크인은 안 된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체크아웃 이후 시간까지 기다리라는 말에 맥이 빠졌다.
"제가 야간 버스를 타고 조지아에서 와서요, 너무 피곤해서 그런데 로비에 소파에서 잠깐 자는 건 괜찮을까요?"
불쌍한 척을 했더니 마음씨 좋은 리셉션 아주머니께서 직원 숙소의 침대 하나를 비워주셨다. 그래서 거기서 쪽잠을 잘 수 있었다.
체크인 시간에 맞춰 일어나 체크인을 하고 내 방 열쇠를 받았다. 작은 오피스텔 같은 싱글룸은 깔끔했다. 잠깐 동안 '이 방이 내 방이라면' 하는 상상을 하며 짐 정리를 했다. 방에는 책상이 있다. 노트북 컴퓨터를 펴고 오랜만에 편안하게 자리를 잡았다. 오늘은 컵라면으로 저녁을 때우고 콜라와 감자칩을 먹으며 편안하게 게임을 하는 날이다.
#91 에르뎀 가족의 두 번째 초대
트라브존 근교의 바위산 중턱에 지어진 수멜라 수도원을 가보고 싶었지만 요즘 복원 공사 때문에 문을 닫았다는 정보를 찾았다. 비록 지나치는 도시이긴 하지만, 여기까지 왔으니 흑해라도 한 번 걸아봐야겠다는 마음으로 밖으로 나갔다. 트라브존은 축구팀 트라브존스포르와 구린 날씨로 유명한 도시다. 오늘도 어김없이 구름이 잔뜩 껴 있어서 안 그래도 을씨년스러운 바다가 더 우중충해 보였다. 해변에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지만, 쓰레기가 여기저기 널려있고 파도가 칠 때마다 쓰레기들이 바다로 밀려나갔다.
흑해라는 이름은 오스만 터키에 의해 붙여졌고, 터키의 북쪽에 있기 때문에 동방의 흑, 백, 황, 적, 청의 오방색 개념에 따라 Karadeniz, 즉 검은 바다라는 이름이 붙었다. 터키를 기준으로 서쪽의 지중해를 Akdeniz(하얀 바다)라고 명명한 것 역시 터키의 기원이 동방에서 출발한 돌궐족이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그 점을 차치하고서라도, 답답할 만큼 낮은 하늘 아래에 조용히 물결치는 이 바다는 검은 바다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다.
시내를 돌아다니다 버스 회사 사무실이 있어서 내일 아침 초룸으로 향하는 표를 샀다. 이름도 생소한 도시 초룸으로 가는 까닭은 3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3년 전 나는 친구와 함께 터키 중부의 아마시아라는 도시를 여행하고 있었다. 요새에 올라가 사진을 찍는데 누군가 소리치듯 말을 걸었다.
"포토, 포토!"
아저씨가 하려던 말은 옆에 있던 히잡을 쓴 여자가 통역을 해줬다.
"안녕하세요, 이 분은 제 사촌인데 당신들이랑 사진을 찍고 싶어 해요."
그녀의 이름은 엘리프, 중학교 영어 교사라며 자신을 소개했다. 가족들과 다 함께 사진을 찍고, 그녀의 통역에 도움을 받아 이야기를 나눴다. 그 만남이 인연이 돼서 2시간 거리의 작은 도시인 초룸에 있는 그들의 집으로 초대를 받았고, 우리는 망설임 없이 다음날 바로 초룸으로 향했다.
아직 대가족 문화가 남아있는 곳이기에 사촌, 오촌들까지 외국인이 집을 찾아왔다는 소문을 듣고 우리를 보러 와서 집이 명절처럼 붐볐다. 그들이 권하는 음식과 차, 다과를 먹고 안락한 잠자리까지 제공받았다. 이전까지 한 번도 여행하며 관광지를 벗어나 사람들을 만나는 경험을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 기억이 크게 남았다. 그래서 이번 여행 중에도 터키 중북부를 지나며 다시 그곳을 들르기로 했다.
다음날 아침, 넉넉한 시간 여유를 두고 호텔을 나와 버스표를 샀던 사무실에 도착했다. 터키 버스의 좋은 점 중 하나가 바로 이 '세르비스'. 시내에 위치한 버스 회사의 사무실을 돌며 승객들을 실어 터미널까지 데려다주는 일종의 공짜 셔틀이다. 따라서 미리 버스표를 샀다면 굳이 터미널까지 찾아가지 않아도 된다. 초룸까지는 버스로 10시간, 도착 예정 시간은 저녁 7시.
흑해 연안 지방은 터키에서 가장 강수량이 많은 지역이다. 내가 지나온 남동부 지방은 황량한 민둥산이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이곳은 우리나라처럼 산이 숲으로 덮여있다. 버스 안에서 창 밖을 바라보며 한국에서 고속도로를 탄 듯한 느낌을 받았다. 이왕이면 알감자와 핫바를 파는 휴게소도 한 번 들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때쯤, 열심히 달리던 버스는 길가의 휴게소에 들렀다. 물론 알감자는 없고, 케밥이나 초르바(터키식 수프) 같은 음식을 팔고 화장실도 돈을 받는 흔해빠진 곳이다.
이상하게도 휴게소에 정차한 버스는 다시 출발할 생각을 안 했다. 의아했던 나는 차장 아저씨에게 번역기로 만든 이상한 문장을 내밀었다. 한참을 번역기를 가지고 아저씨와 씨름한 끝에 '지금 내리는 비 때문에 도로 중간에서 사고가 나서 그 처리로 시간이 걸려요. 그래서 휴게소에서 기다렸다가 사고 수습이 끝나면 다시 출발합니다.'라는 느낌의 대답이 돌아왔다.
터키 휴게소
초룸에 도착한 때는 예정 시간을 훌쩍 넘긴 밤 10시경이었다. 엘리프가 동생 수메예를 데리고 마중을 나왔다.
"오랜만이에요, 엘리프! 못 본새 살이 좀 빠지셨네?"
인사치레로 한 말에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서 그렇다는 진지한 답변이 돌아왔다.
"터키랑 시리아 사이에 쉬르낙(Sirnak)이라는 작은 도시에 발령이 나서 거기 있었거든, 큰 사고는 없었지만 테러다 뭐다 위협이 너무 많아서 계속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서 힘들었어. 또 쿠르드인이 많이 사는 지역이라 터키어도 잘 안 통하고, 심지어 영어를 가르치기 전에 터키어를 먼저 가르치기도 했다니까"
엘리프의 집에 다시 왔다. 집에서는 엘리프의 언니들이 맞아줬다. 엘리프네는 딸만 다섯이다. 그녀는 그중 넷째, 수메예는 막내. 이미 결혼한 큰언니는 두 딸이 있다. 아미네는 3년 전에 봤을 때는 갓난아기였는데, 지금은 어느덧 만 3살. 집 안을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말도 잘한다.
"아미네, 현진 삼촌 알아보겠어요? 옛날에 만났는데~"
엘리프가 아미네에게 장난을 쳤지만 아미네는 부끄러운지 이모 등 뒤에 숨어버렸다.
간단하게 가족들이 차려주는 밥을 먹고 차까지 한 잔 마시니 자정이 가까웠다. 엘리프가 거실 소파를 침대로 바꿔줬다. 친구와 같이 왔던 곳에 혼자 누워있으니 '왠지 여기 누워있으니까 우리 동네에서 진짜 멀리 온 것 같다 맞제?'라고 맞은편 소파에서 얘기하던 재하가 떠올랐다. 이 방은 커튼 무늬까지 그대론데, 기분이 이상했다.
#92 불고기 라이스
아침부터 집이 부산스러웠다. 엘리프의 시끄러운 사촌오빠, 이스마엘이 찾아왔기 때문. 짓궂고 수다스러운 이스마엘은 가끔 귀찮은 캐릭터였는데, 오랜만에 만나니 반가웠다. 초등학생이었던 그의 아들 아키프도 벌써 중학생이 되어 의젓하게 나와 인사를 나눴다. 엘리프는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이미 결정을 해둔 것 같았다. 근교의 히타이트 유적인 하투샤에는 지난번에 갔었기 때문에 오늘은 시내에 있는 박물관이나 모스크 같은, 초룸이라는 작은 지방 도시에 있는 명소들을 둘러보고 내일은 가까운 도시인 오스만직으로 드라이브를 나가자고 미리 그녀에게서 계획을 전해 들었다.
초룸 박물관
엘리프와 수메예를 따라 시내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잠깐 들른 서점에서 터키의 노벨상 수상 작가 오르한 파묵의 책을 발견해서 그의 작품에 대해 잠깐 얘기를 나눴다. 터키의 국민 작가로 알려져 있지만 중부나 동부 같이 보수적인 성향이 강한 지방에서는 그의 인기가 생각보다 크지 않았다. 1차 대전 중 아르메니아인 학살에 대한 그의 의견은 많은 터키인들을 자극했고, 결국 현재 그는 고국에 입국 금지를 당해 유럽에서 망명 생활을 하고 있다. 엘리프 또한 그의 책은 재밌게 읽었지만 그의 정치적 견해에는 동의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보였다.
"전쟁 중에는 모두가 고통을 받았어. 독립을 요구하는 아르메니아인 민병대 또한 동부의 많은 터키인 마을을 공격했고,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지. 따라서 그 사건을 나치의 홀로코스트와 비교하는 서방 언론의 주장은 무리가 있지 않나 싶어."
테헤란 졸파 지구의 아르메니아 교회에서 봤던 아르메니안 제노사이드에 대한 전시물이 떠올랐지만, 주워들은 것만 있고 아는 건 없기에 나도 그런가, 하고 얼버무려버렸다.
시내를 돌아다니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트를 들렀다. 저녁으로 한국 요리를 가족들에게 대접하고 싶어서 필요한 재료들을 샀다. 급하게 인터넷을 검색해 레시피를 찾았다. 오늘 만들 요리는 불고기 비빔밥. 비록 엘리프가 옆에서 많이 도와주긴 했지만, 꽤 그럴듯한 비빔밥을 만들어냈다. 냄비밥은 처음 해봐서 조금 버벅댔지만, 어쨌든 죽은 아닌 고슬고슬한 밥이 돼서 다행이었다. 나는 맛있었는데, 다른 가족들도 다들 맛있게 먹었나 모르겠다. 그래도 내가 만든 요리를 먹기 전에 음식 사진을 찍고, 인스타그램에도 올리는 걸 보니 뿌듯했다.
#93 즐거운 아침식사
느지막이 일어나 도시 북쪽 호숫가에 있는 근사한 카페에 아침을 먹으러 갔다. 아침 식사로 유명한 곳이었는데, 12시가 넘은 시간이라 아침 식사 메뉴는 안 된다며 우리는 돌아가야 할 위기에 처했다. 그때 갑자기 수염을 기른 아저씨 한 분이 이스마엘 곁으로 와서 그와 인사를 주고받았다.
"초룸 시장님이야, 이스마엘이 모스크에서 아는 분이셔."
엘리프가 옆에서 귀띔을 해줬다. 나도 덩달아 시장님과 악수를 하고 같이 사진을 찍었다. 이스마엘과 시장님, 카페 사장님이 이야기를 잠깐 나누더니 시장님의 입김 덕분인지 안 된다던 아침 식사 한 상이 몇 분 뒤 우리 앞에 차려졌다.
호숫가 카페에 앉아 먹는 터키식 아침식사 카흐발트는 최고였다. 특히 벌집이 통째로 들어간 꿀과 버터를 잘 버무려 빵에 치덕치덕 발라 몇 개나 먹었는지 모르겠다. 매일 아침을 이렇게 여유롭게 먹을 수 있다면 행복한 인생 아닐까? 우리는 천천히 아침을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검정치마의 노래를 흥얼거리며 엘리프네 가족들이 알아들을 수 없는 터키어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한 귀로 흘려 들었다.
너와의 즐거운 아침식사 갑자기 걸려왔던 전화에 놀라
요즘 우리 서로 마주 보고 밥 먹을 시간조차 별로 없었는데
그래도 어른은 전화를 받아야 해 먹던 빵을 내려놓고 일어났어
싱그러운 아침 햇살 수화기엔 능글맞은 목소리 _검정치마 '아침식사' 中
밥을 먹고 일어나 우리는 호숫가를 잠깐 걸었다. 호숫가에는 논이 많았다. 이제껏 지나온 농촌의 풍경과는 다르게, 한국의 시골과 많이 닮았다. 터키에서 재배하는 쌀은 Sticky rice, 우리나라에서 먹는 것과 같은 찰기가 있는 쌀이다. 마트에서 확인한 품종은 칼로스, 미국 쌀 이름으로 익숙한 품종이다.
차를 타고 가며 엘리프의 통역을 통해 이스마엘과 많은 얘기를 했다. 많은 아저씨들이 그렇듯, 이스마엘은 정치 얘기를 좋아했다. 그는 에르도안의 강력한 지지자이자 보수적인 무슬림 아저씨이다.
"현진, 이스마엘이 무슬림이 될 생각은 없냐고 물어보는데? 이스마엘이 반은 농담하는 거야, 그냥 가볍게 들어줘."
정치와 종교를 오가는 주제에서 완고한 이스마엘의 입장에 나도 모르게 거부감도 들었지만, 그의 생각도 존중하기로 했다.
군대에 있을 때 동기들과 취침등이 꺼지면 각자 침대에 누워 토론을 하곤 했다. 나 포함 같은 방을 쓴 여섯 명이 다들 자기 나름의 의견이 있는 친구들이라 얘기가 시작되면 새벽까지 이어지곤 했는데, 주로 그날 텔레비전에서 본 것들이 도마에 올랐다. 예를 들어 '쌀 개방, 꼭 해야 하는가?', '국가를 유지하는데 애국심은 필요한가?'와 같이. 사실 당장 우리에게 하등 도움이 안 되는 주제들이었다. 하지만 한 친구의 말이 유독 기억에 남는다.
"민주주의, 남녀평등, 표현의 자유와 같이 우리에겐 익숙한 가치들을 너무 당연하게 여긴 나머지 오히려 편협한 시선과 우월감을 갖고 다른 사람들에게 그것만이 절대적 가치인 양 가르치려 드는 사람들이 있어. 다른 사람이 속한 배경을 고려하거나, 이해하려는 노력은 하나도 하지 않고. 단지 우리 시대의 가치에 따르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턱대고 배척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해."
나는 그 말을 듣고 나를 반성했다. 항상 다른 사람의 의견을 들을 때 존중과 포용의 자세를 가져보자고 다짐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을 때가 많다.
다시 이스마엘로 돌아와서, 그와 대화를 하며 그 친구의 말을 떠올렸다. 나는 내 의견을 제시할 수 있어도, 강요할 수는 없다. 사람마다 세상을 보는 창이 다르니까. 이스마엘이 힘주어 말하는 터키 '이슬람' 공화국도 이곳 초룸이라는 좁은 공간에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94 엘리프의 편지
아침부터 찾아온 이스마엘의 손에 이끌려 크라트하네로 향했다. 크라트하네는 동네 사랑방, 혹은 다방 정도 개념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이곳에서는 차와 다과를 먹으며 루미큐브와 비슷한 오케이 게임이나 로마시대부터 이어져 온 보드게임인 타블라 등을 하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간이 주방과 기도실, 테이블이 놓인 홀을 갖춰 하루를 온전히 이곳에서만 보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런 크라트하네의 활성화는 에르도안의 대표적인 공약 중 하나였는데, 공짜 차와 다과를 제공해 시민들을 위한 휴식처로 조성하겠다는 것. '차와 다과' 공약에서 학창 시절 반장선거 느낌이 물씬 났다. '제가 반장이 되면 피자를 돌리겠습니다'와 본질적으로 같은 느낌. 하지만 터키의 아저씨들은 크라트하네에서 행복하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모든 크라트하네가 공짜로 차와 과자를 제공하지는 않는다. 내가 간 곳도 일반 카페보다는 저렴했지만, 돈을 받고 있었다. 홀에 앉아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차를 홀짝였다. 왠지는 모르겠지만 여기는 남자들 밖에 없다. 내가 알던 서부 지중해 연안의 터키보다는 이란 같은 중동 느낌이 물씬 났다.
"크라트하네? 거기 할 일 없는 아저씨들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모여서 시시한 얘기나 카드게임으로 시간 때우는 그런데야."
전통의 크라트하네 보다는 스타벅스를 선호하는 이스탄불의 친구들은 이렇게 말했다.
버스 터미널에 들러 이스탄불로 돌아가는 야간 버스표를 티켓을 끊고, 마지막으로 저녁을 먹자는 엘리프 가족을 따라 피크닉을 나갔다. 바베큐를 하기 위해 고기와 빵, 채소들을 사러 시장에 가는데, 한 무리의 사람들이 옷을 차려입고 거리를 행진하고 있었다.
"저 사람들은 결혼 행렬이야. 복장이나 분위기를 보니까 터키 사람은 아니고, 시리아 사람들인 것 같아."
엘리프는 이어 설명을 계속했다.
"많은 시리아 사람들이 전쟁을 피해 터키로 넘어왔는데, 특히 여자들이 터키 남자들과 결혼을 많이 해. 물론 결혼 자체에 문제가 될 것은 없지만 요즘 문제가 되는 부분은 시리아 여성들과 결혼을 하는 많은 터키 남자들이 이미 결혼을 한 경우가 많다는 거야. 쉽게 말해서 그들을 두 번째 부인으로 두는 거지."
터키는 세속주의 국가라 일부일처제가 법으로 명시되어 있지만 이슬람 관습법상 4명의 부인까지 둘 수 있어 혼인신고를 하지 않고 이른바 '종교 혼례'를 올린 후 사실상 결혼 생활을 한다는 것.
"왜 그럼 터키 여자들은 이혼을 요구하거나, 그 점에 대해 반대를 하지 않아요?"
"이스탄불이나 앙카라 같이 대도시는 모르겠지만, 아직 터키에서 이혼은 터부시 되는 경향이 있고, 남자에 비해 이혼한 여자를 보는 시선이 더 좋지가 않아. 심지어 먼저 이혼을 요구했다가 남편에게 살해당하는 사건도 일어날 정도야. 그래서 그런 일이 있어도 이혼을 꺼리는 편이야."
물론 엘리프가 말한 기저에는 시리아 난민에 대한 곱지 않은 시선도 깔려있는 것 같았지만 여전히 남성 우월주의적인 터키 사회의 한 단면을 본 것 같았다.
이스마엘이 운전하는 차를 타고 도착한 공원은 산 중턱에 있었다. 세마베르라는 차를 끓이는 화로에 장작을 넣어 불을 때우고, 돌을 쌓아 화덕을 만들어 고기를 구웠다. 카흐라만마라쉬에서 메흐메드네 가족과 갔던 피크닉과 비슷했다. 우리가 도시에서 떨어진 펜션 같은 데서 고기와 술을 먹고 오는 것을 즐기듯, 터키인들도 이런 종류의 소풍을 좋아하는 것 같다. 하지만 바닥에 불을 피우고 뒷정리는 잘하지 않는지 여기저기 다녀간 사람들이 피운 모닥불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흙이라도 덮어두지.
초룸은 고도가 있는 곳이라 해질녘이 되니 으슬해지기 시작했다. 가방에서 얇은 점퍼를 꺼내 걸쳤다. 화덕의 불이 자꾸 꺼지는 바람에 번갈아가며 끊임없이 부채질을 해줘야 했다. 화덕 앞에서 난리를 피우는 동안 이미 해는 져버리고, 결국 우리는 휴대폰 불빛에 의지해 밥을 먹어야 했다. 그래도 불에 구운 고기는 뭐든지 다 맛있다. 설령 그게 뭔지 안 보이더라도.
내가 탈 버스까지 바래다준 엘리프, 수메예 그리고 이스마엘. 버스에 오르려는 나에게 그녀는 두툼한 봉투를 건넸다. 내 여행기가 적힐 수첩과 직접 쓴 편지, 그리고 며칠간 함께 찍은 사진들을 인화해서 봉투에 차곡차곡 담아준 것.
"너무 고마워요 엘리프. 다음에 꼭 다시 놀러올게요!"
이전에는 따뜻한 환영을 받으며 이곳에 오고, 또 다음 여행지로 떠나며 '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하는 아쉬운 마음에 눈물이 핑 돌았는데, 지금 떠나는 발걸음은 조금 더 가볍다. 오랜 시간 여행을 하며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헤어지며 작별이란 것에 익숙해진 걸까? 누군가와 헤어지고 나면 또 다른 누군가를 만나기 마련이니까. 그렇지만 다시 찾아온 나를 진심으로 반겨준 이들이 가끔 그립고, 생각날 것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Life is compared to voyage.
Promise yourself to be strong that nothing can disturb your peace.
Look at the sunny side of everything and make your optimism come true.
Forget the mistakes of past and focus on the upcoming achivements of the future.
인생은 여행에 비유되곤 하지.
강해지겠다고 스스로 약속해, 아무것도 너의 평화를 방해할 수 없도록.
항상 밝은 면을 바라보고, 너의 긍정이 현실이 되도록 해.
과거의 실수는 잊어버리고, 다가오는 미래의 성취에 집중하기를.
_엘리프의 편지 中